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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고 싶은 책
  • 이종철 기자
  • 등록 2026-05-19 22:30:02

올 해는 내가 출판할 책들이 여러 권 된다. 다들 전문적인 학술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정말 쓰고 싶은 책이 있다. 나는 남의 책이 아니라 내 책을 쓰고 싶다. 


1. 나는 추상적인 철학 개념들을 사용하지 않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쉬운 말들로 철학 책을 쓰고 싶다. 철학이 대중들의 삶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철학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너무나 전문적이고 너무나 현실과 유리된 데도 있다. 이런 개념들이 전문 아카데미의 차원에서는 필요할 지 몰라도 그 성벽을 넘어서는 순간 오히려 대중과 소통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 철학은 전문가들만의 도구가 아니다.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그들 삶을 반성하고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다. 일찌기 소크라테스는 "음미 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했다. 때문에 그들에게도 철학은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데 유용한 도구이다. 그런데 이들이 철학을 그런 도구로 삼아 작업을 하고 싶어도 당장 어려운 철학 개념들 앞에서 절망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철학은 이들이 자신의 자아와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표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반인들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철학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의 대중화는 쉬운 우리 말 일상어를 쓰는 데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2. 나는 허구헌 날 남의 철학을 수입하고 번역하는 일을 당연시하는 서양 철학이나 오래된 전통과 전승에만 매달리는 동양 철학의 패턴을 벗어나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 지금까지 철학을 한다고 하면 의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나 칸트, 헤겔이나 하이데거나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공부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이런 사정은 동양 철학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공맹이나 노장, 제자 백가와 같은 오래 전의 철학자들이나 퇴계나 율곡같은 과거 한국의 뛰어난 철학자를 언급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런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의 내용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사상 만을 연구하는 것이 철학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자기 생각을 개념화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 '자기'라는 주체를 강조한다. 그런데 끊임없이 남의 생각과 남의 이론에만 매달리고 그것을 연구하는 일에만 평생을 보내다 보니 정작 자기와 자기 생각이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 사유가 없는 철학은 기껏해야 훈고학이나 주석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현대 한국에서 수많은 철학 교수들과 연구자들이 넘치지만 정작 자기 사유를 하는 철학자는 눈을 비비고 찾아 보아도 없다. 이처럼 자기 철학이 없는 현재의 철학이 어떻게 대중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오늘 날 한국에서 철학이 대중화되지 못하고, 대중들의 인식에서 폄하되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한국적인 의미에서의 자기 철학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올 해는 내가 출판할 책들이 여러 권 된다. 다들 전문적인 학술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정말 쓰고 싶은 책이 있다. 나는 남의 책이 아니라 내 책을 쓰고 싶다. 


