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운동권의 한 축인 한총련이 利敵(이적) 불법단체인 故로 6년째 수배자를 量産(양산)하고 있다고 한다. 수배당사자가 버젓이 취재를 받으며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오마이뉴스에 보도되기도 하니, 검거의 실효도 없이 이와 같은 대치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국력낭비임은 분명하다.
盧대통령은 17일 법무부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총련의 이적단체 규정을 재검토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한총련은 국가보안법의 위반으로 인해 이적단체로 규정되고 있으니 한총련의 이적단체규정 해제는 곧 보안법의 改廢(개폐)를 의미한다.
현재 당장에는 보안법 개폐의 示唆(시사)가 있지는 않지만 한총련의 '합법화'를 필두로 보안법의 변화는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난처한 것은 보수 및 우파를 자처하는 세력이다. 이와 같은 조치를 반대급부 없이 맨몸으로 반대하기에는 이제는 힘도 부치고 시대의 흐름에 밀리는 느낌이 역력한 것이다.
보안법의 개폐논의가 정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라면, 만약에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이며 인간의 지적 향상을 추구하는 우파라면 각자가 놓인 위치의 기득권에 무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代案(대안)을 다시 내놓는다. (2005年)
保安法의 廢止論者들에게
語文政策의 改革을 제안한다
옛적 밀림 속의 나무 위에서 풍부한 열매를 따먹으며 어려움 없이 살았던 원숭이들은 기후가 변화하면서 밀림이 줄어들어 더 이상 나무 위에서의 안락한 삶을 누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원숭이들은 땅위에서 먹을 것을 찾아 살아가기로 하였다.
이렇게 나무 위에 살던 원숭이들이 땅위에 살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의 일이다.
원숭이들은 동쪽에는 작은 무리가 모여 살았고 서쪽에는 큰 무리가 모여 살았다. 두 무리 북쪽의 사나운 이리(狼)떼의 위협 속에서 살아왔다.
어느 날 이리떼의 대공세가 있었다. 원숭이들은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결국 동쪽의 무리는 자기들이 살던 땅의 반쪽을 이리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한편 서쪽의 큰 무리는 더욱 심하였다. 그들은 이리들에게 대패하여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였다. 그 중 일부만이 살아남아 영토 귀퉁이로 모여 살았다. 그들에게 남은 땅은 동쪽 무리들의 남은 땅보다도 못하였다.
동쪽의 무리는 그 후 자기들의 남은 영토를 보호하고, 나아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해 反狼法(반랑법)을 제정하였다. 이리들과 만나는 것을 금하고 그들의 용맹성을 치켜세우는 것도 금하고 이리새끼를 주워 기르는 것도 금하였다.
世代가 바뀌어 옛날의 참혹했던 이리떼와의 싸움을 기억하지 않는 젊은 원숭이들이 늘었다. 젊은 원숭이들은 불만이었다. 이리도 만나서 서로 지내보면 괜찮은데 왜 못 만나게 하느냐. 새끼 이리를 데려다 길들여서 서로 힘을 합해 사냥도 하면 좋지 않느냐 등이었다.
늙은 원숭이들은 그들의 사나움을 알기에 극구 말렸지만 점점 높아가는 젊은 원숭이들의 목소리를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저기 서쪽 무리에는 反狼法도 없지만, 이리의 위협 같은 것에는 끄떡 않고 오히려 우리보다 더 잘살고 있지 않느냐 하는 말에는 대답할 길이 없었다.
결국 동쪽 무리는 反狼法을 폐지하고 젊은 원숭이들과 이리들과의 만남을 허가할 수밖에 없었다. 허가 안하려 해도 이미 反狼法을 지키려는 원숭이들은 모두 늙고 힘이 없었으므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이리들과 어울려 놀던 원숭이들은 하나 둘 이리에게 물려죽고 동쪽 원숭이 나라는 패망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아직 남은 원숭이 중 몇은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서쪽 원숭이무리가 사는 곳으로 가보았다. 도대체 서쪽 원숭이들은 어째서 反狼法도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보니까 서쪽 원숭이 마을에는 이리가 마을 속에 자유로이 노니는 모습이 보였다. 이리들은 원숭이의 뒤를 따라다니며 먹을 것을 얻어먹고 하라는 대로 따르며 살고 있었다.
"도대체 왜 저럴까. 우리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것도 아닌데..."
고개를 갸우뚱하던 동쪽 원숭이들은 마을을 좀더 자세히 살펴본 뒤 알게 되었다. 그들 서쪽 원숭이들은 어릴 때부터 창과 칼을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년이 되기 전에 이미 창과 칼을 능숙히 쓸 수 있기 때문에 한 원숭이가 이리 두어 마리쯤은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모든 원숭이들이 이리를 이길 수 있었으므로 어느 한 원숭이가 이리를 마을로 끌고 들어와도 아무도 걱정 않고, 두목 또한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反狼法 같은 것이 필요 없었고 오히려 이리를 얼마든지 끌어들여 가축으로 부리기도 하였다.
