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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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사는 남자에서)
요즘 복잡한 일이 실타레처럼 얽혀 머리가 뽀개질 정도로 아팠는데, 마침 아내가 쉬는 날이라 함께 <왕과 사는 남자>를 보자고 했다. 검색을 해보니 <스타필드>에서 상영 중인데, 운정의 스타필드는 주차 공간이 작아서 입출입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다소 거리가 있는 삼송에 위치한 <고양스타필드>로 갔다. 삼송은 오래 전 결혼을 하면서 내가 처음 이사를 온 곳이었다. 그 당시는 논밭이 있고, 낡은 집들이 개천을 따라 있었을만큼 반은 촌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전벽해 (桑田碧海)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완전히 달라져 있다. 우리가 찾는 스타필드 건물이 생각보다 커서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메가박스>까지 한참을 걸어갔다. 마침 주말이라 사람들로 상당히 붐볐다.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많아서 그런지 유모차를 끌고온 젊은 부부들도 많았다. 영화관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스크린이 아주 넓고, 좌석의 높이도 경사가 잘 져서 영화를 보기에 좋았다.
<왕과 사는 남자>는 잘 알다 시피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란>으로 인해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간 단종 노산군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가 1,400만을 넘길 정도로 히트 치는 바람에 청령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나와 아내는 이곳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기념관도 잘 단장이 되어 있어 일부러 구경가기에도 좋다. 한 여름에는 청룡포가 내려다 보이는 소나무 숲에 돗자리를 깔고 쉬기도 한 적이 있을 만큼 경치가 좋은 곳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시종일관 유배 당한 단종과 청령포 촌장 및 마을 사람들의 관계와 입장에서 비극적인 '단종애사'를 따뜻하고 희극적인 시선으로 바꾸어 감동을 준다. 각가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도 영화의 내용을 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영화를 재밌게 풀어가는 유혜진의 찰떡진 연기, 완전 넋을 잃은 눈빛에서 다시 생기를 찾아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던 단종 역의 박지훈,권력의 비정함을 추상같은 말로 보여주던 한명회 역의 유지태 등의 연기가 깊은 감동과 기쁨을 더했다. 혹자는 이 영화에 제시된 여러가지 사실들이 팩트 체크에 걸린다고 하지만, 그것은 감독의 작품 해석에 비추어볼 때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도 괜찮다. 역사 콘텐츠들을 작품화할 때는 단순히 재현하는 것 보다는 현 시대와 관련해 해석자의 시각과 재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과거를 새롭게 되살릴 수 있다는 데 묘미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를 단종과 엄홍도의 감정선과 도덕의 관점에서만 본 것은 분명 감독의 권한이라 할 수 있겠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인들이 비극(Tragedy) 공연을 보고 연민과 카타르시스(Katarsis)를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1,400만의 관람객들이 그와 비슷한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굳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거론하지 않아도 세조가 계유정란을 일으킨 1453년의 조선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1392년에서 60년 뿐이 되지 않은 '신생국'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를 도덕으로부터 분리시킨 점에서 근대 정치사상의 시조로 간주되고 있다. 정치의 문법과 도덕의 문법은 다르기 때문에 고대인들처럼 도덕으로 정치를 재단하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다음으로, 마키아벨리는 신생국의 군주와 세습국의 군주의 역할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세습 군주국은 물려 받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군주 개인의 역량(virtus) 보다는 정권의 정통성이나 현상 유지의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반면 신생 군주국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군주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백성과 기존 기득권층의 저항에 직면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군주 개인의 역량과 리더쉽이 요구된다.