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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운동은 진보교조주의에 의한 국가 공동체 해체의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
  • 朴京範 소설가/철학수필가
  • 등록 2026-07-14 10:52:15
  • 진보교조주의에 매여 남성운동을 보는 자칭 보수주의자 표창원 교수




2013.08.23  

개인이나 집단의 사회적 사상이 보수 혹은 진보인가와 이에 함께하는 안보의식은 연관 지을 것이 아님은 이미 수차 논의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주의가 지나치면 결국 국가공동체의 해체를 촉진하여 안보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임은 어렵지 않게 설명된다.

여기서 ‘지나친 진보주의’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열정이 지나쳐서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이데올로기 敎條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혹은 그 교조의 원천(유럽좌파학회 등)에 대한 충성이 지나친 이유로 인해, 현실에 대한 올바른 분석이 없는 경우를 가리킨다.

 

인터넷 여성신문에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전경찰대교수가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 그리고 그를 따르는 젊은 남자들”의 현상에 대한 견해를 말했다
(http://www.womennews.co.kr/news/60137#.UhRq_39_-fs).
표교수는 자칭 보수주의자이다. 지난번 선거에서도, ‘나는 보수주의자이지만 상황을 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 나서게 됐다.’하여 존재감을 더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 나타난 그의 생각은 철저한 진보주의 교조의 틀에 갇혀있었다.

표교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상황을 살피고 차분하고 따뜻하게 다가서지 않는다면, 그저 ‘이상하고 귀찮은 존재’로 밀어내고 무시해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점차 ‘소수 남성’의 소외와 반발이 여성이나 성 소수자를 향한 분노와 공격으로 악화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라고 했다. 필자는 남성연대의 회원도 아니고 앞으로도 참여할 가능성이 없기도 하지만 비슷한 문제의식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입장으로서 말하건대, 진보교조주의자들은 ‘이들’에게 ‘살피고 따뜻하게 다가설’ 의사가 없음은 물론 그 능력도 되지 않는다. ‘이들’의 요구를 경청해주는 것은 곧 ‘젠더동등’이라는 진보교조키워드를 버리는 것으로서 진보교조주의자들의 존재의미와 정체성이 상실됨을 뜻한다.

표교수는 남성연대에 참여하고 성대표의 분향소에 찾아온 남성들만을 그 취지에 찬동하는 집단으로 보며 ‘소수 남성’이라 표현했는지 모르지만, ‘이들’은 결코 소수가 아니고, 대한민국 남성 중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진보혁명을 꿈꾸는’ 일부 똑똑하고 능력 있는 남성을 제외한 절대다수이다. 다만 이들이 가진 사회적 위치가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사회운동 면에서 이제까지 존재감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적극적인 추진력도 그다지 가지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에, 남성운동에 실제로 참여한 자는 여타의 이념운동 등에 비하면 전체에 비해서는 소수에 불과하다.

 

남성운동의 주체는 성적 소수자도 아니고 가부장적 지배 욕구를 가진 자들도 아니다

 

이대로 두면 남성운동 참여자들이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를 향해 분노할 것이라는 표교수의 예언은 그가 진보교조주의에 사로잡혀, 남성운동이라는 것이 마초이즘이며 남자답지 못한 자들을 경멸하는 운동이리라는 짐작에 따른 것이다. 물론 자연스런 남성성의 발현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의 성격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보통의 평범한 남성의 권리를 되찾아주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결코 보통남자들에게, 출세하고 남을 지배하기 위해 남성다움을 더욱 가지라고 강요하는 운동이 아니다. 현재의 남성불이익 사회시스템에 관련이 없는 동성애자 등에게 남성운동 참여자가 공격을 가하리라는 어처구니없는 추측은, 진보교조 운동으로 인한 사회적 모순의 산물인 남성운동이 차후 진보교조 운동을 바로잡는 역할을 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 운동이 외국의 스킨헤드 운동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또 그렇게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표교수는 다시 “동시에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에게 다가갈 경우 의외로 쉽게 마음을 열고 손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도 열려 있다. 성차별의 문제는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다수와 소수’의 문제며 ‘강자와 약자’의 문제요, ‘지배와 착취’의 문제다.”라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마음을 열고 손을 잡는 것은 그들이 진보교조를 버릴 경우에야 가능하다. 성차별의 문제는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필자가 오래 전부터 주장했던 것으로서 강자의 약자에 대한 지배와 착취에 관련한 문제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다만 과거의 ‘여성차별’은 강자의 본능성취 욕구에 의하여 여성을 소유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에 기인하며 현재의 ‘남성차별’은 강자의 지배구조유지 욕구에 의하여 남성을 경계와 억압의 주대상으로 삼는 것에 기인함이 다르다. 물론 성차별이라 하면 무조건 남존여비관념만을 연관시키는 진보교조주의자로서는 시대변화에 따른 초점변화가 어려울 것이다.