"우리도 쟤네들처럼 창칼 쓰는 법을 배우자."
동쪽 원숭이들은 서로 이야기했다.
"아냐, 예전에 어린 원숭이들에게 창칼 쓰는 법을 가르치자고 한 원숭이도 있었어. 그런데 우리 두목이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 원숭이는 어떻게 되었는데?"
"미친 원숭이라고 쫓겨났지 아마. 자라나는 원숭이들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주려 한다고..."
"그 이후에도 몇몇 있기는 했었지..."
"다시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반대에 부닥쳤지. 특히 이미 그런 걸 안 배우고 자라난 젊은 원숭이들은 공연히 쓸데없는 부담을 자기들에게 지우려 한다고, 그런 말을 하는 자를 아주 미워했지."
이야기를 마친 원숭이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이제 돌아가면 창칼쓰기를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미 창칼쓰기를 못 배운 세대들이 사회의 중견이 되어 가는 마당이라 당장에 그들의 마을을 구할 방도가 없었다.
동쪽 원숭이 무리와 서쪽 원숭이 무리는 바로 우리 한국과 대만의 실정을 나타낸다.
현재 보안법의 개정 시비가 달아오르고 있다. 일부에서는 보안법의 전면 폐지도 거론된다. 다른 한 편에서는 보안법을 손대는 것은 자유민주체제를 포기하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 논란의 와중에 소모적인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만한 통렬한 한 마디가 있었다. 이전에 한 방송에서 어느 진보 인사는 우리보다 체제위협이 더 큰 대만에는 보안법이 없는데도 잘만 지내더라고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보수진영에서는 대만은 우리보다 적화위협이 덜하다느니 하며 궁색한 변명을 하는데 이는 설득력이 없다. 북한보다 더한 인구와 국력을 갖춘 우리이다. 반면에 대만은 인구와 국력에서 중국의 공산당정부와 비교도 안 되는데 무슨 체제위협이 없다는 말인가. 중국 공산당정부가 민주화선언이라도 했단 말인가. 중국 정부가 설사 체제위협을 안 가한다 하더라도 이미 그 정도의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는 대만 국민의 마음상태가 얼마든지 체제의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보다 더 불리한 상황 내에서 대만이 보안법 없이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끄떡없이 지켜나간다는 진보인사의 지적은 실로 정곡을 찌른 명답이다. 이제는 그러면 왜 대만은 보안법이 없이도 체제가 잘 유지되는가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해답에 대해 어떤 사회과학적 분석을 기대한다면 실망해도 좋다. 해답은 간단하다. 대만은 이미 어문정책에서 체제를 굳건히 수호할 수 있는 든든한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대만은 '그 어려운' 한자를 약자 하나 제정하지 않고 초등학교 때부터 철저히 가르치고 있으며 문맹률도 매우 낮다. 그리고 국어교과서 등에서 전통적인 세로쓰기 교육을 지킴으로써, 국민 전체의 지적수준을 향상시키며 외부 이질적 이데올로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전통의 氣象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북한과 중국공산당과 같은 가로쓰기 국어교육과 중국의 간체자 교육과 같은 취지의 전체인민의 평등을 위한 한글전용교육을 수십년 간 해옴으로써 이미 국민일반에 非反動的 사고를 함양하는 교육이 상당히 진척되었다.
보안법개폐에 대한 좌익의 압력이 어느 때보다도 고조된 지금, 아예 그 요구를 전면 받아들이면서, 보안법의 폐지와 맞바꿀 빅딜을 제안한다.
바로 좌익들에게 사상표현의 자유를 제한 없이 허락하는 대신에 우익의 사상표현의 기회도 좌익과 동등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익이 무슨 사상표현의 자유가 없었느냐 물을지 모르지만 바로 앞서 말한 좌편향의 어문정책은 우리 한국인들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知的向上과 전통의 氣를 억누르는 효과를 가져오면서, 쉽고 단순한 방식의 문자문화 이외에는 커나갈 수가 없는 상태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에서는 진지하고 보수적인 담론은 자리잡지를 못하게 되고 충동적이고 선정적인 혁신논의만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된다.
기존의 모든 가치를 냉소하면서 인간 양심의 거침이 없이 밀고 들어오는 좌익사상과 싸우려면 知性의 힘으로 물리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성의 창칼을 다듬어오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다음의 사항이 이루어진다면 보안법의 폐지에 동의하는 바이다.
- 초등학교 정규수업시간에 한자교육을 전면 실시한다.
- 중고교 전과목 교과서를 한자혼용으로 발간한다.
- 각 관공서의 현판과 팻말을 한자로 쓴다.
- 서울대학교의 입시논술을 한자혼용으로 출제한다.
- 정부기금으로 기업에 세로쓰기기능이 강화된 문서편집기를 개발하도록 지원한다.
- 정부, 공공단체는 국민 독서의 권장을 위해 세로쓰기로 조판된 문학서를 보급한다.
