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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유적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7-12 13:14:19

아프라시압 유적은 이 대로가 사이에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는데 서쪽의 경우, 자연 구릉이 형성된 토성(土城)이 구축되어 있다. 이 성곽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침공하는 것을 멀리서도 볼 수 있는 역할도 하고 있다. 게다가 소그드 왕국 이후에는 봉수대도 나름 설치되었다고 한다. 토성 성곽으로 올라가 일단 위, 아래로 조망해보기로 했다. 사마르칸트 시의 동북쪽 언덕에 위치한 도시 유적을 지칭하는 명칭. 본래 어원은 이란의 영웅서사시에서 침입자 빌런으로 등장하는 투르크계 왕의 이름이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토성 유적,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국내에서는 매체에 따라 아프라시아브, 아프라시욥, 아프로시압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현재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목초지 상태로 남아있지만 1220년 몽골의 침입 이전에는 사마르칸트의 구 도심이 이곳 아프라시압에 위치해 있었다. 때문에 유네스코에서는 이 아프라시압 유적까지 포함하여 신, 구 사마르칸트 전체를 세계유산 '사마르칸트-문화교차로'로 등재하였다. 북쪽의 높은 언덕에서부터 시작해 남쪽의 평평한 지대까지 모두 성곽으로 둘러싸여 산성과 평지성이 결합된 도성 형태를 하고 있다. 


2중으로 설치된 내성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으며, 국제무역도시로 이름이 높았던 역사를 증명하듯 세계 각국으로 통하는 문(중국 문, 부하라 문, 나우베차르 문, 케슈 문 등)들이 별도의 이름을 갖고 설치되었다. 특히 도성 내의 남동쪽 영역에서 1965년 도로공사를 위한 사전 발굴조사 중 발견된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는 7세기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그려져있어 한국에서도 매우 관심이 높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각국의 사절들이 그려져 있어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의 발견은 아프라시압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진 계기가 되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으로서도 이 아프라시압 유적은 전통적인 세계 중심 도시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깊기 때문에 국가적인 시설의 명칭 등으로도 즐겨 쓰이고 있다. 아프라시압 토성 성곽은 전체적으로 보면 자연 구릉을 대고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방어하기 아주 좋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아래 길은 과거 실크로드의 길 중 하나로 자주 이용되었던 곳이고 지금이야 아스팔트로 덮혔지만 무려 2,000년전부터 생성되어 있었던 초원 실크로드, 낙타를 끄는 대상이 지나갔던 길이었다. 아프라시압 자체가 몽골 침입 이전 사마르칸트의 구도심이기 때문에 13세기 이전 사마르칸트의 역사가 바로 아프라시압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B.C 6세기 무렵 처음 역사 무대에 등장하는 이곳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일부였다가 B.C 4세기 후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때 알렉산드리아의 일부가 되며 헬레니즘이 번성하기도 하였다. 당시 명칭은 마라칸다였다. 이후 박트리아와 파르티아의 지베기를 거쳐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조로아스터교가 번성한다. 페르시아의 영향을 오랜 시간 받았기 때문에 이후 지배 왕조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이곳의 주민은 이란계 타지크인들이 절대 다수이다. 기원 후로는 주로 소그드인이라 불리며 도시국가 연합체인 소그디아나를 구성했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의 중심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서 문명의 충돌지이면서 상호가 교류하고 무역하는 허브도시로 기능했다.


7세기 무렵부터 이 지역은 <신당서> 등의 중국 기록에 강국(康國)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돌궐과 당나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이 시기의 유적인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서는 총 4벽면 중 서쪽 벽면에 소그디아나의 지배자 바르쿠만(Varkhuman), <신당서>의 불호만으로 추정되는 자를 접견하기 위해 유라시아 각지에서 찾아온 사절들과, 지배자와 함께 이들을 맞이하는 수많은 돌궐인 권력자들이 등장하고, 북쪽 벽면에는 온통 당나라 황실과 관련된 도상들이 등장하며 <당서>의 책봉 기록과 일치하는 점을 보여준다. 이 때 페르시아의 지원속에서 성장한 스키타이 인들이 후일 소그드 인이 된다. 


페르시아가 멸망한 이후, 이 지역을 장악한 소그드 인들은 아프라시압을 꽤 오래 지배했다. 도중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긴 했지만 적절히 조공도 바치고 충성함으로써 멸절되지 않고 아프라시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헬레니즘 그리스계가 몰락한 이후, 중앙아시아는 말 그대로 군웅할거의 시대가 되었다. 돌궐이라는 강한 민족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소그드는 나름의 역량을 갖추어 살아남은 국가이자 사마르칸트는 그런 도시였던 것이다. 그러는 도중 대지진을 만나 궁성 일부가 쪼개져 계곡이 형성되는 자연 재해가 발생한다. 그 때 생긴 계곡이 3~5번째 사진들인 것이다. 소그드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통합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통합된 상태에서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소그디아나의 남쪽은 그리스 박트리아였고, 서쪽은 호라즘이었으며, 북서쪽에는 강거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 사이의 지역으로, 제라프샨 강이 흐르는 비옥한 지역이었다. 근세 시기에 소그드 도시들은 이식쿨 호에서 수야브 일대까지 뻗어있었다. 동부 이란어의 일종인 소그드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이 언어의 직계 방언인 야그노비어는 타지키스탄의 야그노비 인들이 여전히 사용하고 있었다. 돌궐제국이 건국되어서도 소그드어는 중앙아시아에서 공용어로 사용되었고, 제1 돌궐 제국이 의회에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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