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얀 고양이
하얀 고양이가 튀어나온 문 앞에 서서 춤추듯 비틀거리는 사람은 미셸인가 했더니 병수 형이었다. 병수 형인가 했더니 다시 미셸이었다. 이런 착각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미셸은 병수 형을 닮았음을 알 수 있었다.
병수 형은 1975년 12월에 서울 종로구 창신동 낙산 기슭 자취방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었다. 병수 형은 반야라는 부르던 하얀 암고양이와 함께 살았었다. 반야는 병수 형의 죽은 애인의 이름이기도 했다.
병수 형은 반야를 마치 애인처럼 끌어안고 다녔지만 나는 반야가 달갑지 않았다. 그 음산한 울음소리는 특히 싫었다. 그때 나는 도봉산 밑에 살았기 때문에 종로통에서 술 마시다 통금에 쫓기면 병수 형 자취방을 찾아가곤 했다. 병수 형은 집에 없는 날도 많았지만 상관없었다. 언제나 신발장 맨 아래 있는 헌 털신 속에 열쇠를 두고 다녔기 때문이다.
반야도 염려 없었다. 병수 형이 없을 때는 반야도 나타나지 않았다. 병수 형이 없던 어느 날, 자다가 깨보니 반야가 새벽 달빛을 등지고 들창 턱에 웅크리고 앉아 음산하게 울고 있었다. 내가 ‘가’라고 짧게 소리치자, 반야는 들창 너머로 사라졌다.
창을 닫으며 내다봤던 골목 안은 달빛이 하얬는데, 거기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어떤 존재의 모습이 언뜻 스쳤다. 들창을 닫고 다시 누웠을 때는 좀 전에 스쳤던 모습이 병수 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병수 형은 며칠 후에 그 방에서 죽었다.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었다. 발인하는 날 아침에 나는 구두를 잃어버렸다. 하얀 영안실 슬리퍼를 신고 관을 들었다. 하얀 영안실 슬리퍼를 신고 영구차에 탔으며, 하얀 영안실 슬리퍼를 신고 벽제화장장에 갔다.
화장을 마친 후, 병수 형 친구 종태 형이 하얀 영안실 슬리퍼를 신은 내 꼴을 보고 말했다. ‘병수의 하얀 부케를 네가 받았구나’라고. 병수 형 다음 죽을 차례는 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종태 형이 먼저 갔다.
그는 이듬해에 북한산 어느 바위틈에서 변사체로 발견됐었다. 부검 결과는 저체온증으로 인한 심장 쇼크였다. 비 오는 날 술에 취해 바위 밑에서 자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 혹자는 변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자살일 거라고 우겼다.
달빛이 하얗게 내리는 학교 마당에서 나는 돌아섰다. 누가 안에서 내던진 하얀 슬리퍼처럼 고양이가 튀어나온 것이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불길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미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왜 그러냐고 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단호한 걸음으로 비탈을 올랐다. 돌아보지도 않았다.
광장에 올라서자, 눈앞에서 개들이 으르렁거렸다. 달빛에 시퍼렇게 빛나는 눈들과 날카로운 송곳니, 길게 흐르다 뚝뚝 떨어지는 침을 보자 머리칼이 곤두섰다. 미친개들이 아닐까 싶었다. 주변엔 돌도 막대기도 없었다. 주머니에서 소주 봉지를 급히 꺼내 개들에게 던졌다. 개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급히 혁대를 풀었다. 혁대 끝을 감아쥐고 빙빙 돌렸다.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은 점점 늘어났다. 다섯 마리, 여섯 마리……. 무서웠다. 뛰고 싶었지만 천천히 걸었다. 내가 뛰면 개들도 뛴다. 개들의 추적 본능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왼손은 흘러내리는 바지를 움켜쥐고, 오른손은 혁대를 빙빙 돌리며 걸었다. 그렇게 걸었던 것까지 기억이 났는데 그다음은 기억이 안 났다. 어떻게 된 걸까? 내가 누워있는 이곳은 어디일까?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들 수 없었다. 눈을 뜰 수도 없었다. 눈곱이 말라붙어 속눈썹들로 눈을 꿰매 놓은 것 같았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속눈썹을 적시고 살살 문질러서 간신히 눈꺼풀을 벌렸다. 커튼 한쪽으로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딘지 전혀 알 수 없는, 비좁은 방이었다.
일어나고 싶어서 눅눅하고 묵직한 솜이불을 젖혔다.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편두통을 앓았을 때처럼 머리가 욱신욱신 아팠다. 목이 타고, 아랫입술 안쪽이 쓰라렸다. 개를 쫓기 위해 휘두르던 허리띠가 내 입술을 스친 기억이 났다.
이불 속에서 배를 더듬었다. 여권과 달러가 든 전대는 배에 붙어 있었다. 허리띠는 어쨌을까? 배 밑의 사타구니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손목이 허전했다. 시계는 어쨌을까? 어디다 흘렸을까? 이 방에 있을까? 침대에서 일어나야 했지만 일어날 힘이 없었다. 다시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호흡을 가다듬었다.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냉장고에서 시원한 보리차를 가져다주고, 찬 물수건을 이마에 얹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한 때는 있었다. 나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혼자다. 아, 이 무서운 세상에 혼자라니!
락바 라마? 그는 시킴으로 떠났다. 그는 유스호스텔에 있었다. 여기는 유스호스텔이 아니다. 롱아일랜드도 아니다. 여기는 어딜까? 만일 내가 여기서 이대로 죽으면 어떻게 될까?