- 정부출연 언론사인 <대한매일>은 제호를 한자 서예체로 하고 세로쓰기 조판을 한다.
- 국어와 국사 교과서 등의 세로쓰기 조판을 실시한다.
만약에 좌파인사들이, 바로 보안법의 폐지라는 커다란 교환조건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반대한다면 이제까지 그들의 사상표현의 자유에 대한 주장이 헛된 것이었고 사실은 그들이 바라는 바가 민족문화의 뿌리말살을 통한 이 사회의 근본적인 체제변혁에 있었음을 自認하는 것이고,
만약 우파인사들이 이것을 반대하여, 우리사회의 정체성 회복을 통한 전통가치 수호 및 근본적인 體制 鞏固化(공고화)의 길을 등한시한다면, 그들은 그저 냉전상황에서의 반사이익을 추구하는 수구기득권세력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물론 어문정책의 효과는 상당한 기간이 지나고서야 나타나지만 보안법 폐지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나므로 동시에 같이 다루어지기 어렵다 할 수도 있다. 또한 위의 8 개항이 보안법의 폐지처럼 곧바로 전면적으로 시행되기 또한 매우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위의 8개항이 조속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시행되어 나가면서, 보안법도 그에 따라 점진적으로 개폐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월간 <한국논단> 2000년 3월 필자의 위와 같은 기고문에 당시의 보수일간지는 물론 월간지도 어느 곳 하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다만 월간 <인물과 사상> 2000년 4월호에서 강준만 교수는 그 즈음 있었던 '이문열과 젖소부인' 논쟁을 하던 김에 이 事案(사안)을 거론했다.당시의 강준만 교수의 글과 <인물과 사상> 2000년 5월호에 실린 필자의 반론을 여기 다시 게재한다.
이문열과 '젓소부인' 의 관계 (2)
강준만
진중권이란 '임자'를 만난 이문열
끊임없이 나도는 음모설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는 정부나 여당이 총선연대의 조직과 활동에 개입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을뿐더러 시민단체의 선의를 의심할 근거도 없다. 그들이 내건 대의는 누구도 대놓고 부정하기 어렵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그들의 활동을 오히려 필요하고도 시의적절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총선연대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면 자꾸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활동이 이제 시작이며, 정말로 중요한 전개와 변화는 앞날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가 이문열이 {중앙일보} 2000년 2월 8일자 6면 <시론: 홍위병을 돌아보며>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하신 말씀이다. 이 양반이 개그맨으로 데뷔하겠다는 것인가? 그럴려면 방송사 로비에서 어슬렁거리면서 PD를 쫓아다녀야지 왜 신문에 대고 개그를 하시나? 하기야 개그라고 해서 꼭 방송에서만 하란 법은 없으니 나의 고정관념이 문제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평소 수준 낮은 개그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갖고 있는 진중권이 이문열의 그런 만용을 그대로 지나칠 리 없다. 이문열로선 여태까지 그런 칼럼을 마구 써대도 무사했는데 '임자' 한번 제대로 만난 거다. 진중권은 {중앙일보} 2000년 2월 11일자 6면에 기고한 <시론: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문열의 논리와 어법을 이문열에게 그대로 되돌려준다. 이건 논리 교과서에 실려 마땅한 명문이다. 진중권은 이렇게 말한다.
<에로영화 스타 젖소 부인과 소설가 이문열의 관계는?> 이런 제목의 기사는 대중을 즐겁게 해준다. 설사 그 기사가 '아무 관계도 없다'는 허탈한 내용을 담을지라도 말이다. 혹시 이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경우에는 표현을 슬쩍 바꾸면 된다. 가령 이렇게. "젖소부인과 이문열 사이에 내연의 관계가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즉 두 사람의 관계는 한마디로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관계'다." 이건 나치 선전상 괴벨스가 즐겨 사용하던 어법이다. 어쨌든 아무 '증거'나 '근거'도 없이 이문열은 과감하게 총선연대를 중국 문혁기의 '홍위병'에 비유한다. 고약한 상상력이다. (중략) 이제 그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아무쪼록 그 언어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얻어맞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체험해보는 귀한 시간이 됐으면 한다. "이문열씨는 지금은 존경받는 소설가이지만 앞으로는 모 정당의 대변인이 되거나 그 당의 공천을 받을 수도 있다. 끊임없이 나도는 야합설에도 불구하고 물론 현재까지 이런 발언을 하는 이문열씨가 정치권 일각의 사주를 받았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을뿐더러 그의 선의를 의심할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행각을 보면 자꾸 나치 친위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의 활동이 이제 시작이며, 정말로 중요한 전개와 변화는 앞날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문열은 '권위주의의 화신'?
