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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장과 북궐도
  • 김병철
  • 등록 2026-06-16 20:55:15

신하와  백성에게 하사한 궁중의 장 

궁에서 장은 왕족들의 일상음식에서 가장 많이 쓰이지만 잔치라든가 제사에서도 많이 쓰이며 가뭄·풍수해·화재 시에 백성들에게 구휼하기 위해, 신하가 상을 당했거나 공을 세우거나, 주변에 어려운 사람에게 하사를 하는 품목으로 우선순위에 들었다. 

실록에 보면 세종·정조 때는 굶주린 백성에게 1명당 나누어진 식량은 성인은 쌀 4홉, 콩 3홉, 장 1홉을, 어린 사람에게는 그 반이 나누어졌다. 태종 때는 호군이나 노인에게 장1독을 하사했다. 세종·단종·세조·성종·명종 때에도 신하들의 식구들이 어려운 지경이 됐을 때 쌀과 함께 장을 내린 기록이 여러 차례 나타난다. 

궁중의 장을 관리하던 관청은 쌀·밀가루·술·장·기름·꿀·채소·과일을 담당하는 내자시와 사도시(司?寺)이다. 장을 담그는 일이나 관리하는 일은 대전·중궁전·세자전마다 따로 살림을 하니 소속된 궁녀들이 맡아서 했을 것이다. 창덕궁 동궐도 장고를 자세히 살펴보면 옆에 자그마한 기와집과 염고가 보이는데 거처하며 장고관리를 전담하도록 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순종비 윤황후를 직접 모시던 지밀나인 김명길 상궁이 구한말의 궁궐 풍속을 구술한 책 『낙선재주변』에는 장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낙선재 뒤 위치한 장고에는 장고마마로 불리던 이완길 상궁이 있었는데 교실보다 큰 면적에 바닥을 높이고 주위에 벽돌담을 했으며 한편으로 출입문이 있고 큰 빗장을 두르고 자물쇠를 채워놓았다. 장독은 배가 부른 항아리가 아닌 아구리가 넓은 전이 붙고 1미터도 더되는 홀쭉한 말뚝 모양의 번들거리지 않는 회색빛 항아리였다. 장고마마는 장독대 옆 기와집에서 살며 생각시 2~3명을 데리고 아침 일찍 몸을 정하게 한 후 독을 반들거리게 닦으며 들여다보고, 비워있는 장을 어린 장으로 항상 가득 차게 하는 일을 했다. 

영조의 유별한 고추장 사랑 

궁에서는 크게 간장을 청장·중장·진장으로 나누어 쓰는데, 장은 다리지 않고 해마다 담가 한 해씩 어린 장을 묵은 장쪽으로 보태는 방법, 즉 덧장이 되도록 하는 법을 했다. 청장은 일년장으로 맑고 담백해 국간을 맞추거나 나물 무칠 때, 중장은 일반적인 음식에 두루 쓰이고, 검은 콩메주로 만든 진장은 계속 해를 묵혀 맛이 짙고 달며 조청같이 걸쭉한 농도인데 육포·조림·장김치·약식 등을 만들 때 쓴다. 

궁에는 메주를 직접 띄우지 않고 성 넘어 자하문 근처 절에서 만들어 가져온다. 이 메주를 ‘절메주’라 불렀고, 검정콩을 가지고 봄에 콩을 삶아서 햇풀에 띄운 것이며 보통메주의 4배 정도로 컸다고 한다.

