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에리치 그림_ Remember! 1924
장편소설_칸첸중가_010_팔루트
.
8시쯤 팔루트를 향해 떠났다. 뒤따라온 일본 청년들이 앞질러 갔다. 그들의 뒤를 놓치지 않으려니 땀이 나도록 열심히 걸어야 했다. 산등성이 길은 완만했다. 심한 비탈은 거의 없었다. 응달진 곳에서는 잔설(殘雪)을 밟고 걸었으며 때로는 옆으로 자란 랄리구라스 숲 사이를 걸었다. 우리나라 철쭉이나 진달래와 흡사한 네팔의 나라꽃인 랄리구라스는 이제 막 봉우리를 맺기 시작했지만, 하얀 눈꽃이 붙어 있기도 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흩어지면서 황량한 고원지대의 전모가 드러나고, 그 너머로 구름에 휩싸인 칸첸중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곧 앞서간 일본 청년들도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하이’라고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가던 길을 가려고 몇 발 내디뎠을 때, 한 청년이 ‘잠깐’이라고 말했다. 내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자, 그는 ‘셔터 좀 눌러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손에 카메라를 건네기 전에 셔터의 위치를 알려 주려고 했지만, 내가 그 카메라를 보고 ‘니콘 F2’라고 말하자 그는 내가 그 카메라를 써 봤음을 알아차리고 싱긋 웃었다.
고원 너머로 보이는 칸첸중가의 모습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건넨 청년이 동료들 곁으로 가서 선 그 짧은 사이에도 바람이 불고 구름은 움직여서 칸첸중가의 모습에 신비스러운 변화를 주고 있었다. 나는 일단 그의 부탁대로 셔터를 한 번 눌렀다. 그리고 한 두 장 더 찍어도 되냐고 그들을 향해 물었다. 그가 된다고 말했고 나는 세 장을 더 찍었다. 네 명이 찍은 단체 사진은 네 장을 찍는 것이 안전하다. 사람의 눈은 늘 깜빡이고 있으며, 네 명 중 한 명이 눈을 감는 순간에 셔터를 누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카메라의 주인의 표정에는 필름이 아깝다는 듯한 표정이 스쳤다.
우리는 다시 걸었다. 하늘은 그날따라 유난히 파래서 머리에 물을 이고 걷는 듯했다. 산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오히려 멀어지는 듯한 칸첸중가를 향해 북쪽으로 곧장 이어지고 있었다. 니콘 F2의 주인은 이름이 요시부미라고 했다. 그는 내게 칸첸중가에 깊이 매료되었던 제정 러시아 말기의 화가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다. 그가 토막토막 나열했던 얘기들을 종합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1. 제정 러시아 말기에 ‘로에리치’라는 화가가 살았다. 그는 불교를 좋아하는 명상가이며 사상가이기도 해서 러시아를 떠나 티베트를 비롯한 히말라야 일대를 여행하며 불교를 연구하는 한편 많은 독창적인 그림을 남겼다. 만년은 부인과 함께 북인도 히마찰프라데시주의 쿨루 지방에 정착하여 살다가 죽었는데 그 자리에 ‘로에리치 기념관’이 있다.
2. 일본 청년 요시부미는 로에리치를 영어로 번역된 어떤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책에 나오는 로에리치가 남긴 유명한 그림 의 배경이 된 칸첸중가의 모습이 좀 전에 내가 셔터를 눌러 단체 사진을 찍어준 바로 그 자리에서 본 풍경과 매우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 그림이 어떤 그림이었는지 궁금했다. 요시부미는 그림이 들어있는 그 책을, 아니면 그림이 인쇄된 페이지만을 따로 복사해서 가져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설명했다.
- 저 황량한 고원지대에 주막집으로 보이는 외딴집이 한 채 있고, 흰말 위에 앉아서 그 주막집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고, 그 배경에는 바로 저 칸첸중가가 장중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모습을 드러낸 그림이다.