사람들은 흔히 부실한 말 개그를 코치하는 솜씨가 뛰어난 1인자로 전유성을 높이 평가한다. 나는 부실한 글 개그를 코치하는 솜씨로는 진중권이 1인자이며 말 개그와 글 개그를 통털어 따지면 진중권이 전유성을 능가한다고 생각한다. 전유성은 결코 서운해 할 일이 아니다. 아무리 말 개그와 글 개그의 영역이 다르다곤 하지만 명색이 개그계의 대부로서 이문열과 같은 사이비 개그맨을 여태까지 그대로 방치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나는 진중권의 탁월한 코치 솜씨에 감동받았다. 그래서 <이문열과 '젖소 부인'의 관계 2>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저작권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제2탄이라는 표시를 했으니 너그럽게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이 '사건'의 나머지 부분을 소개하고 내 이야기로 들어가겠다.
나는 진중권의 반론을 읽으면서 이문열이 절대 재반론을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문열은 재미없는 개그를 하면서도 자신에 대해 엄청난 과대평가를 하는 개그맨이기 때문이다.나는 그가 '권위주의의 화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장유유서(長幼有序)와 이른바 '네임 밸류따지기'를 좋아하는 인물이라는 의심은 갖고 있지만 증거는 없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다.
나는 이문열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네임 밸류'가 자신에 비해 뒤진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정정당당하게 논쟁에 임한 걸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내가 본 적이 없을 뿐이니 혹 그런 경우를 아시는 분이 있으면 제보바란다. 좌우지간 내가 아는 한 이문열이 즐겨쓰는 수법은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 '뒤통수 때리기'다. 애들 하고 어떻게 맞싸울 수 있겠느냐는 걸까? 요 이야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순서에 따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내 확신대로 이문열은 재반론을 하지 않았다. 그대신 대타가 나섰다. 누군가? 소설가라는 박경범이다. 그는 {중앙일보} 2000년 2월 15일자 6면에 <시론: '언어폭력가'는 안된다/ 진중권씨 글과 그의 앞날에 대한 우려>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의 개그는 이문열의 개그보다 더 수준이 떨어지는 개그다. '언어 폭력'은 이문열이 먼저 저지른데다 이문열의 '언어 폭력'이 훨씬 더 심했는데, 진중권의 앞날을 걱정하겠다니 이게 웬말인가? 그래도 박경범의 핵심 주장은 들어주자.
사실 그들 행위의 주체들이 권부로부터의 지시선상에 있든 없든 간에 국가체제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직접 지시의 증거가 없다고 해서 국가 체제가 그 책임을 덜 수는 없을 것이다. 상부로부터의 직접적이고 체계적인 비밀 지시가 있었느냐는 증거의 존재 여부로 음모론을 저울질하고 권력의 도덕성을 판가름하려는 것은 과거의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무모한 것이라 하겠다.
박경범은 그리 말씀하시곤 칼럼을 "진중권씨는 혹 언어에 의한 폭력을 전문으로 삼는 '언어폭력가'로 나아가지나 않을까 하는, 앞날의 중요한 전개와 변화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차라리 박경범의 인물 사진을 활짝 웃는 사진으로 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웃지도 않는 얼굴로 그런 개그를 해대시니 이 노릇을 어찌하랴.
이문열의 개그보다 더 수준 낮은 박경범의 개그
'사상 검증'의 1인자인 {한국논단} 2000년 3월호를 보았더니 박경범이라는 소설가가 <보안법 폐지론자들에게 어문(語文)정책개혁을 제안한다>는 글을 기고했다. 나는 이 박경범이 그 박경범인지는 모르겠다.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좀 많은가. 그러나 이 박경범이나 그 박경범이나 매우 재미있는 분이라는 건 분명하다.{한국논단}쪽 박경범은 과연 무슨 제안을 했을까? 아마 이문열도 깜짝 놀라 자빠질 그런 제안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디 그 핵심 내용만 살펴볼까?
보안법 개폐에 대한 좌익의 압력이 어느 때보다도 고조된 지금, 아예 그 요구를 전면 받아들이면서, 보안법의 폐지와 맞바꿀 빅딜을 제안한다. (중략) 만약 다음의 사항이 이루어진다면 보안법의 폐지에 동의하는 바이다. --초등학교 정규수업시간에 한자교육을 전면 실시한다. --중고교 전과목 교과서를 한자혼용으로 발간한다. --각 관공서의 현판과 팻말을 한자로 쓴다. --서울대학교의 입시 논술을 한자 혼용으로 출제한다. --정부 기금으로 기업에 세로쓰기 기능이 강화된 문서편집기를 개발하도록 지원한다. --정부, 공공단체는 국민 독서의 권장을 위해 세로쓰기로 조판된 문학서를 보급한다. --정부 출연 언론사인 {대한매일}은 제호를 한자 서예체로 하고 세로쓰기 조판을 한다. --국어와 국사 교과서 등의 세로쓰기 조판을 실시한다.