‘다수와 소수’의 대결에서 다수를 강자라고 하는 것 역시 그가 진보교조주의에 매여 있는 탓이다. 남성운동이 강조하는 것은 소수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것이 아니다. 권력, 금력, 조직력을 갖지 못한 다수가, 소수이면서도 힘을 가진 계층에 억눌리는 상항을 타파하려는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는 다수결의 힘이 있지만 이 또한 소수의 힘 있는 자가 다수의 뜻을 반영하여 정치이슈화를 해야 다수의 뜻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이다. 민주주의체제하에서도 힘없는 다수의 힘은 선택권만이 있지 그들 다수의 의사가 저절로 정책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남녀공동병역’ 등 남성운동 측의 주장은 정치권에서 반영하여 표결에 붙이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남성운동을 지지할 만한 힘없는 보통남자는 정당공천 등 각종제도의 장벽으로 인해 정치권에 진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표교수는 그가 벗어나지 못하는 진보교조에 따라 “여전히 남성이 다수자, 강자, 지배자, 착취자인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를 ‘소수, 약자, 피해자’로 느끼는 남성들이 있다면 이들에게 ‘강자, 지배자’의 정체성을 찾으라고 요구하기보다 ‘같은 약자’ ‘오랜 기간 약자였던’ 다른 성의 경험과 느낌을 나누며 대화하려는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말을 이었다.

결혼제도가 엄존하고 모든 권리의 최우선의 공유자가 배우자인데 “남성이 다수자, 강자, 지배자, 착취자”라고 단정하는 것은 할 말을 잊게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남성운동 지지자 중에 자신들을 약자이며 피해자로 느끼는 사람은 있어도 소수라고 느끼는 사람은 없다. 또한 누가 강자와 지배자가 되겠다고 했는가. 현실적으로 남자에게 더 요구되는 노동과 생산의 능력을 실현할 기회를 원할 뿐이다. 강자와 지배자가 되겠다는 야망이 있는 남성은 결코 ‘쩨쩨하게’ 자신을 여성운동에 의한 피해자로 인식하지 않는다. 힘있고 성공한 남자는, 이미 자신이 선점한 사회적 혜택을 누리면서, 다른 남자들의 추격을 막아주는 현재의 시스템을 즐길 뿐이다.

‘오랜 기간 약자였던 다른 성의 경험과 느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적어도 현재 살아있는 여성들의 생애 동안에는 선거권도 보장되는 등 그렇게 절대적인 약자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 이전 수천년의 ‘여성핍박에 대한 보상’을 논하겠다면, 현실사회적 담론이 아닌 종교적 차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오랜 기간의 약자였던 여성을 기필코 위상변화 시켜줘야겠다는 조바심은, 어찌해서라도 세상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진보교조운동에 따른 것일 뿐이다.

표교수는 또 뜬금없이 “미국, 프랑스, 뉴질랜드 등 전 세계적으로 ‘동성결혼 합법화’가 확산되는 21세기의 다른 한 구석에선 호모포비아와 명예살인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남성 권리’ 운동에 대한 여성계와 사회 전반의 진지한 관심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성별이나 성적 취향 등 ‘성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라 말하면서 남성운동을 이른바 성이념 갈등문제와 동일대상에 올려놓았다.

물론 남성운동은 보편적인 남성 성적취향이 사회시스템에 의해 억압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특정한 성적취향을 옹호하는 운동은 아니다. 남성운동에서 말하는 성적 자유는 사회적인 기회불균형으로 인한 억압을 해소하고자 함이다. 남성권리 운동은, 진보교조주의 운동에 편승하여 설정된 기만적인 남녀평등정책을 고수하여, 남성일반의 자기개척 기회제한을 통해 사회적 신분이동을 막으려는 상류층의 음모에 대한, 모든 ‘평민’들의 자각운동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지금의 남성운동의 발생배경은, 지나치게 만연한 진보주의에 의한 국가사회 해체의 초기단계 현상이다. 좌파는 저들의 진보교조인 ‘젠더동등’을 내세워 국방력 약화 및 사회질서의 해체 등을 꾀했지만 이에 따른 사회적 모순으로 우선은 그들 운동 스스로에도 위기가 오고 있는 것이다.

남성연대라는 특정단체의 성패와는 관계없이 그 운동취지는 앞으로 잘 발전될 것이니 똑똑한 진보교조주의자들은 염려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당신들은 계속 진보교조에 맞춰, 연장자와 젊은이의 주장의 평등, 공부 잘하는 아이와 안하는 아이의 평등, 남자와 여자의 역할의 평등을 주장하라. 다만 그 구호가 기득권층에 이용되어 불평등 사회를 심화시키는 것을 알고는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교조주의자들이 변할 가능성은 없지만, 적어도 양심의 가책은 느끼고 있어야 장차 국가체제붕괴촉진의 수준으로 진보주의가 앞서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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