 된장은 궁녀들이 개별적으로 해먹는 찬에서나 썼으며 왕족들의 찬에는 별로 쓰지 않은 듯하다. 고종과 순종 때는 일 년에 한두 번이나 절미토장조치로 찾을 정도였다고 한다.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에는 혜경궁 홍씨의 수라에 미나리나 파, 생선회를 찍어 먹는 용도로 장 종지에 고초장(苦椒醬)이 놓였다. 고추장을 가장 좋아했던 영조는 70대 중반에 입맛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며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후 송이·생전복·새끼 꿩·고추장 4가지가 별미라 했다. 고추장 없이는 밥을 못 먹을 지경이었고, 궁에서 담근 것보다는 조종부라는 신하의 집에서 담근 것만을 찾았다고 한다. 순창 조씨네 고추장이 지금은 순창 고추장 지역의 진상품처럼 알려져 있지만 18세기 숙종 때 나온 『소문사설(?聞事說)』에는 순창 고추장 만드는 법이 소개될 만큼 널리 알려졌다. 메주는 콩 삶은 것을 쌀가루와 섞어 띄운 후 고춧가루·엿기름·찹쌀로 죽을 만들어 단간장을 섞고, 전복·대하·홍합을 넣고 같이 담는 법이니 지금과는 다르다. 순종을 모셨던 마지막 상궁 한희순에게서 전수받은 상추쌈차림에서는 갖가지 장으로 만든 반찬들로 차린다. 채소에 밥을 넣고 싸먹기 위해 절미된장조치, 생선감정, 약고추장, 장똑똑이, 보리새우볶음, 참기름이 찬으로 준비된다. 쌈채소는 상추·쑥갓·가는 파이며, 한련화잎도 쌈재료였다고 한다. 절미된장조치는 쇠고기와 표고를 넣어 조린 쌈장이며, 병어감정은 생선살을 고추장에 끓인 것이다. 옛날엔 진상품 생선인 웅어를 썼다고 한다. 약고추장은 고추장에 쇠고기볶음과 꿀, 참기름을 넣고 윤이 나게 볶은 것이며, 장똑똑이는 채 썬 쇠고기를 간장에 조린 것이다. 쌈을 싸서 먹을 때는 잎을 뒤집어 손바닥에 놓고 밥을 얹은 후 마련한 찬을 조금씩 얹고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려 싸먹는다. 채소를 많이 먹으면 몸이 차지는 것을 걱정해 쌈을 다 먹고 난 후 몸을 따뜻하게 하는 계지차를 내놓는 것도 약식동원을 알 수 있는 궁중음식의 색다름이다.

 조선시대의 궁궐은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족들의 생활영역과 왕족들의 생활을 시중드는 궁녀와 내시, 천민 기능직들이 일하고 거취하는 영역, 왕의 통치업무를 보좌하는 관료들의 영역, 궁궐 전체를 경비하기 위한 수비영역으로 나누어졌다. 이러한 궁궐 내에는 왕족 이외에도 음식과 의복관련 뿐 아니라 물 긷기, 빨래, 청소, 심부름, 촛불을 담당하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이 생활하였다. 특히 음식부분에 있어서 대전, 중궁전, 세자궁, 대비전에는 각각 음식을 만드는 공간과 전속요리사가 배속되었고 음식과 궁궐에 공급되는 식품 및 궁중의 잔치를 담당하는 관아도 있었다. 

조선 후기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동궐도(東闕圖, 1826~1830년경)에는 궁중의 식생활에 관여했던 공간인 주원(廚院), 소주방(燒廚房), 외주방(外廚房), 내주방(內廚房), 수라간(水剌間), 생물방(生物房), 장고(醬庫)를 볼 수 있다.

 


주원은 사옹원(司饔院)으로 왕의 식사와 대궐 안의 음식물 공급에 관한 일을 관장한다. 사옹원의 '옹(饔)'은 '음식물을 잘 익힌다.'는 뜻으로 궁중에서 이루어지는 왕가의 식생활에 필요한 물선을 수취하여 조리 가공하여 일상의 식사 및 연회식, 제사식 등 마련하여 올리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소주방은 안소주방과 밖소주방으로 나뉘는데, 안소주방은 왕비의 주관 하에 왕과 왕비의 일상식을 담당하는 곳이고, 밖소주방은 내인의 책임 하에 편전에 머무는 왕의 식사를 담당하는 곳임을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마지막 상궁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록의 내용과는 다소 다르다. 안소주방은 왕·왕비의 평상시의 수라상과 낮것상의 각종 찬품(饌品)을 맡아 하고 식전의 자리조반(初朝飯낮것(點心야참(夜饌) 등을 생과방과 협조하여 올린다고 하였다. 외소주방은 크고 작은 잔치 때의 음식을 장만하는 곳으로 궐내의 대소 잔치는 물론 진연·진찬·회작으로 불리는 큰 잔치와 선원전차례·고사 등도 담당한다. 왕자녀의 백일·탄일에는 백설기를 몇 십 시루씩 쪄서 궁내의 각궁에 돌리고 그밖에 종친과 외척에 골고루 돌리는데 이일도 담당하였다고 한다. 궁중은 왕족들의 생활거처인고로 손님들이 수시로 드나들게 되니 그들은 위한 접대식은 모두 궁에서 준비를 해야만 했다. 음식발기의 내용을 보면 접대식 관련 발기가 많은데 관례나 가례, 나라에 공로를 세운 이들의 치하, 병회복 축하 등 손님을 초대하는 세일 수 없이 많으니 수라간의 궁녀들과 숙수들은 매우 일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구글 이미지)