이거 절대로 웃으면 안된다. 박경범은 매우 진지하게 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그러니 어금니를 깨물고 배에 힘을 주면서라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다시 그 박경범 이야기로 돌아가자. 진중권은 매우 인내심이 강하고 자상한 코치다. 진중권의 '지도 말씀'을 들어보자. 진중권은 {중앙일보} 2000년 2월 17일자 6면에 쓴 <시론:속 이문열과 '젖소부인' 관계>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근 나는 사설 정보팀으로부터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를 암시하는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즉 지금 청계천에는 '젖소부인 바람났네'라는 비디오테이프가 나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젖소부인이 바람났다는 것은 확인됐다. 문제는 젖소부인의 파트너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누굴까. 물론 그 남자가 이문열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렇다고 그까짓 '증거의 존재 여부'로 둘의 내연의 관계를 말하는 내 주장을 감히 '저울질하고' 이문열의 '도덕성을 판가름하려는 것은 ... 무모한 것이라 하겠다.' 보라. 이렇게 해괴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가. 그럼 이문열씨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사태가 이 정도에서 그친다면 나는 아예 이 글을 쓰지 않았다. 문제는 계속된다. 왜. 이어서 나는 이렇게 물을테니까. '이문열씨, 왜 직접 나서서 반론을 하지 않고 기껏 유겐트를 내세우고 그 뒤로 숨어요.' 물론 박경범씨는 이문열과 무관함을 주장하며 오직 청년 진중권의 '앞날에 대한 우려'에서 그 글을 썼다고 호소할 것이다. 어쩌면 내게 자기가 이문열의 지시로 그 글을 썼다는 증거를 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사실 박경범씨가 이문열로부터의 "지시 선상에 있든 없든 간에" 이문열과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또한 직접 지시의 증거가 없다고 해서" 이문열이 "그 책임을 덜 수는 없을 것이다." 이문열씨, "책임지세요.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보라, 박경범의 말이 옳다고 가정하니까 존경받는 소설가가 졸지에 치졸한 사람으로 전락하지 않는가. 이 부조리한 사태를 누가 원하겠는가.

{조선일보}로 도망쳐 화풀이하는 이문열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 사건은 이렇게 진중권의 KO 승으로 끝났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문열이 무대를 바꿔 나타난 것이다. 이문열은 {조선일보} 2000년 2월 19일자 7면에 쓴 <아침생각: 공자가 죽으면 나라가 살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앞서 내가 말한 바 있는 '뒤통수 때리기' 수법을 감행한 것이다.
이문열은 그 칼럼에서 세상을 개탄한다. "비방과 욕설은 용기의 딴 이름이며 고발과 폭로는 정직의 표상이다." 하긴 나는 총선연대에 대한 이문열의 실질적인 비방과 욕설을 보면서 그의 '용기' 하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문열은 자기 이야기를 한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문열이 {중앙일보}에서 도망쳐 {조선일보}라는 피난처 무대에서 분노하며 뿜어내는 사자후(獅子吼)를 들어보자.
참으로 세상이 뒤집혀도 어찌 이리 뒤집혔을꼬. 천명 같이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은 무시하고 비웃는 것이 요즘 지혜이다.그리고 그 지혜를 가진 사람을 높이 쳐주니 지금 세상에서는 그가 오히려 군자가 된다. 조금이라도 옛날의 대인 비슷하게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으면 악착같이 달라붙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되잖은 논쟁이라도 아득바득 벌이는 것을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는 지적(知的) 파파로치들은 공자에게는 틀림없는 소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걸 똑똑하고 잘난 것으로 여기니 이쯤 되면 공자는 죽어도 무참하게 죽었다. 거기다가 끔찍한 일은 이 같은 공자의 말을 대하는 요즘 군자들의 태도이다. 그래도 옳은 말씀이 있다 싶어 몇 구절이라도 인용하게 되면 몽매하고 썩은 보수주의자요, 봉건주의자 파시스트이며, 심하면 왕도 없는 시절에 난데없이 왕당파라고 욕을 퍼부어 댄다. 공자의 시체까지 관에서 끌려나와 허리를 베인 꼴이다.
이문열이 진중권으로부터 얻어 맞은 상처가 그리 깊었나? 하기야 말 싸움으로 어찌 감히 진중권에 대적할 수 있으랴. 열 받을 만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문열의 행태를 보면서 서울에서 큰 사고 치고 당하게 되니까 자기 동네 내려가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저질 정치인의 몰골을 보는 것 같아 영 씁쓸하다. 애향심(愛鄕心)을 그렇게 모독해도 되는 건가? 이문열은 갑자기 공자를 방패로 삼는데 이건 유림(儒林)이 들고 일어나야 할 만큼 공자에 대한 모독이다.
공자를 걸고 넘어지는 '아마츄어 파파로치'
공자의 말을 "몇 구절이라도 인용하게 되면 몽매하고 썩은 보수주의자요, 봉건주의자 파시스트이며, 심하면 왕도 없는 시절에 난데없이 왕당파라고 욕을 퍼부어 댄다."고? "공자의 시체까지 관에서 끌려나와 허리를 베인 꼴이다"고? 이거야말로 큰 일 날 소리다. 증거를 대라. 누가 그러던가? 그건 성균관대를 나온 내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 만약 이문열이 증거를 대지 못하고 짐작으로 한 말이라면 성균관 대성전에 무릎꿇고 빌어야 마땅하다.
