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소도시 폴리스(Police)에서 로마의 제국(Reich)으로 넘어오자 철학자들의 위상이나 태도가 많이 바뀌게 되었다. 자그마한 도시 국가에서는 개인이 추구하는 이상이 국가의 이념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배워 가문을 일으키고 입신양명하는 것은 과거 우리 조선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시대의 덕목이다. 그리스 철학은 이런 사회적 환경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거대한 제국 하에서 개인은 거대한 공장에서 돌아가는 기계의 부품에 불과했다. 부품은 표준화, 동질화되어서 상호 간의 차이가 없고, 언제든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때문에 여기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탄생한 철학이 통상 개인주의 철학으로 알려진 스토아주의(금욕주의), 에피큐로스주의(쾌락주의), 그리고 퓌론주의(회의주의)다.
이들은 한결같이 국가라는 거대한 외풍이 자신들의 삶을 휘젓지 못하도록 하는 데 힘썼다. 운명(fortuna)과 같은 정치와 국가라 할 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삶, 특히 정신의 평화와 안정을 깨뜨리지 못하게 하고, 설령 깨뜨린다 해도 그것으로 인해 정신의 안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데 힘썼다. 스토아주의가 말하는 아파테이아(Apatheia)는 외부의 자극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부동심의 상태이다. 에피큐로스주의는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둘 모두 외부의 영향이 자신의 정신의 평화를 깨뜨리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이중 에피큐로스주의자들은 공공 장소인 'Agora' 대신 사적인 장소인 '쾌락의 정원'을 선택했다. 그들은 숨어서 살아라"라는 모토에 맞게, 정치적 야망이나 사회적 혼란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온(아타락시아)을 찾을 수 있는 격리된 공간을 만들었다. 이 정원에서는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배척되었던 여성이나 노예들도 무시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이들이 추구한 것은 오해를 사기 쉬운 육체적 쾌락이 아니다. "빵과 물만 있다면 신도 부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화려한 성찬은 나중에 더 큰 갈증과 고통을 불러오기 때문에, 고통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식사를 즐겼다.
이들이 '쾌락의 정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쾌락은 감각적 즐거움이 아닌 '우정'이었다. 에피큐로스주의자들은 친구들과 함께 철학적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 고통을 이기는 가장 큰 힘이라고 믿었다. 이런 그들의 바램은 정원 입구에 적힌 상징적 글귀가 잘 말해준다. "손님이여, 이곳은 당신이 머물기에 즐거운 곳입니다. 여기서 최고의 선(善)은 쾌락입니다."
나는 <에세이철학회> 웹사이트가 일종의 그런 <쾌락의 정원>의 21세기 버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는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의 고하를 불문하고 남녀 노소 누구든지 접속할 수 있다. 굳이 *폼을 잡을 필요도 없고, 과거의 사회적 캐리어를 자랑할 필요도 없다. 오직 글로써 관계하고, 글과 사진 만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가 있다. 이 글은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정신적 수단이다. 이런 글들을 통해 우리들은 즐거움, 즉 쾌락을 느끼는 것이다.
다만 <에세이철학회>가 에피큐로스주의자들의 <쾌락의 정원>과 차이 나는 점이 있다. 에피큐로스주의자들은 '정치적 야망이나 사회적 혼란'을 의식적을 차단하고 외면하려 했지만, 우리들은 그것 자체도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그것을 막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는다. 칼럼니스트들에 따라서는 그런 문제들을 전문 담론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쾌락, 혹은 동양적 의미의 도(道)는 그 모든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차원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Irony)로 비췰 수도 있다. 하지만 노자의 "화기광 동기진"(和其光 同其塵)이란 말처럼, 진흙 구덩이 속에서도 추구할 수 있는 깨달음이고 실천이다.
다시 말하지만 <에세이철학회>는 약간의 의미 차는 있어도 에피큐로스주의자들의 <쾌락의 정원>의 21세기 버젼이 될 수 있다. 나는 이곳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정신의 놀이판으로 만들고 싶다.
에세이철학회는 철학의 학문적 수준도 충족하면서 철학의 대중화와 일상화를 가장 중시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