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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자들의 오타쿠 문화
  • 타라고
  • 등록 2026-04-10 08:44:45
내가 한국의 철학자들을 비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의 하나가 그들이 '공적 의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철학은 언어의 보편성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지적 활동이다. 일찌기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 L.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사적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적 언어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집단 중의 하나가 철학자들이다. 그런데 한국의 철학자들이 말로는 언어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언어가 갖는 보편성의 의미를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20 세기 철학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의미나, 입에 발린 듯 랑그(langue)와 빠롤(parole)의 차이를 앵무새처럼 읇을지 몰라도 언어의 가장 근본적 특성인 보편성의 의미를 전혀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한 마디로 한국의 철학자들은 언어를 '사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그들이 하는 철학 활동은 두더지가 자기 구멍을 파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동료 철학자들의 논문을 거의 읽지 않고, 읽어도 인용을 하지 않는다. 동료 철학자들이 의미 있는 책을 썼어도 거의 비평을 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책들에 대한 전문 서평은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공적 의무나 다름없는데, 한국의 철학자들이 이런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오죽하면 <학술진흥재단>에서 논문 평가를 할 때 한국의 학자들 논문을 인용하면 가산점까지 준다고 했을까?



2022년 하피터 선생이 <하이데거의 사회 존재론>이라는 역저를 냈다.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M.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등정하는 새로운 루트를 발견했다고 할 만큼 의미 있는 책이다. 그런데 '한국 하이데거 학회'가 존재하고, 하피터 선생이 이 학회의 회장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이 책에 대해 전문 서평을 쓴 사람이 없다고 하그가 나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2022년 서양 철학자 권순홍 선생이 출간한 <불안과 괴로움 하이데거, 니체, 그리고 초기 불교의 4성제>라는 책은 저자 자신이 말하듯 있는 그대로의 삶의 진실을 불교의 4성제에 비추어 힘을 향한 의지, 영원 회귀, 초인(超ㅎ人) 등과 같은 니체의 후기 철학과 하이데거의 현존재의 실존론적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대단한 역저이다. 그럼에도 인터넷 신문에 실린 서평 외에 이 책에 대한 동료 철학자의 전문 서평은 단 하나도 없다.



2024년 철학자 이정우 선생이 근 10여 년에 걸쳐 동서양을 아우른 <세계 철학사> 10권을 완간한 작업은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동서양의 수많은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쓴 이런 작업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이다. 하지만 완간했을 때 신문 서평을 제외하고 동료 철학자들이 전문 서평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2025년 김상봉 선생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 1,2>를 낸 것 역시 한국철학계가 이룩한 대단한 업적이라 할 수가 있다. 이 책은 원고지 매수만 무려 15,000매가 되는 대작이다. 오로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자만이 쓸 수 있는 철학서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일간지 서평 1편 나온 것을 제외하고는 전공 학자들의 전문 서평이 단 한 편도 나오지 않았다.



2025년 한국철학자 이종란 선생이 혜강 최한기의 <기측체의 역해 1권, 2권, 3권>을 상세한 역주를 붙여 역간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주목하는 학자들이 없었다. 이종란 선생은 이 책을 출판할 출판사를 찾을 수 없어 자비 출판으로 동료 지인들에게 무상 배부를 했다. 이런 이야기는 언급하는 내 마음이 참담할 지경이다.



2025년 오랫동안 하이데거를 연구해왔던 이기상 선생이 <존재와 시간>의 새로운 번역본을 냈음에도 많은 철학자들이 그런 사실 조차 알고 있지 못한다. 중요한 고전을 재 번역한 것은 내가 알기로 과거 임석진 선생이 <정신현상학> 번역을 재번역한 이래 두 번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구도 주목을 하지 않고 있고, 전문 서평은 말할 것도 없이 부재한다.



2025년 내가 한국의 1980년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 <그대에게 먼 길> 1부를 출간했지만 신문 서평 한 편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 책에는 내가 공부했던 1980년대 연세대 철학과 대학원과 한국 헤겔 학회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당시 새로 창립한 한국 철학 사상연구회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관련된 대학의 철학과 출신이나 단체의 누구도 이 책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내가 최근에 발간한 <철학은 반란이다>를 출간하고 북토크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 이 책은 논쟁이 부재한 한국철학계에 의도적으로 논쟁을 유발하기 위해 '반란'이라는 이름까지 사용했다.



이런 예들은 정말 수도 없이 많다. 말로는 "철학은 사유 속에 포착한 그 시대"(G.W.F. Hegel)라거나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K. 마르크스)라고 열심히 떠들지만 그것들은 그저 사적인 말장난일 뿐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비추어보면, 한국에서 하는 철학 활동은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A4 10장짜리 논문을 쓰는 일, 외국 서적들을 열심히 번역하는 일, 경향 각지에 수도 없이 많은 학회들에서 저들만의 그룹을 이루어 끼리끼리 노는 일로 일관될 뿐, 점점 인기를 잃어가고 있는 철학 강의들 외에 동료 철학자들 간의 소통, 논쟁과 비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 마디로 한국의 철학자들은 좋게 말해서 두더지 제 굴 파기를 넘어서 골방에서 *딸이 치기, 모니터 앞에서 컵 라면 먹으며 낄낄 대는 오타쿠들의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공통적으로 이들에게는 철학의 공적 문화에 대로 한 의식이 전혀 없다. 자신들의 언어와 자신들의 행태 간의 분열이 가장 심한 집단이 한국의 철학자들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사인 철학자들’ 속에서 어떻게 ‘공적인 철학’이 나올 수 있을까? ‘우리 철학’ 이야기 백날 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 그런 마당에 언감생심 K-Philosophy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다 보면 얼굴에 철면피를 깐 느낌마저 든다. 한류의 다른 K-Contents 들에 대해 도대체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나? 가방끈 길고 브랜드 화려한 한국의 철학자들이여! 이제 한국에서 '철학자'라는 이름은 부끄러움의 상징이 되어 가고 있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자들이 거의 없다.







에세이철학회는 철학의 학문적 수준도 충족하면서 철학의 대중화와 일상화를 가장 중시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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