경찰이 오겠지. 경찰은 내 여권을 보고 대사관에 연락할 테고, 영사는 한국의 관할 경찰서를 통해 유족을 수배할 것이다. 어머니와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밤 꿈이 떠올랐다. 전신전화국의 철창이 떠올랐다.
다르질링의 국립병원에는 유족이 올 때까지 시체를 안치하는 냉동실이 있을까? 냉동실이 없으면 방부제 처리를 하거나 소금에 절여둘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원 확인만 하고 화장해 버릴지도 모른다. 차라리 화장해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귀신
까무룩 다시 잠들었다가 누군가가 내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깼다. 흐린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흐리게 보이던 얼굴이 서서히 명료해지자 그가 타파 구릉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젯밤에 알리멘트의 식당 문을 두드렸던 상황이 스쳤다.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타파, 마실 물 좀 줘.”
“우선 좀 일어나 앉자. 물은 앉아서 먹어야지.”
타파가 누워 있는 내 어깨 뒤로 손을 넣어 일어나 앉도록 도와주었다. 물병은 머리맡의 탁자 위에 있었다. 내 손목시계와 허리띠도 탁자 위에 있었다. 내 손을 뻗어 물병을 들고 물을 마시는데, 내가 앉아 있는 침대가 물 위의 보트처럼 빙그르르 도는 것 같았다.
“천천히 마셔. 넌 좀 아픈 것 같다.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어.”
“병원은 안 가도 돼. 아스피린 두 알이면 해결될 거야. 술이 좀 과했던 데다 광장에서 만난 미친개들 때문에 혼났을 뿐이야.”
“네가 여기를 찾아온 시간은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어. 우린 막 자려던 참이었지. 마침, 이 방이 비어 있어서 널 이 방으로 데려온 거야. 잘 들어 둬, 이 동네 개들은 밤이면 미친개가 된다. 특히 달밤에 더 미쳐. 어젯밤 그 개들의 눈에는 네가 사람이 아니고 귀신으로 보였을 거야.”
“귀신? 하긴 내게는 늘 술 마시다 죽은 귀신들이 따라다니지. 개들은 내가 아니라 나를 따라다니는 귀신을 보고 짖었을 거야.”
“그래. 개는 귀신을 보는 동물이다. 어쨌든 밤늦게 다니지 마. 얼마 전에도 서양 여행자 한 명이 광장에서 개들에게 목을 물어뜯겼어.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중태였지. 넌 운이 좋았던 거야.”
유리병에 남은 물을 마저 마시고 탁자에 놓인 시계를 손목에 꼈다. 오전 10시가 좀 넘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롱아일랜드에 가서 체크아웃할 시간이 충분했다. 타파에게 그 방에서 하루 더 묵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가능하지’라고 했다.
타파 구릉을 따라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가 툭바를 시켰다. 우선 국물만 들이켰다. 그래도 갈증이 안 풀렸다. 갈증과 숙취를 풀기 위해 맥주를 한 병 달라고 했더니 타파는 카운터에 두 손으로 짚고 서서 한숨을 푹 쉬었다.
“김, 네게서는 아직도 술 냄새가 난다. 더구나 넌 혼자 일어나지도 못했어. 난 널 데리고 병원에 갈 생각이었어.”
“환자 취급하지 말아 줘 타파. 하지만 네 말을 듣고 보니 맥주는 그만두는 게 좋겠다. 대신 시원한 사이다를 한 병 줘.”
타파는 냉장고에서 사이다병을 꺼내어 뚜껑을 땄다.
“그럼. 그럼. 이게 낫지. 그런데 하나 묻자.”
“물어봐.”
“어제 누구와 마신 거냐?”
“미셸을 알지도 모르겠네. 광장 밑에 있는 학교의 영어 선생 겸 교감.”
“맙소사. 그 주정뱅이에다 오입쟁이! 그는 끝난 인간이야. 다르질링에서는 아무도 그를 상대하지 않는다. 주정뱅이들이나 걸인들 빼고는.”
“주정뱅이라는 건 알아. 그런데 오입쟁이라니?”
“지금 마누라가 네 번째 마누라다. 마누라가 되기 전에는 제자였는데 세 번째 마누라가 버젓이 있을 때부터 몰래 정을 통했거든.”
“미셸에 대해서 잘 아는군.”
“다들 잘 알지, 아무도 상대를 안 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여주면 얼마나 귀찮게 구는지 알아? 혹시 다시 만나더라도 네가 여기 묵는다는 걸 말해서는 안 돼.”
“어제 아일랜드에 묵는다고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왜?”
“여기는 말해 주지 않는 게 현명할 거야. 말해 주면 대낮부터 찾아와서 마시자고 할 테니까.”
“네 말을 들으니 다시 피곤해진다.”
“그러면 이제 다시 올라가서 좀 더 쉬는 게 어때?”
“아냐, 차라리 좀 걷는 게 나. 아일랜드에 가서 체크아웃하고 올 거야.”
일어서서 의자를 탁자 밑에 넣었다. 타파가 한 마디 더 했다.
“이런 말을 하기 미안하지만, 어제처럼 심야에 오면 곤란해. 한 번은 인정상 봐 주지만 두 번은 안 봐준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약속한다. 난 원래 오늘 오후에 시킴으로 떠날 계획이었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 내일 혹은 모레 떠날까 싶어. 그동안 잘 먹고 푹 쉴 거니까 그런 걱정은 말아 줘. 참, 방 줘서 고맙다는 말을 안 했군. 정말 고마워.”
“알았어. 새삼스럽기는!” <</span>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