- 1924년이면 우리 아버지가 태어난 해이다. 로에리치는 그 때 이곳에서 뭘 기억하라고 했는지도 그 책에 나오는가?
- 물론 나온다. 삶은 험난하고 황량한 여정이지만 우리가 본래 떠나왔던 고향을 기억하라는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던 것 같다.
- 1924년에 들러서 마셨던 그 주막집의 술맛을 기억하라는 뜻이었을 거라는 대목도 그 페이지의 어느 행간에 숨어있지 않았을까?
-하하하, 그것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그런 부분은 놓친 것 같다. 어쨌든 <</span>기억하라, 1924>는 현재 뉴욕의 니콜라스 로에리치 미술관(Nicholas Roerich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고 읽었다.
우리는 로에리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점점 뒤로 처졌고 어느새 앞서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람도 심상치 않게 불었다. 곧 비나 눈이 올 것 같았다. 산닥푸에서 팔루트까지는 21킬로미터인데 겨우 4킬로미터를 걸었을 때였다. 남은 구간 17킬로미터를 걷는 중에 아무래도 비를 만날 것 같았다.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오후가 되자 운무 때문에 시야(視野)가 5미터도 안 됐다. 일본 청년들은 서로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보조를 맞추어 걸었고 나는 그들의 뒤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북사면(北斜面)에는 눈이 발목까지 빠지는 곳도 있었다. 운동화가 젖어 발끝이 시렸다.
다시 한 시간 이상 걸어서 지도에 사발그람(Sabhargram)이라고 표기된 지점에 도착했을 때, 운무가 걷히면서 칸첸중가의 설봉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이었을 건축물의 잔해도 보였다. 지붕이 없고 사방 벽도 무너지고 있었지만, 오래된 집의 잔해 같았다.
“저 잔해가 혹시 로에리치가 그린 그림 속의 주막집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 끝에 술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때쯤 눈앞의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지도를 보니 능선을 따라 곧장 나 있는 길은 팔루트로 이어지고, 능선 동쪽 사면으로 난 길은 몰래이로 내려가는 길로 이어졌다. 팔루트 정상까지 가는 건 포기하고 그냥 바로 밑에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몰래이로 내려가서 술을 마셔볼 생각이 간절했지만 참았다.
팔루트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다섯 시였다. 치워놓은 눈 더미들 가운데 서 있는 건물이 서벵골_West Bengal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산장이었다. 양철 지붕을 씌운 단층 목조 건물의 넓은 홀에 식탁이 두어 개 놓여 있었는데 그중 촛불이 켜져 있는 식탁에 서양 트레킹 팀의 심부름꾼들이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매니저가 안내해 준 방에는 침대 여섯 개 외에 책상과 의자도 있었다. 의외로 침구가 깨끗했다. 두툼한 담요도 두 장씩 배당되어 있었다. 저녁을 주문해 놓고 뜨거운 차를 마셨다. 어두워지는 창으로 운무가 한기와 함께 스며들어 왔다. 어디서 쇠 방울 소리가 뎅그렁뎅그렁 울렸고 작은 새가 푸드덕 날아오르는 소리도 들렸다.
서양팀들의 식탁에 눈부신 칸델라가 놓였다. 칸델라 불빛에 비친 서양팀의 식탁은 아주 풍성했다. 짐꾼들이 풍부한 식량을 지고 왔으며 조리사가 관광 호텔급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서양인팀의 식탁에서 퍼져 오는 칸델라 불빛에 의지하여, 거기서 풍기는 닭튀김 냄새를 반찬 삼아 달밧떨커리(흰밥에 감자볶음과 녹두 국)를 먹었다. 달밧떨커리는 우리나라 식당의 메뉴인 백반 정식 같은 것이다. 나는 그래도 먹을만했는데, 일본 청년 한 명은 고산증에 시달리는지 몇 술 뜨다 말았다.
#장편소설_칸첸중가_010_팔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