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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의 철학에세이(4)
  • 金耀燮
  • 등록 2026-05-24 02:06:55
  • 수정 2026-05-25 09:57:05
  • 기독교 배경에서 보는 성(性)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바퀴벌레는 왜 존재하는가?


바퀴벌레, 집에서 볼 법한 가장 흔한 생물이다.

생물은 동물, 식물로 분류하지만 벌레는 그 중에서도 동물로 분류하질 않는다.

사실 동물이 맞지만, 뭔가 괴상하고 흔하고 죽어도 괜찮은 것이 벌레종류이다.


벌레는 피부가 없고 대체로 작고 징그럽고 인간이 사는 환경과 분리해서 산다.

모기를 너그럽게 내버려두면 와서 피를 빨아먹듯, 벌레는 번식하고 그 번식력을 먹이사슬이 못 따라가면 벌레에 대한 자비로움은 재앙으로 돌아온다.

호주에 사는 어떤 사람은 개미들이 많아서 고생한다. 바퀴도 두말할 것 없고.

한국에서는 모기시즌이 오면 모기로 고생한다.


이 말을 왜 하는거냐고? 왕성한 번식력.

차라리, 물고기는 물에서 살고 맛으로 인간에게 보답하니 벌레보다 낫다. 문제는 땅과 공기에서 사는 벌레를 인간과 비교하는 것이다.

신에게 기도할 때 신에게 자신을 최대한 낮추는 표현은 '벌레같은 나(인간)'이다.


그리고 지구의 최강의 동물이 멸종할 때 가장 흔해빠지고 빨리죽고 최약체인 곤충, 즉 벌레는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작고, 번식력이 활발해서 그렇게 높게 치지 않는다.

동물 중에서도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고등한 동물인 인간과 동물은 오늘날에도 한 지구에 산다. 한 집에도 산다. 한 집에 사는 가족같은 그것을 경멸한다.

여성 뿐 아니라 좀 더 용기있는 존재들도 그와 같은 것들을 불쾌해하고 잡는데 있어서 때론 무서워한다. 그 이질적인 기어다님,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것 같은 불사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한 개체로 볼땐 미약하지만 번식으로 보면 최고의 생존력과 최상위 포식자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먹이사슬의 맨 위에 있다기 보다는 아래를 받쳐주지만.

생물이 생물을 밟고 생명을 유지한다. 오늘도 난 누군가의 생명 위에 서 있고 그 생명에게 고마움을 얻고 생명하나를 죽이면서 살지만, 같은 존재를 우월하게 여긴다. 그것은 실제로도 우월하다.


인간이 우월한 한가지 이유는 신을 믿을 수 있는 믿음과 그 믿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 때문이다. 안 믿는 것을 선택하는 것 자체도 우월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아닌가?


그런데 한편으로는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승자이다. 어찌저찌 어떤 형태로든 가늘고 길게 굵지않고 짧지 않게 오래 지속되고 유전자를 퍼뜨리는 종자가 최후의 승리자일수도.


가끔 그 기원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공기에서 나온게 아닌가? 물에서 나온게 아닌가? 땅에서 솟은게 아닌가? 어딘가에서 떨어져나온게 아닌가? 그것이야 말로 천사, 외계인, 천상의 존재, 이계의 존재이다.

그에 대비해 인간은 얼마나 불리한가? 노인들이 사는 집에 벌레가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만큼 무기력한 상황이 없다. 물론, 그 벌레는 몇살 먹지도 않았을것이고 노인들보다 오래 못살고 빨리 죽을 수 있다. 벌레같은 삶보다 고귀한 인간의 삶이 가치있다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은 생명이다. 내 생명이 내 후손에게 남겨져 전해지는 것 만으로 짧게 살아도 길게 산 것 같다. 비록 내가 가진 문화적, 정신적 자산이 물려받지 못한 몸덩어리만 내것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그것이 벌레다. 벌레는 매번 껍데기만 있다.

이상 벌레에 대한 고찰. 성과 관련이 없는 글 같지만 문득 든 생각 (2026.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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