동궐도에서 안·밖소주방과 달리 표현된 외주방과 내주방은 소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면 각 주방에서는 왕, 왕비를 위해 부족한 음식을 보충하여 차려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흔히 수라간은 소주방과 동의어로 알고 있으나 동궐도에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능상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주방이 음식 조리가 주된 업무라면 수라간은 음식의 진설하는 퇴선간(退膳間)의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퇴선간은 지밀에 부속되어있는 중간 부엌으로 역할을 하는 곳으로 지금의 배선실(配膳室)이다. 멀리 떨어진 안소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가자(들것)로 옮기면 받아 식은 음식은 덥히고 상차림을 하여 수라상에 올린다. 수라시간을 제조상궁이 알리면 온돌방으로 들여간다고 상궁들이 증언하였다. 

생물방은 『승정원일기』에 나오는 생과방(生果房)으로 볼 수 있다. '생것방'이라고도 부르며, 평상시의 조석 식사인 수라 이외에 후식에 속하는 것, 즉 생과·숙실과·조과·차·화채·죽 등을 만든다. 조석 수라상을 소주방 내인을 도와서 함께 거행하며, 잔치음식의 다과류도 이곳에서 관장한다. 

동궐도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경복궁의 평면배치도인 북궐도형(北闕圖形, 19세기 말)에 경회루 근처 넓은 공간에 숙설소(熟設所)라고 있다. 내숙설소(內熟說所)라고 하는데, 궁중의 연회 

때 임시로 가가(假家)를 지어서 설치한 주방을 말한다.

 

현재 창덕궁 대조전에 딸린 서익각 뒤편 작은 방에 수라간이라는 부엌이 있지만 개화기에 서양식식사를 하며 빵을 굽던 주방으로 보이며 전혀 궁중의 주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경국대전』에 나타난 사옹원의 소속관원을 보면 실무직으로는 정(正) 1인, 첨정(僉正) 1인, 판관(判官) 1인, 주부(主簿) 1인, 직장(直長) 2인, 봉사 3인, 참봉 3인 등이고, 자문직으로는 도제조(都提調) 1인, 제조 4인, 부제조 5인인데 1인은 승지가 겸임, 제거(提擧)·제검(提檢)을 합쳐 4인을 두었다.

 

그리고 잡직으로는 재부(宰夫) 1인을 비롯하여 선부(膳夫) 1인, 조부(調夫) 2인, 임부(?夫) 2인, 팽부(烹夫) 7인을 두었다.

 

각 전에는 잡역에 동원되는 노자(奴子)로서 궐내각차비(闕內各差備)가 있어 반감(飯監:어선(御膳)과 진상을 맡는 벼슬아치), 별사옹(別司饔:음식물을 만드는 구슬아치), 상배색(床排色:음식상을 차리는 구슬아치)의 상위직급이 있고, 하위지급으로는 적색(炙色:구이 담당), 반공(飯工:밥 담당), 포장(泡匠:두부 담당), 주색(酒色:술 담당), 다색(茶色:차 담당), 병공(餠工:떡 담당), 증색(蒸色:찜 담당) 등이 있다. 이들이 궁중식 마련의 실무를 맡으며, 궁궐내의 문소전·대전·왕비전·세자궁으로 나누어 각전의 정원이 정해져있다.

