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남성권익을 찾고자 하는 유사단체인 남성협(krida.kr)에 참여하여 활동한 바 있었기에 성대표의 활동에 관심을 두는 입장이었다. 이전부터 소외된 보통남성의 권익을 주장하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활동력 있는 단체를 결성하기는 처음이라 그 공로의 의미는 컸다. 지난해 트위터 상에서 약간의 교류가 있었고 구체적 만남을 가질 기회도 있었으나 무산되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남성운동의 순수한 목적을 향해 정진해야 할 그가 (박근혜 지지 선언으로) 너무 일찍 정치적 선택을 노골화 한 것에 대한 실망감도 작용했던 것이었다.
남성운동은 '우익마초' 운동이 아닌 소외계층 권익옹호 운동이다
남성연대의 정치적 선택은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었겠으나 바로 이 운동의 敵인, 교조진보이데올로기에 의한 여성운동구호에 편승하여 사회의 계층고정과 기회불균형을 꾀하는 세력에 의해 '우익마초'라며 매도당하는 구실이 되었다.현실적으로 남성운동은 여느 특정계층권익옹호운동보다도, 진실로 소외된 계층의 권익을 대변하는 운동인데 이를 유사 '극우'로 보는 시각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성대표는 얼마 전에도 아내가 자살하겠다고 집을 나간 '부끄러운 사생활'을 공개하는 해프닝을 보였다. 사건의 발생자체와 이에 대처하는 자세 등이 사회운동을 주도하는 공인으로서는 상당히 세련되지 못한 부적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아냥은 자체모순이다. 사실이, 경우 바르고 매너 좋고 모범적 생활태도를 가진 남자라면 남성운동 따위를 나설 이유가 없다. 이미 그 사람은 아내를 비롯한 주변사회의 뭇 여성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었을 테고 그의 사고방식에는, 사회제도와 관습상 남성이 부담하는 약간의 수고는, 여성으로부터 받는 희락에 비하면 사소하면서도 당연한 것으로쯤 여길 것이어서, 남성운동 같은 것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남성운동은 남녀간 대립이 아니라 계층간의 벽 허물기 이다
아직도 남성운동을 남녀간의 수평적인 대립으로 본다면 상황의 개선은 계속 어렵다. 주류언론은 계속해서 남성운동을 ('강자이며 기득권층'인 남성들이 어울리지 않게 벌이는)'괴짜'운동 쯤으로 치부하고 戱畵化 하며, 우리사회의 남녀기회불균등의 핵심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실이 사회의 강자와 기득권층은 남성들이다. 예로부터 권력을 장악한 상류계층 남성들은 같은 계층의 여성뿐만 아니라 차하위계층 여성들도 저들의 '우호적인' 관할하에 두었다. 이러한 기득권을 가진 계층은 그 권리를 쉽사리 빼앗기지 않고 대대로 이어받아 소유하길 원했다. 그러므로 여성과는 달리 차하위계층의 남성들은 견제의 대상이 되었다. 문제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한 국가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엄격한 신분제로 노골적인 제약을 가하면 그만이었지만 민주주의 제도하에서는 노골적인 제약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국민에 대한 高度의 欺瞞術이 필요한 것이다. 回敎國 등 노골적인 여성차별이 있는 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남성일방의 과중한 병역제도, 각종사회고위직의 여성할당, 여성일방 편의 위주의 성관련법 등은 얼핏 進步敎條에 부합하여 평등이념을 실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생활을 이제 막 시작하는 시기에 닥치는 군대생활은 비록 평범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남성들에게는 큰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나름의 포부가 있는 인생계획을 세우는 남성에게는 큰 부담이 되거나 아예 꿈을 무산시키는 영향을 준다. 權利를 상속받는 최상류층의 남성은 영향이 별로 없지만 자기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 계층의 남성은 유학 등 여러 기회를 군대 때문에 놓친 사례가 주변에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신분계층의 고착화에 기여한다. 현재 정치인의 여성할당제는 그만큼 차하위층 남성의 정계입문을 어렵게 만들고 상류층여성으로 정치권을 메우게 하여 상류층위주의 정치권흐름에 변화를 주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지금 일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승진할당제 등은 더욱 계층이동을 막는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게다가 '특별한 입장'에 있는 상류층을 제외한 대다수 남성은 여성일방편의 위주의 성관련법에 의한 젊은 시절의 성적 억압이 그들의 진로개척에 커다란 지장으로 작용하게 된다.
권력층의 기만에 넘어가지 않는 깨어있는 민중만이 민주주의 향유할 자격 있어
민주주의제도의 사회는 국민의 권익주장을 겉으로는 억압하지 못한다. 그러나 국민이 자신의 권익을 잃는 것을 모르고 지배층의 위선적 패러다임에 속는다면 이 또한 결과적으로 신분제의 국가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국가는 발전하여 세계적 위상도 높아지는 것 같은데 왜 우리 서민의 생활은 갈수록 궁핍해지는가. 무작정의 분배주장이 아니라 그 이유를 지적하고 권력층의 기만성을 분쇄할 수 있는 국민이라야 민주주의 사회를 진정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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