아마도 누가 이문열에 대해 그런 말을 했다면, 그건 공자와는 무관하게 이문열이 그런 말을 들을 만한 짓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잘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예컨대,어떤 사람들은 "총선연대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면 자꾸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라는 이문열의 말에서 '몽매하고 썩은 보수주의자'이자 '봉건주의자 파시스트'의 냄새를 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이문열 개인의 잘못으로 빚어진 일인데 왜 거기에 감히 우리 공자님을 끌어 들이는가?
나는 이문열의 개그 가운데 "조금이라도 옛날의 대인 비슷하게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으면 악착같이 달라붙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되잖은 논쟁이라도 아득바득 벌이는 것을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는 지적(知的) 파파로치들은 공자에게는 틀림없는 소인이다."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이문열의 개그가 갈 데까지 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른바 '막가파 개그'라고나 할까?
나는 "조금이라도 옛날의 대인 비슷하게 평가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무척 궁금하다. 혹 이문열 자신을 가리키는 걸까? 대인이 한 말씀 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경청할 일이지 왜 대드느냐고 일갈하고 싶었던 걸까? 설마 아니 이문열이 그렇게까지 뻔뻔하진 않을 게다. 그래서 몹시 궁금하다. 그런 분께 대드는 '지적 파파로치'가 있으면 내가 혼내주고 싶어서 그런다. 꼭 알려주시기 바란다.
'지적 파파로치'라는 말이 재미있다. 나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비방을 해대던 이문열이야말로 바로 '지적 파파로치'의 전형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 총선연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문열은 '지적 파파로치'의 자격조차 없는 게 아닐까? 파파로치는 그래도 프로 근성은 있다. 그런데 이문열은 툭 건드려보았다가 여의치 않으니까 줄행랑을 친 게 아니냐 이 말이다.
{중앙일보}는 이문열을 배신했나?
이문열은 혹 {중앙일보}에 대해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조선일보}라면 진중권의 반론같은 건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개망신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아마 진중권도 이문열이 그 문제의 칼럼을 {조선일보}에 썼더라면 {조선일보}에 반론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이문열은 다른 신문에의 나들이를 일체 중단하고 평생 동지라 할 {조선일보}에만 둥지를 트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문열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중앙일보}도 이문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지 논설주간 권영빈이 나서서 '교통 정리'를 해주는 수고를 했다. 권영빈은 {중앙일보} 2000년 2월 18일자 6면에 쓴 <권영빈 칼럼: 내 마음속 DJ 정서>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이문열에게 위로의 말을 보냈다.
최근 중앙일보에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작가 이문열이 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해 '홍위병을 돌아보며'라는 제목으로 향후 운동방향에 대한 경고를 보냈다. 곧이어 문화비평가 진중권이 '이문열과 젖소부인 관계'라는 반론을 썼다. 두 글이 나가자 사내외에서 비판과 지지의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나 유심히 귀 기울여 들으면 대체로 비판과 지지의 근거가 평소 친 DJ냐 반 DJ냐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섬뜩한 사실에 놀란다. 친 DJ면 '젖소부인' 편이고 반 DJ면 '홍위병' 편이다. 주장이나 논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내 마음속 DJ 정서 또는 그 정서의 대부분을 차지할 지역감정에 따라 결론은 이미 나 있다.
이문열은 권영빈의 이 말을 '위로'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나, 나는 권영빈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KO 패 당한 이문열에게 무승부라는 위로 선물을 안겨주고자 하는 매우 불공정한 심판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칼럼을 쓴 권영빈의 선의는 이해할 수 있으며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내 마음속 DJ 정서'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이문열과 진중권 논쟁의 사례를 드는 건 전혀 적절치 않다. 특히 진중권을 가리켜 '친 DJ'라고 그러면 진중권이 기절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총선연대 주도자들 가운데엔 '반 DJ' 인사들 수두룩하다. 제발 뭘 좀 제대로 알고 이야기하시라.
'이문열 현상'의 비밀
나는 '이문열 현상'--매우 수준 낮은 개그를 하면서도 퇴출당하지 않고 건재하는 기이한 현상--은 지역주의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이문열은 비단 이번 경우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모욕적인 주장을 자주 해온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어도 언론매체에서는 여전히 막강한 '문화 권력'을 누리고 있으며 그의 '문화 권력'이 영남에만 국한 된 것도 아니다.
나는 '이문열 현상'은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단 기득권 세력에 편입되어 큰 힘을 얻으면 몰락하기가 참 어렵다. 3김만 '쓰리 세븐'이라고 비웃을 게 아니다. 정치판이나 문단이나 똑같다. 그 이유가 무얼까? 그 이유는 앞서 이문열이 사실상 이야기한 거나 다름없다. 비판과 논쟁을 원천 봉쇄하라!
