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사를 마치고 김 목사의 차로 울란바타르에서 활동하는 연세 동문들의 모임 장소로 이동을 했다. 중간에 환전소를 들러 환전을 하고, 모이스 몽골 국립대 앞에 있는 약속 장소 블루몽 앞에 내렸다. 이곳은 수흐바타르 광장 뒷 편이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어서 옛 생각도 되살릴 겸 천천히 광장으로 걸어갔다. 오랜 만에 보는 거대한 칭기스칸 동상과 그 앞에 있는 기마상의 모습은 예전 모습 그대로다. 파란 하늘과 뭉게 구름을 배경으로 달리는 말 위에서 칼을 치켜 든 모습은 당장이라도 서역으로 진군해 나갈 듯하다.
수흐바타르 광장은 나에게도 몇 가지 잊지 못하는 추억이 깃든 곳이다. 첫번째 추억은 내가 울란바타르에 처음 왔을 때 나의 가이드 역할을 해주던 몽골인 친구 칭기스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한국에서 8년 동안 일을 한 탓에 한국말을 잘해 나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가 차를 가지고 나의 가이드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내가 울란바타르에서 살기가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그를 만난 지 이틀 만에 수흐바타르 광장을 구경했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5년 만에 방문한 울란바타르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가 없다. 그는 한국에서는 병도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갑상선 암을 앓다가 몇 년 전에 비교적 젊은 나이인 50대 중반에 생을 마감했다. 귀국하기 며칠 전에 그가 병든 몸을 이끌고 내가 살던 아파트를 방문했다. 원래 건장한 체격을 지닌 그가 병색이 완연한 몸으로 찾아 왔을 때 마음이 무척 아팠다. 한국의 병원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그는 한국에서 불법 체류를 한 탓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그렇게 생을 마감한 것이다. 내가 이번에 울란바타르에 온 이유 중에 하나는 그의 무덤을 찾아 헌화를 하는 일이다.
두 번째 추억은 2017년 5월에 있었다. 그 일이 있기 한 달 전 나는 술을 먹고 귀가를 하다가 다리를 삐끗한 경험이 있다. 그 때 심하게 다쳐서 다음 날 몽골 민족대의 정 우진 교수님이 직원 한 명과 함께 차를 몰고 와서 후레대 근처에 있는 한방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 때 북한인 한의사에게 침을 맞았는데 너무 아퍼서 지금 까지도 기억이 선명하다. 이 다리를 고치기 위해 한방 병원에 드나들다가 나중에는 대상 포진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보니 면역 체계가 약해지고, 결국은 대상포진까지 걸린 셈이다. 대상포진은 신경계를 타고서 고통을 주는데 그 병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아프다. 내가 그 병 때문에 울란바타르에 있는 서울 병원에 갔는데 담당 의사가 대상 포진이라는 병 자체를 모르고 그냥 나한테 진통제만 처방을 해준 것이다. 아내가 그 처방전을 보고서 대상포진과 무관하다는 것을 알고 새롭게 한국에서 처방전을 받아서 그걸 가지고 몽골 의사에게 설명해주고 새로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기도 했다. 아무튼 삐끗한 다리와 대상포진 때문에 근 한 달 가까이 병원을 드나 들면서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몸이 나은 상태에서 혼자 아파트를 나와 울란바타르 시내로 들어가서 한 참을 걷다가 수흐바타르 광장까지 왔었다. 그 때 광장 중앙에 있는 기마병 동상 앞에 앉아서 한 참을 시간 보낸 적이 있었다. 내가 왜 병약한 몸을 이끌고 몽골까지 와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가, 도대체 이런 고생을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면서 자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거대한 칭기스칸 좌상을 보면서 단 10만의 기마 군단을 이끌고 짧은 시간 안에 세계를 제패한 칭기스칸에게서 큰 영감과 힘을 얻은 적이 있었다. 칭기스칸은 그 당시 무기력한 나의 삶에 중요한 멘토 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지금도 내 서재에 칭기스칸이 새겨진 페넌트를 걸어 두고 있다.
