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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나를 지워 버린 서류
  • 써니
  • 등록 2026-10-10 21:17:37
  • 수정 2026-10-10 21:20:45

사진은 제미나이가 그림


002.  제1장 나를 지워 버린 서류

제1부 침묵이 시작되다

나는 그 날짜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2017년 3월 23일.

그날 일어난 모든 일을 이해했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결정을 전달받은 일이 지닌 중요성은 기억하지만, 방의 세세한 모습이나 의자들의 위치, 담당자가 정확히 어떻게 설명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거의 10년이 흘렀다. 여전히 분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서류 그 자체와, 그것과 함께 찾아온 안도감과 불확실성이 기묘하게 뒤섞인 감정이다.

나는 난민 인정을 신청했다.

그것이 내가 원했던 지위였다.

나는 다른 정체성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갈 새로운 범주를 찾으려 했던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과 내가 겪은 상황 때문에, 그리고 돌아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단순히 가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보호를 신청했다.

내가 받은 결정은 나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히 떠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 결정은 나를 그 두 입장 사이 어딘가에 놓았다.

서류에는 내 신청이 난민협약 및 의정서상 난민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그 뒤에는 내 삶의 방향을 바꾼 문장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인도적 측면에서” 한국에 머무를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하나의 지위는 거부되었고 다른 하나의 지위가 주어졌다.

그때 나는 그 결정에서 가장 직접적인 부분을 이해했다.

나는 머물 수 있었다.

아주 어린 두 아이의 어머니에게 그것은 엄청난 의미였다.


내가 신청하지 않았던 지위


그 결정은 내가 무엇을 받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분명했다.

나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보다 내게 덜 분명했던 것은 당장 머무를 수 있다는 허가를 넘어 인도적 체류가 무엇을 뜻하는가였다.

나는 그것을 임시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것이 난민 인정과 같지 않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그 지위에 어떤 권리와 기회, 제약이나 미래의 가능성이 따르는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자리에 앉아 앞으로 10년이 어떤 모습일지 완전한 그림을 받아 든 순간은 없었다.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이미 내게서 많은 것을 앗아 간 상황의 여파를 감당하고 있었다.

내게는 어린 두 아이가 있었다.

나는 대학원 과정을 그만두었다.

내가 쌓아 가던 직업적 삶은 이미 중단되어 있었다.

가족 상황은 나를 엄청난 정서적·육체적 압박 아래 놓이게 했다.

그 시점에 내게는 체류 범주에 대한 설명보다 안정이 훨씬 더 절실했다.

그래서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이해한 부분을 붙들었다.

우리는 강제로 떠나지 않아도 되었다.

그 순간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내가 보호를 요청했던 이유


그 서류가 왜 중요했는지를 이해하려면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나는 내가 일구어 온 삶을 버리고 싶어서 난민 제도에 이른 것이 아니었다.

나는 공부하고 일하고 있었다.

나는 직업적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독립적으로 살아가며 스스로를 부양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가족 상황이 급격히 달라졌다.

아이들의 친가 쪽 사람들이 내게 등을 돌렸다. 스스로 내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하던 남자 역시 내게 등을 돌렸다.

상황이 특히 심각해졌을 때 나는 이미 둘째 아이를 임신한 지 8개월째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가 일하여 마련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이 나라를 떠났다.

그것들을 잃은 일 자체가 나로 하여금 보호를 요청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나는 독립적으로 성장했다.

물질적인 것은 다시 마련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간단히 다시 마련할 수 없었던 것은 안전이었다.

가족을 둘러싼 갈등과 공격은 나 자신의 취약성과 아이들을 향해 내가 짊어진 책임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나 자신 너머를 생각해야 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만을 놓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안전하게 자랄 수 있을지를 결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난민 신청이 시작되었다.


결정이 내려지기 전


그때 나는 이미 난민인권센터와 연결되어 있었다.

가족 상황 때문에 심각한 우울증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시기에 직장 친구를 통해 그곳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 가족 상황을 설명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내 신청이 내 삶의 나머지 부분과 동떨어진 단순한 출입국 문제가 아님을 이해했다. 그것은 내 아이들, 가족 상황,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연결되어 있었다.

난민인권센터는 처음부터 난민 신청 절차를 안내해 주었다.

나 자신에게는 길잡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 지원은 중요했다.

나는 아주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를 탈진시킨 상황에서 회복하는 동시에 낯선 법률 제도를 헤쳐 나가려 하고 있었다.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기 전, 우리는 이주민센터에서도 약 1년을 보냈다. 아들은 그 무렵 태어났다. 아이들을 부양할 수단이 거의 없던 때도 있었다.

이주민센터에서 나온 뒤에는 다른 현실적인 선택지가 없어 네 살 난 딸과 한 살 난 남동생이 집에 둘만 있어야 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 상황은 내가 아이들을 위해 상상했던 삶이 아니었다.

그래서 인도적 체류가 우리가 한국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을 의미했을 때 나는 안도했다.

그 서류가 우리의 삶을 해결해 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순간 우리에게 절실했던 한 가지, 곧 당장 떠나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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