 

임금의 처소에서 직접 음식을 맡아서 올리는 것은 내시부와 내명부에서 책임진다. 음식의 진어(進御)는 내시부의 내관과 내명부의 궁녀들이 주로 책임을 맡고 있다. 내관 가운데도 특히 '섬니내관'이 음식을 담당하는데 섬니내관은 진상한 음식재료를 검수하거나 음식을 직접 맛보는 역할을 한다. 내의원 제조는 음식의 담음새를 검사하고 섬니내관은 맛을 보며 왕의 음식의 검수를 맡는다. 검수는 감선이라는 말로도 쓰며 임금과 가장 가까운 왕후나 세자가 한 경우도 있다. 검수는 기미한다고도 하며 조선왕조말기에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지밀상궁이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경국대전」 이조(刑曹)에 속하는 내시부에서 음식관련 업무를 맡는 내시는 상선(尙膳)·상온(尙?)·상차(尙茶)가 있다. 음식을 직접 만드는 일보다는 전체를 주관하고 대접하는 일을 주로 맡는다. 

『승정원일기』에서는 수라간의 으뜸 궁녀를 수라간차지상궁(水剌間次知尙宮)이라고 적고 있는데, 주방상궁을 말한다. 주방 내인은 다른 궁녀들과 마찬가지로 13살 경에 입궁하여 궐 안에서 윗상궁을 스승처럼 모시며 여러 가지를 견습하게 된다. 관례는 입궁 후 15년이 지나서 치르는 것이 원칙으로 일종의 성년식이며 결혼식이나 다름없다. 관례 후에 정식 내인이 되며 다시 15년을 경과하여야 상궁의 봉첩을 받는다. 내인들은 연조와 직분에 따라 종5품에서 종9품까지의 지위를 갖는다. 주방상궁은 대개 40세가 지나서 되는데 이미 이때는 조리경험이 30년 이상이나 되는 전문조리인이다. 상궁은 궁녀 중 정5품으로 최고직이고 최하는 4,5세의 어린 견습내인까지 있다. 주방내인은 대개 10세 이상부터 시작한다.

주방내인들은 처소내인에 속하며 평상시는 왕과 왕비의 조석 수라상을 준비한다. 주방내인들의 복색은 다른 내인과 같이 옥색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는다. 작업할 때는 소매를 올려 접고 보라색의 홑적삼을 겹쳐 입고 흰 앞치마를 산뜻하게 둘렀다. 

궁녀는 왕의 사생활이 영위되는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서 의·식·주에 사역되는 여성들이다. 궁인들은 내명부에 속하는데 가장 낮은 직급은 종9품이고, 기장 높은 궁녀는 상궁으로 정5품의 품계로 귀하신 분을 모시는 소임을 갖는다. 궁녀 중 장식(掌食)·장찬(掌饌)·전선(典膳)·상식(尙食) 등이 음식에 관련된 직종을 맡는 이들이다. 

숙수(熟手)는 남성 전문조리사로 궁중의 잔치인 진연이나 진찬 때 솜씨가 좋은 숙수들이 대부분 대를 이어가며 궁에 머물렀고 왕의 총애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선조시대 여러 재상이 참여하여 펼친 경로잔치를 그림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 1605)에 보면 음식을 준비하는 숙설소(熟設所 또는 조찬소造饌所)의 주변을 그린 장면이 있는다. 이 그림은 임시로 지어진 숙설소의 모습과 숙수의 모습이 나타나 궁중의 숙설소나 숙수의 업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구글 이미지)



궁은 장시간을 거쳐 기능직사람들이 철저히 훈련이 되어 일을 하는 곳이니 지금의 전문직 양성소라고도 볼 수 있다.궁중의 의례절차에 따른 상차리기와 일상의 수라상 차리기, 크고 작은 접대식 등을 살피면 궁중의 식생활관련 제도는 경국대전에 나타난 것처럼 담당관아와 일하는 사람들 간에 시스템이 잘 이루어졌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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