이문열은 기본적으로 비판과 논쟁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적어도 이 점에선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비판과 논쟁을 하는 사람을 '지적 파파로치'로 간주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 한다. 이문열 자신이 비판하거나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비판하는 건 예외다. 이문열이 그간 민주화 세력에게 퍼부었던 독설과 언어 폭력은 그 어떤 세계적인 '지적 파파로치'도 넘보기 어려운 수준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문열은 자신에 대한 비판과 논쟁을 두려워하는 본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모든 것이 다 들통나기 때문이다. 이문열에겐 불행중 다행히도 한국엔 아직도 제대로 된 비판문화가 없다. 이래 저래 다 구린 구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침묵의 카르텔' 체제가 언론계 뿐만 아니라 문단과 학계에 굳건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이문열은 '문화 권력'으로서 장수를 누려왔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 현상은 대중매체 종사자들이 갖고 있는 직업적인 무사안일주의와 맞물려 있는 것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어찌나 소심하고 게으른지 '안전빵'을 너무 좋아해 장사를 위해 지나칠 정도로 스타에 의존한다. 방송 PD만 그런 게 아니다. 신문 기자들이 더한다. 누가 좀 뜬다 그러면 모두 다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지면을 도배질한다. 화제의 인물을 부각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모두 다 똑같이 그런다는 게 문제라는 말이다. 이른바 '김용옥 신드롬'을 포함하여 한국 사회의 모든 '신드롬'과 한국인들이 자랑하는 '우우 몰려다니기'는 상당 부분 PD와 기자들의 그런 무사안일주의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스타를 그렇게 집중적으로 우려먹으면 스타의 수명이 짧아지지 않느냐, 그런데 이문열은 장수하고 있으므로 달리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제기 될 법 하다. 맞다. 그래서 스타에겐 '자기 관리'가 필요한 것이고, 자기 관리를 잘해 장수하는 스타를 가리켜 우리는 '대스타'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국 문단의 대스타 이문열의 대중매체 이용 감각을 포함한 자기 관리 능력은 대단히 탁월하다. 물론 자신의 인맥 관리 솜씨도 탁월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옛날의 대인 비슷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가 자신의 돈을 들여 후학을 양성하겠다고 만든 부악문원도 그런 대인다운 풍모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문열의 권력 욕망과 젖소부인의 성애 욕망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간 이문열의 보호막으로 기능하던 그 강고한 '침묵의 카르텔' 체제에 서서히 균열이 일고 있지 않은가. 최근 이문열의 부악문원에 지원자가 미달한 것도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다. 이문열은 두렵다. 그가 {선택}이라는 스턴트를 감행한 것도 "작금의 세상에 대해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번의 두려움은 그때의 두려움보다 더 크다.
선택은 분명하다. 이문열은 '침묵의 카르텔' 체제에 균열을 내려는 사람들을 '지적 파파로치'로 매도하면서 자신의 '수명 연장'을 꾀하려고 몸부림을 친다. 심지어 공자까지 전혀 맥락에 닿지 않는 곳에 끌어들여 공자를 모독하는 무리수를 저질러가면서까지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문열이 그런 발버둥을 멈추고 자신의 분수를 깨닫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권력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로 강한가? 문단 권력만으론 만족 못하겠댄다. 한국 정치의 향방에 대해서도 자신이 꼭 영향력을 행사해야겠댄다. 그거야 총선연대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맞다. 그러나 한가지 큰 차이가 있다.
그건 비판에 열려있고 논쟁과 토론을 할 뜻이 있느냐 하는 거다. 이문열에겐 그게 결여되어 있는 거다. 그래서 총선연대의 소신은 '권력 의지'가 아니라 '개혁열망'인 반면 이문열의 경우엔 개인적인 아집과 오만이 뒤범벅된 '권력 의지'인 것이다. 나는 그의 강한 권력 의지에 대해선 이미 충분한 증거를 제시한 바 있으니, 금시초문이라는 독자들께서는 앞서 내가 각주에 밝힌 나의 다른 글들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어찌됐건 그런 처절한 권력 의지가 바로 오늘의 이문열이라는 화려한 성공을 만들어낸 원동력일진대 그걸 포기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인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 2>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할 때다. 답은 이미 나왔다.
두 사람은 아무런 개인적인 관계는 없지만 두 사람 모두 강한 의지와 욕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선 통하는 면이 있다. 한 사람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요 또 한 사람은 성애에 대한 욕망이다. 그러나 그런 공통점만을 갖고서 마치 두 사람 사이에 그 어떤 불륜이라도 있는 것처럼 고약한 상상력을 발휘해선 안될 것이다. <인물과 사상> 2000/4
강준만의 <이문열과 ‘젖소 부인’의 관계 (2)>를 읽고 답변
박경범│소설가│
필자는 1998년 10월 {월간조선}에의 기고와 동년 11월의 교육방송 토론 등에서 주류문단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주류문단의 대응은, 매체의 지면에서는 끝끝내 무시할 때까지 무시하다가, 정 못 참겠다 싶으면 다른 방법으로 뒤통수를 치는 수법이었다. 그런데 월간 {인물과 사상}은 그러한 수법을 쓰지 않고 지난 4월호에 필자를 직접 거명하니 적어도 그런 비열한 아류에는 속하지 않는다 생각되어 일면 반갑기도 하다.