1. 나는 추상적인 철학 개념들을 사용하지 않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쉬운 말들로 철학 책을 쓰고 싶다. 철학이 대중들의 삶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철학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너무나 전문적이고 너무나 현실과 유리된 데도 있다. 이런 개념들이 전문 아카데미의 차원에서는 필요할 지 몰라도 그 성벽을 넘어서는 순간 오히려 대중과 소통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 철학은 전문가들만의 도구가 아니다.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그들 삶을 반성하고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다. 일찌기 소크라테스는 "음미 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했다. 때문에 그들에게도 철학은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데 유용한 도구이다. 그런데 이들이 철학을 그런 도구로 삼아 작업을 하고 싶어도 당장 어려운 철학 개념들 앞에서 절망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철학은 이들이 자신의 자아와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표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반인들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철학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의 대중화는 쉬운 우리 말 일상어를 쓰는 데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2. 나는 허구헌 날 남의 철학을 수입하고 번역하는 일을 당연시하는 서양 철학이나 오래된 전통과 전승에만 매달리는 동양 철학의 패턴을 벗어나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 지금까지 철학을 한다고 하면 의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나 칸트, 헤겔이나 하이데거나 비트겐슈나인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공부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이런 사정은 동양 철학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공맹이나 노장, 제자 백가와 같은 오래 전의 철학자들이나 퇴계나 율곡같은과거 한국의 뛰어난 철학자를 언급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런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의 내용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사상 만을 연구하는 것이 철학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자기 생각을 개념화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 '자기'라는 주체를 강조한다. 그런데 끊임없이 남의 생각과 남의 이론에만 매달리고 그것을 연구하는 일에만 평생을 보내다 보니 정작 자기와 자기 생각이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 사유가 없는 철학은 기껏해야 훈고학이나 주석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현대 한국에서 수많은 철학 교수들과 연구자들이 넘치지만 정작 자기 사유를 하는 철학자는 눈을 비비고 찾아 보아도 없다. 이처럼 자기 철학이 없는 현재의 철학이 어떻게 대중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오늘 날 한국에서 철학이 대중화되지 못하고, 대중들의 인식에서 폄하되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한국적인 의미에서의 자기 철학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3. 나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와 삶을 표현하고 싶다. "철학은 사유 속에 포착한 그 시대"라는 헤겔의 명제를 한국의 철학자들은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철학 속에는 '우리의 시대'가 빠져 있다. 그들이 '근대'(Modern)를 이야기할 때, 그들은 전근대와 근대를 차별 짓는 다양한 조건들을 빼곡히 기술한다. 근대를 탄생시킨 사회적이고 기술적인 조건과 물질적 생산 방식 그리고 생산관계를 언급하고, 근대인의 독특한 사유방식과 체계, 그리고 근대적 주체의 사유와 행동 방식 등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을 한다. 말하자면 서구에서 일반화된 의미에서 '근대'를 구성하는 핵심 사상을 통해 근대를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탈근대'(Post-Modern)을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근대와 탈 근대의 차이, 탈 근대가 탄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조건과 탈 근대를 특징 짓는 사유 등 다양한 부문들에 대해 다양하게 설명을 한다. 한국의 철학자들은 이런 연구를 하면서 자신들이 철학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정작 그들-여기에는 나도 포함된다-이 설명하는 시대 속에는 '우리의 시대'와 우리의 사유가 빠져 있다. 이렇게 우리의 시대와 우리의 사유가 빠지다 보니 아무리 철학을 연구해도 우리의 삶과 사유를 표현하는 '우리의 철학'이 나올 수가 없다. "한참 울고 보니까 남의 초상집"이라는 말처럼, 열심히 연구를 하면서 철학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철학은 하나도 한 것이 없다. '자기가 부재하는 철학', '우리 시대가 배제된 철학'을 과연 우리 자신의 철학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4.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의 경험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이다. 한국은 근대화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나라를 잃고 식민지로 전락하는 뼈아픈 경험을 했고, 냉전의 최 전선으로 내몰려서 동족 간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잃는 고통도 경험했다. 한국은 오랜 가난을 벗어나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온 국민들이 고통스럽게 노력했고, 유신 독재와 군부 독재의 엄혹한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뤄 민주화도 이룩했다. 한국의 20세기는 한국인들의 고통과 희생이 점철되고, 한국인들의 성취와 영광이 빛나던 시대였다. 이런 우리 시대와 삶만큼 드라마틱한 시대, 철학적 사유를 위한 풍부한 자원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이런 독특한 경험을 하고서도 그것을 개념화한 철학이 없다고 한다면 도대체 철학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서구인들은 봉건 시대를 넘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근대'에 대한 철학적 개념화를 이룩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철학자들은 모던과 포스트 모던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의 시대'만을 언급할 뿐 신산(辛酸) 한 '우리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어떻게 '우리의 철학'이 나올 수 있을까? 내가 말하는 '우리의 철학'은 결코 쇼비니즘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철학의 보편성 뿐 아니라 특수성으로서 우리 자신의 삶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철학이 지금 여기에서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제는 우리가 놓치고 있고, 미처 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삶과 시대를 우리 자신의 언어로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 좀 더 힘써야 한다. 이제 번역과 훈고를 넘어서 독립적인 사유를 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올 해 나는 이런 형태의 철학을 먼저 대중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철학서를 쓰기 위한 계획을 세워 놓았고 출판사와 계약도 맺었다. 비록 소박하고 미숙한 형태가 될 지 몰라도 무조건 저질러야 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쓸 수가 없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글을 쓰는 데서도 마찬가지이다.

