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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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를 막론하고 '진보'는 늘 매력적 가치로 다가온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변화와 약자를 향한 자비는 그 자체로 숭고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진보적 공약이나 사상이 오히려 사회적 부작용을 낳는다. 우리는 그 원인을 단순히 제도나 환경의 탓으로 돌리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사상을 주장하고 실천하는 주체의 성숙도에 있다. 진보이념의 문제는 그 지향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實情이 따르지 못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역량과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본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그릇을 넘어서는 富를 탐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높은 지위와 권리만 주장하는 것은 罪가 된다.
지도자는 사회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厚하여 넘치지도 않고 薄하여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을 지키며 지도이념을 설정해야 하지만 특히 지도자 자신을 판단함에 있어 中庸을 지키지 못하면 그것은 국가사회적 재앙이 된다. 바울 사도가 예수의 가르침을 이으면서 신도에게 실천사항을 가르칠 때 예수가 이미 구약보다 가진 진보성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고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것은 예수와 比肩되지 않는 자신의 본분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바울의 보수성은 인간이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질서 속에서 한 단계씩 나아가게 하려는 깊은 통찰의 산물이다.
인간은 靈的으로 성숙해질수록 사물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조직의 하급자일 때는 자기 맡은 일에만 충실하면 되지만 지도급 위치에 오르면 조직 전체와 그 파급효과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함과 같다. 진보적 가치가 사회에서 올바르게 작동하려면 그 가치를 수용하는 대중의 수준 역시 그만큼의 그릇을 갖추어야 한다. 개인의 역량이나 자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나 권리만을 강조하는 진보적 정책이 도입되면 사람들은 자기 본분을 잊고 방종에 빠지기 쉬우며 이는 결국 사회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예수가 제시한 우주적 차원의 진보적 理想을 현실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 바울은 대중의 영적 수준과 사회적 질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대중에게 무조건적 자유를 주는 것이 오히려 毒이 될 수 있음을 간파하여 현실적 처방으로서의 보수주의를 선택했다. 결국 바울이 예수보다 보수적이었던 이유는 예수를 否定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理想을 현실이라는 토양 위에 건강하게 심기 위한 고뇌 어린 결단이었음을 우리는 理解해야 한다.
오늘날의 지도자들 역시 바울의 선택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대중의 요구에 영합하여 진보적인 구호를 외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자신과 공동체구성원의 수준이 그 사상을 감당할 手 있는지를 냉철하게 진단해야 한다. 시대의 位相에 맞는 사상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각자의 본분을 다하며 점진적으로 성장하도록 補助하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의 역할이다.
챗지피티
(출처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ykA_kyx1Xqw&pp=2AY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