일단 본인을 처음 소개할 때 “소설가라는”이라 한 것은 {조선일보}와 뜻을 같이하는 태도였다. {인물과 사상}에 있는 분이면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알겠고 저자명으로 서적검색을 하면 이 사람이 어떤 책을 썼는지 금방 알수 있을 것인데 ‘소설가’라는 얼어죽을 호칭을 인정할까 주저한 것이다. 사실 책 한 권 펴냈다고 곧바로 소설가 운운하는 것은 쑥스러운 노릇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럴 수 있겠구나 ……’ 할 수는 있는 것이다. 물론 일간지 중에는 주류문단의 인정이 없으면 소설책을 아무리 펴내도 소설가라 인정치 않는 곳이 있는데 바로 {조선일보}이다. 본인을 소설가라 인정한 일간지는 {중앙일보}, {국민일보}, {한겨레}인데 월간 {인물과 사상}은 {조선일보}와 연대하여 ‘아무나 소설가를 참칭하지 못하게 하는 운동’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자칫 무시되고 말 위기에 처해 있던 본인의 ‘보안법 폐지에 관한 빅딜제안’을 인용한 것은 매우 반갑고 감사하게도 생각한다. 그런데 동의하느냐 아니냐, 혹은 관련이 없다면 왜 관련이 없느냐를 얘기해야지 그저 허파에 바람 새는 소리만 낸다면 기껏 선심을 써 주고는 아무런 보람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자를 우리문자로 쓰고 세로쓰기를 통용시키는 문화사회라면 차라리 보안법 체제하를 택하겠다’라고 당당히 말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무조건 ‘둘 중 하나 택하라’는 것이 우스울 수 있다. 마치 마누라를 빼앗아간 불한당이, 남편이 마누라를 내놓으라니까 ‘마누라하고 집 중에 하나를 다오’ 하는 소리에 대꾸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여겨진다면 ‘보안법 폐지’와 ‘좌향어문정책의 고수’는 실로 한국의 좌파들이 놓치지 않을 두 마리 토끼라 볼 수 있다.
필자는 {조선일보} 사회부와 법정소송을 할 일이 있는데 만약 {조선일보}에서 ‘보안법…’의 내용을 실어준다면 고소를 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일보}에서는 ‘보안법과 어문정책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재판을 하면 했지 그런 얘기는 안 싣는다고 했다. 이점 참고하여 월간 {인물과 사상}은, {조선일보}와 연대하여 본인의 ‘보안법…’ 제안을 마음껏 비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보안법과 어문정책이 관련이 없는 것이라는 자들에게, 필자는 당돌하게도, ‘그렇다면 관계가 없다는 증명을 보이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만약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가 유명 영상수필가 서모씨와 차를 마시거나 산책을 하는 광경이 한번도 아닌 두번씩이나 목격되었다고 하자(한번이라면 먼저 필자의 글처럼 …… 우연이랄 수 있으므로^^). 그렇다면 진중권 씨는 당연 서씨와의 관계가 오해의 소지가 없음을 팬들에게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세로쓰기를 했던 한자문화권의 국가로는 한국, 북한, 일본, 중국, 대만, 월남을 들 수 있다.
이 중 일본과 대만은 자유민주체제를 지키며 한자와 세로쓰기를 교육시키고 있다. 반면 공산당 혁명이 일어난 중국은 가로쓰기 교육과 간체자 교육을 실시한다. 북한은 가로쓰기 국어교육은 물론, 남한보다 앞서 한글전용을 단행하였고 성인을 위한 독서물에서도 일찍이 {로동신문} 등에서 가로쓰기를 단행하였다. 또한 자국의 고유문자를 버리고 남북 모두 로마자를 빌어씀으로써(당연 가로쓰기) 전통문화의 뿌리를 뽑았던 월남은 공산화로의 통일이 되었다.
이와 같이 일본, 대만의 경우와 중국, 북한, 월남의 경우에 어문정책과 국가 체제가 정확히 일치하는데 어떻게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관련이 없다면 없음을 증명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말로 강준만 님과 진중권 님이 배를 틀어잡고 웃으리라는 각오를 하고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한다. {인물과 사상}의 논조에 공감하는 지식인들이 정말 자유민주 체제 안에서의 온전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국가 체제가 어찌되고 전통문화니 민족정체성이 어찌되든 간에, 케케묵은 보안법 논리로 기득권이나 유지하려는 자들을 이 땅에서 거세하기 위하여 함께 힘을 합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우리보다 훨씬 더 주변국에서 위협을 받는 대만, 이스라엘은 보안법 없이도 끄떡없이 잘 해나가고 있지 않는가(이스라엘은 영문과의 혼용에 있을 많은 ‘불편’에도 불구하고 오른쪽부터 읽는 히브리어의 전통을 버리지 않고 있음). <인물과 사상> 2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