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카타르 국왕의 치세는 와하브파와 샤리아에 근거해 통치하는 카타르 아미르 국의 사회 통제를 약간 완화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바꾸었을 뿐, 근본적으로 바꾸지도 않았다. 아들인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의 치세에도 카타르 여성들은 이슬람교가 규정한 제한 사항을 그대로 입법화 한 카타르 정부의 승인 하에 남편이나 남성 보호자의 승인 없이는 운전과 취업, 여행이 봉쇄되며 개선될 조짐도 없다. 알 자지라와 같은 카타르 왕실 매체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난할 처지는 아니었다. 2010~2011년 아라비아권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면서 그 동안 어느 정도 개혁적이던 요르단이나 오만을 비롯한 왕가들도 연이어 벌어지는 시위에 불안해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카타르는 매우 느긋했다. 오히려 알 자지라는 시위가 벌어지는 나라들에 취재를 가서 현지 분위기를 생생하게 보도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이 받을 영향까지 분석하여 보도하고 있다.

2026년 7월 12일 서거한 카타르의 전 국왕(에미르)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Hamad bin Khalifa Al Thani)의 추모 이미지, 출처 : Instagram·Al Jadeed News
카타르 왕실 관영매체 알 자지라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1차 리비아 내전과 시리아 내전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고 무슬림 형제단 등의 우호단체에 무기와 자금을 보내 내전을 후원했다. 알 사니 왕가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현재로서 카타르는 민중 혁명을 우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여유롭게 주변 나라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하야하자 시민 혁명을 축하하는 의전을 보냈다. 3월까지 시위 자체가 없던 나라는 겨우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뿐이다. 반 국왕파로 보이는 이들의 국왕 퇴위 요구 및 비난이 트위터에 올라 왔었지만 당시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사라지게 되어 버렸다. 카타르는 미군에게 기지를 제공하여 정권의 안정을 보장받으면서도 이란과 관계가 상당히 좋다. 심지어 이란의 핵개발은 중동의 평화를 해치는 일을 하고 있으면 평화적인 목적의 개발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카타르는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이란과 우호관계를 다지는 이유는 카타르 남쪽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그로 인해 무력 충돌까지 갔던 사우디아라비아를 적절하게 견제하면서도 이란과 카타르 사이에 있는 전 세계 매장량의 15%를 차지하는 천연 가스전도 안정적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하마드 국왕은 2011년 자문 위원회 국정 연설에서 2013년 하반기 중 선거 실시 예정임을 선언하였으나, 2013년 6월 왕권 이양 직전에 자문위원들의 임기를 2016년까지 연장하고 같은 선거를 연기하는 칙령을 발표함으로써 선거 실시는 다시 연기했다. 사족으로 3남을 왕세자로 책봉하였으나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업무에 열중하지 않자, 4남으로 왕세자를 바꾸었다. 2013년 6월 25일, 알 사니 국왕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왕세자에게 양위한다고 밝혔다.
아라비아 왕정 국가 중에서 최초로 생전에 아들한테 양위한 것은 맞지만 최초로 생전에 양위한 경우는 아니다. 2006년에 쿠웨이트에서 왕이 최초로 생전에 퇴임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쿠웨이트는 부자 세습제가 아니라 친척 관계인 자베르 일가와 살렘 일가가 돌아가면서 국왕 직위를 맡는 체제에 있다.당시 61세인 카타르 국왕의 빠른 양위 발표를 둘러싸고 여러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왕세자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에게 양위하면서 내각을 젊은 층으로 대폭 교체하려는 것이 국왕의 의도로 보인다고 한다. 그 동안 왕세자가 국왕 수업을 충실하게 받았기 때문에 대내외 정책은 유지될 것이나, 국왕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질 때까지 명예 국왕직을 유지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995년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아미르가 된 하마드 알 사니는 선왕이었던 칼리파 빈 하마드(خليفة بن حمد) 국왕이 해외여행을 나간 상황에서. 쿠데타 이후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아미르가 되었음을 알렸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한동안 아버지와는 절연 상태였고, 나중에 아버지는 카타르로 귀환해서 화해했다고 한다. 칼리파는 하마드에서 손자 타밈으로 양위가 완료된 시점에도 살아 있었으며 2016년 10월 23일 8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는 도하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성장했으며,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샌드 허스트에서 군사교육을 받았다. 영국 생활 중에 가장 재밌었던 것은 축구였다고 하며, 후일 축구팀을 인수하고 2022 카타르 월드컵을 개최하는 계기가 된다. 아라비아 국가들의 군주나 정치인들이 해외 순방 시에도 거의 쿠피야를 착용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지만 하마드 알사니는 정장을 입고 순방을 하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와하브파 무슬림 군주에 어울리게 친에르도안, 친무슬림 형제단, 반 이스라엘주의 성향으로 아랍의 봄 당시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이 탄생할 수 있게 55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를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에 제공했다.
북아프리카에서는 1차 리비아 내전 때부터 리비아 무슬림 형제단을 지원했다. 시리아에 대해서 시리아 내전 직전부터 자유 시리아 군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쿠르드족 인민 방위대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 2017년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라비아 국가들과 함께 이란과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우호와 지원 문제로 갈등과 마찰을 빚었으며 이로 인해 단교를 당하게 되자 에르도안이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터키와 협력을 강화하고 레제프 에르도안(Recep Erdoğan)의 범투르크주의를 지지하였다. 추후 제2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Nagorno-Karabakh conflict) 당시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후 터키 관영언론과 연대하여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를 위한 여론 전을 알 자지라에 주문하는 등 연대를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노력들은 이전에는 사실상 사우디아리비아의 봉신 국가였고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시도하지 않았던 카타르의 외교적인 지위를 높이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에서 독립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024년 국민투표 형식을 이용해 총선을 폐지함으로써 완벽한 전제 군주 노선을 확립했다. 이러한 하마드 빈 할리파 알 사니 국왕이 지난 11일에 타계했다. 그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카타르를 통치하며 에너지 부국으로서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재임 기간 카타르는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으로 성장했으며,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발전을 이루며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였다. 1996년에는 알 자지라 채널을 개국해 세계 유력 미디어로 키웠고, 2004년에는 카타르 최초의 항구적 헌법을 공포했으며 여성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보장하는 지방선거도 도입하면서 중동 절대왕정 국가에서 가장 민주적인 형태의 국가로 거듭나게 했다. 카타르의 번영을 이끌었던 하마드 국왕은 알라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하마드 국왕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