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세조가 계유정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대한 도덕적인 분노 보다는 그가 정란 후 신생국가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노심초사한 점과 이룩한 성과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고려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은 태종에서 세종과 세조 그리고 성종을 거치면서 크게 부흥했다. 만약 16세라는 어린 단종이 왕위를 계속 유지했다고 한다면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는 지방 호족들과 사대부들의 견제를 막아낼 수 있었을까? 사실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통상적인 이런 정치 철학이나 권력 이론과 달리, 감독은 어린 나이에 유배를 당한 노산군의 시선과 그이의 유배를 유치함으로써 깡촌 마을사람들이 배부르고 등따신 삶을 유지하게 하려는 촌장의 마음에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있다. 노산군이 왕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쩔 수 없는 운명(Fortuna)의 희생자나 다름없는 노산군에 대해 청령포 마을 사람들이 동정심을 갖고 극진히 모시려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나 다름없다. 유해진이 연기한 엄홍도는 바로 그런 인물을 상징한다. 노산군은 하루 아침에 왕좌를 탈취당하고, 그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충신들이 고문과 죽임을 당한 현실에 너무 마음이 아퍼서 식음을 전폐하고 말문도 닫아 벌인다. 그의 처절한 심정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이런 유배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해서 관아에 보고하는 일이 엄홍도의 일이다. 하지만 엄홍도는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유해진 특유의 희극적 연기를 통해 노산군의 마음을 사고,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정성으로 차린 음식들을 노산군에게 먹일 수 있었다. 그 전에 엄홍도는 노산군이 절벽에서 자살하려는 것을 살린 반면, 노산군은 나중에 호랑이의 기습을 당한 절체 절명의 순간에 활로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다. 어려운 자들 끼리 서로가 서로를 살리면서 새로운 관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노회한 지략가 한명회의 손길을 어린 노산군이 피할 수는 없었다. 한명회는 노산군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감사히면서 그의 마음 깊은 속까지 다 꿰둟어보고 있었다. 엄홍도의 아들이 노산군의 처소를 드나든다는 이유로 죽일 만큼 팸으로써 노산군을 관아까지 찾아오게 만들고, 오히려 그의 역정이 엄홍도의 아들을 죽일 수 있다고 하면서 노산군을 겁박해 물리친 일이 그 하나다. 애초부터 세조의 권력 찬탈을 반대했다가 경상도 순홍(경북 영주)으로 유배당한 금성대군은 노산군을 끼고서 반란을 획책한다. 한명희는관노를 통해 금성대군의 움직임을 다 읽고 있었고, 그것을 기화로 노산군을 살려두지 않으려 하고 있다. 노산군의 씨앗을 없애야 세조의 정통성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노산군이 궐기를 결심하고 금성대군이 보낸 첩자를 향해 답신을 묶은 화살을 날리는 모습을 엄홍도가 본다. 그는 노산군을 찾아가 진심으로 말린다. 그가 반란에 가담할 경우 노산군 뿐만 아니라 청령포 주민들 모두가 살해를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엄홍도는 노산군의 선택이 가져올 결말을 불을 보듯 알고 있는 것이다. 엄홍도의 고민과 갈등은 여기서 정점을 이룬다. 노산군을 따를 경우 청령포 주민들이 학살 당할 것이고, 노산군을 배신하면 그래도 목숨은 부지할 것이다. 노산군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노산군을 배신한다는 양심의 거리낌이 있지만 청령포 주민들의 목숨을 살릴 것인가? 모든 도덕적 갈등은 바로 이처럼 극단적인 기로점에서 시작한다. 이 절박한 순간에 엄홍도는 노산군의 곁에 서서 그의 안내를 맡지만, 결국 들통나고 만다. 한명회가 매수한 관노의 밀고 탓이다.
결국 노산군은 사약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으로 방문을 걸어잠그고 마지막 시위를 한다. 이 때 엄홍도가 나타나 노산군을 자신이 직접 끌어낸다고 한다. 이미 둘 간에는 약조한 바가 있었다. 절대 사약을 받지 않고, 엄홍도의 손에 자기 목숨을 맡기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문풍지 밖으로 나온 동앗줄 저 끝은 노산군의 목을 감고 있었다. 엄홍도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줄을 잡아당겨 노산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돕는다. 노산군의 시신을 영월 동강에 물고기 밥으로 던지면서 "시신을 거둔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을 내렸다. 조선 후기 역사서 ‘연려실기술’에는 ‘모시고 있던 통인이 (단종의) 목을 졸랐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는 것은 달게 받겠다."고 결심한 엄홍도는 몰래 그 시신을 거두어 묻어주고 강원도 깊숙한 곳으로 잠적한다. 엄홍도는 그후 단종을 복위시킨 숙종 때에 그의 충절도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아 공조판서로 임명된다.
<왕과 사는 남자>는 어린 단종의 죽음을 둘러싼 비극적 사건을 감독의 따듯한 시선을 통해 깊은 감동으로 되실린 영화다. 큰 스크린에서 보아서 그런지 더 큰 울림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