3. 나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와 삶을 표현하고 싶다. "철학은 사유 속에 포착한 그 시대"라는 헤겔의 명제를 한국의 철학자들은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철학 속에는 '우리의 시대'가 빠져 있다. 그들이 '근대'(Modern)를 이야기할 때, 그들은 전근대와 근대를 차별 짓는 다양한 조건들을 빼곡히 기술한다. 근대를 탄생시킨 사회적이고 기술적인 조건과 물질적 생산 방식 그리고 생산관계를 언급하고, 근대인의 독특한 사유방식과 체계, 그리고 근대적 주체의 사유와 행동 방식 등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을 한다. 말하자면 서구에서 일반화된 의미에서 '근대'를 구성하는 핵심 사상을 통해 근대를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탈근대'(Post-Modern)을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근대와 탈 근대의 차이, 탈 근대가 탄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조건과 탈 근대를 특징 짓는 사유 등 다양한 부문들에 대해 다양하게 설명을 한다. 한국의 철학자들은 이런 연구를 하면서 자신들이 철학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정작 그들-여기에는 나도 포함된다-이 설명하는 시대 속에는 '우리의 시대'와 우리의 사유가 빠져 있다. 이렇게 우리의 시대와 우리의 사유가 빠지다 보니 아무리 철학을 연구해도 우리의 삶과 사유를 표현하는 '우리의 철학'이 나올 수가 없다. "한참 울고 보니까 남의 초상집"이라는 말처럼, 열심히 연구를 하면서 철학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철학은 하나도 한 것이 없다. '자기가 부재하는 철학', '우리 시대가 배제된 철학'을 과연 우리 자신의 철학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4.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의 경험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이다. 한국은 근대화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나라를 잃고 식민지로 전락하는 뼈아픈 경험을 했고, 냉전의 최 전선으로 내몰려서 동족 간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잃는 고통도 경험했다. 한국은 오랜 가난을 벗어나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온 국민들이 고통스럽게 노력했고, 유신 독재와 군부 독재의 엄혹한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뤄 민주화도 이룩했다. 한국의 20세기는 한국인들의 고통과 희생이 점철되고, 한국인들의 성취와 영광이 빛나던 시대였다. 이런 우리 시대와 삶만큼 드라마틱한 시대, 철학적 사유를 위한 풍부한 자원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이런 독특한 경험을 하고서도 그것을 개념화한 철학이 없다고 한다면 도대체 철학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서구인들은 봉건 시대를 넘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근대'에 대한 철학적 개념화를 이룩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철학자들은 모던과 포스트 모던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의 시대'만을 언급할 뿐 신산(辛酸) 한 '우리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어떻게 '우리의 철학'이 나올 수 있을까? 내가 말하는 '우리의 철학'은 결코 쇼비니즘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철학의 보편성 뿐 아니라 특수성으로서 우리 자신의 삶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철학이 지금 여기에서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제는 우리가 놓치고 있고, 미처 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삶과 시대를 우리 자신의 언어로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 좀 더 힘써야 한다. 이제 번역과 훈고를 넘어서 독립적인 사유를 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올 해 나는 이런 형태의 철학을 먼저 대중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철학서를 쓰기 위한 계획을 세워 놓았고 출판사와 계약도 맺었다. 비록 소박하고 미숙한 형태가 될 지 몰라도 무조건 저질러야 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쓸 수가 없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글을 쓰는 데서도 마찬가지이다.

(2022년 2월 5일에 쓴 글입니다. 이와 관련해 그 사이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2022), <그대에게 가는 먼길>(대양미디어, 2025), <철학은 반란이다>(이안에, 2025) 3권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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