세 번째 추억은 몽골의 여인과의 애틋한 추억이다. 내가 8월 초 귀국 며칠을 앞두고 몽골의 한 여인과 페북의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녀는 몽골의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이라 나하고는 영어로 대화를 했다. 그녀가 나의 페북을 보고 말 상대라 생각을 했는지 먼저 연락을 해왔다. 그런데 귀국 전에 내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세브란스 의전을 나와서 몽골에서 의술을 펼쳤던 이태준 열사의 기념 공원이다. 이 공원은 자이승 지역의 승전탑 아래에 있지만 차가 없는 나로서는 접근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지나가는 투로 내가 그 공원 가는 일을 도와줄 수 없느냐고 말했더니 당장 도와주겠다는 답변이 왔다. 그래서 그 다음 날 후레대 앞에서 보기로 했다.
대략 오후 한 시 쯤으로 기억하는데, 금방 올 것처럼 이야기를 하면서 30분을 넘겨도 오지를 않는다. 학교 앞에서 다른 선생들 이목도 있고 해서 내가 살던 아파트 앞의 노민 슈퍼 앞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노민 슈퍼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곳에 있다. 그녀는 지정한 장소를 벗어나 엉뚱한 곳에서 나를 찾아 헤맨 것이다. 결국 중간에 내 친구 칭기스가 통역을 해줘서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몽골의 국민차 프리우스를 몰고 온 그녀의 차로 들어가니까 대단한 미인이 어깨가 드러나는 나시와 아주 짧은 미니 스커트를 입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하고 있어서 더욱 미모가 돋보였다. 그 나이 또래의 대부분의 몽골 여성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몽골은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무려 4,500킬로나 걸쳐 있는 나라다. 그래서 동쪽 출신의 전형적인 몽골인들과 서역의 피가 섞여 있는 몽골인들은 체형과 용모의 차이가 크다. 내가 만난 여성은 키는 큰 편이 아니지만 서역 출신이었다. 성격도 서글 서글해서 처음 만난 이국 남자에게 바로 악수를 청하면서 차에 타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차를 타고 자이승 쪽의 기념 공원으로 가면서 이것 저것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이야기가 잘 통했다. 아무튼 이태준 기념 공원에 도착해서 함께 사진도 찍고 공원 관람도 하면서 첫 대면을 무리없이 보냈다. 8월 초라 햇빛이 강렬하고 화창했다. 관람이 끝난 후 근처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서 한 참을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것 저것 비슷한 관심사를 두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수흐바타르 광장 이야기가 나와서 그녀의 차를 타고 오늘 오랜만에 다시 방문한 몽골 국립 대학 까지 오게 되었다. 그 근처에 차를 세워 놓고 마침 저녁 시간도 돼서 그녀가 안내하는 레스토랑으로 가서 그녀가 사준 저녁까지 얻어 먹었다. 이역 땅에 와서 나보다 무려 20 년은 어린 미모의 여성에게 분에 넘치는 서비스를 받는 느낌이 묘했다. 하지만 어색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그녀 역시 태도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저녁을 마친 후 어둑해진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가서 함께 사진도 찍으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략 2시 쯤 만나서 밤 10시까지 이야기를 했으니 그날 무려 8시간을 외국 여성과 데이트 한 셈이다. 귀국을 며칠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이 후의 이야기는 19 금이라 더는 하지 않고 읽는 이의 상상에 맡기겠다. 오늘 다시 모이스 국립 대학 앞 길과 수흐바타르 광장을 걷는데 그 때 함께 있었던 여성 아리온자라의 얼굴이 많이 떠올랐다. 지금 그녀와는 소식이 완전히 끊어졌다. 5년 만에 몽골을 방문해서 그녀의 소식을 탐문해보려 해도 전혀 방도가 없다. 지금 쯤 그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귀국 후 6개월 정도 후에 아리온의 딸의 이메일을 받았다. 내가 방문했을 즈음에 자기 엄마가 병으로 죽었다고 하면서 차마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이도 나와 20살 차이라 한 창 젊은 나이인데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다는게 실감이 가지 않았다. 그 날 밤 그녀를 애도하는 술을 한 잔 올렸다. (2022.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