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가 697년에 함락되고 705년에는 마그레브가 정복되어 이슬람 세력은 대서양에 도달했다. 711년에는 북아프리카 총독 무싸 이븐 누사이르(Musa Ibn Nusayr)가 베르베르 족 출신의 타릭 이븐 지야드(Tariq ibn Ziyad) 장군을 이베리아 반도로 파견했다. 대부분 베르베르 인으로 구성된 7,000명의 타릭 군대는 이듬해 4월 지금의 지브롤터(Gibraltar), 아랍어로는 Gibr Tariq으로 Tariq의 바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곶에 상륙해 그곳에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7월, 1만 2,000명으로 보강된 군사를 지휘해 전투를 벌인 과달레트 전투(The Battle of Guadalete)에서 로데릭(Roderick) 왕이 이끄는 2만 5,000명의 서고트 왕조의 기독교인들(The Visigothic Christian)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자 타릭은 무싸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 스스로 북진을 계속했다.

이슬람의 성지 메카(Mecca)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카라반(Caravan)의 행렬과 ‘마흐말(Mahmal)’을 묘사한 삽화, 출처 : Wikimedia Commons
스페인을 통과하는 무슬림들의 진군은 매우 쉬워 저항하는 세력을 만나지 못했다. 이는 스페인 지역의 주민들이 대부분 로마인들이고 서고트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게다가 서고트 족을 야만인으로 생각했던 이들의 지배를 받는 것 자체가 로마인들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한 부분이었다. 이로 인해 제대로 된 저항을 한 것은 서고트 기사들이 지배하는 지방들, 서부 지중해 연안에 집중된 지역만이 효과적인 저항을 했을 뿐이다. 대규모 군대를 거느린 타릭은 에치자(Ecija)를 경유해 서고트 제국의 수도 톨레도(Toledo)로 향했다. 강하게 요새화되어 있는 남쪽의 세비야(Sevilla)는 철저히 피해 갔다.
한 부대는 아르치도나(Archidona)를, 다른 부대는 엘비라(Elvira)를 점거했다. 기병대로 구성된 제3의 부대는 코르도바를 공격해 두 달간의 포위 공격으로 이 도시를 차지했다. 말라가(Malaga)는 저항도 하지 않았다. 봄에 공격을 시작한 타릭은 여름이 끝날 무렵에 스페인의 절반을 함락했다. 712년 6월, 자신의 부관이 예상 밖의 경이적인 성공을 거두자 이에 무싸가 아라비아 인으로 구성된 1만의 병력을 이끌고 타릭의 무단적인 행동에 제동을 걸며 스페인 공략에 나섰다. 무사는 메디나(Medina), 시도니아(Sidonia), 카르모나(Carmona), 세비야 등 타릭이 피해간 도시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가장 큰 도시이며 스페인의 지식 중심지로 한때 로마인의 수도였던 세비야는 713년 6월 말까지 포위 공격을 견뎠다. 가장 강력하고 오랜 저항은 메리다(Merida)에서 있었다. 그러나 그곳도 713년 6월 1일에 함락되었다. 무싸는 톨레도에서 타릭을 만나 출정의 초기 단계에서 정지하라는 명령을 불복한 죄로 채찍 형벌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복은 계속되었다. 원정대는 곧바로 사라고사(Saragossa)에 당도했고, 이어 아라곤(Aragon)의 고지, 레온(Leon), 아스투리아스(Asturias)로 진격해 갔다. 이로써 스페인 정복을 시작한지 2년이 되지 않아 스페인의 거의 전역이 무슬림 군대에 유린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