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영적인 그릇(두뇌의 용량과 잠재의식의 크기)을 지니고 지상에 태어난다. 어떤 이들은 전생의 깊은 수련이나 천상에서의 학습을 통해 남다른 영적 경력을 품고 오기도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억을 상실한 채 물질계로 내려온 영혼들은, 그 무한한 잠재적 용량에 비해 현실의 앎이 턱없이 부족할 때 형용할 수 없는 정서적 불안과 흔들림을 겪는다. 마치 반쯤 찬 물통이 요란하게 흔들리며 출렁이듯 말이다.
우리가 흔히 ‘영적 지성’ 혹은 ‘지성’을 채워야 한다고 말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전생의 트라우마, 거대한 영적 지식, 그리고 수많은 경험의 흔적들이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흩어져 있다. 지상에서의 구체적인 학문과 세상의 이치, 철학,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단순히 머리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무의식속에 감추어진 영적 자취들을 현실의 언어로 환기하고 정렬하여 내면의 안정을 되찾는 과정이다.
오늘날 우리는 피상적인 구별(Identification)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어떤 대상의 이름을 단순히 한글이나 영어로 아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진정한 지성은 사물의 본질과 한자(Hanja)가 담고 있는 깊은 개념적 뜻을 꿰뚫어 보는 데서 출발한다. 예컨대, ‘실림(新林)’이라는 지명을 통해 '새로운 숲의 태동'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봉천(奉天)’을 통해 '하늘을 받드는 마음'을 깨닫는 일은 우리의 삶에 완전한 수용과 영적 밀도를 더해준다. 단어의 진의를 모른 채 기술적으로만 언어를 소비하는 사회에서는 지성이 단절되고 영혼이 부유하게 된다.
우리의 진정한 삶의 목적은 ‘性通功完(성통공완)’에 있다. 물질 이전의 본래적 개성인 성(性)을 통하고, 표면 의식을 영의 의식과 일치시킴으로써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난 소명(召命)을 완수하는 것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자신의 내면이 아무리 해박할지라도, 끊임없이 깨닫고 채워나가는 갈증이 없다면 영혼은 정체된다. 비록 온 세상의 시스템을 당장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인연이 닿는 이들과 함께 올바른 언어를 익히고 깊이 있는 성찰을 이어갈 때, 우리는 불안의 파도를 넘어 영적 향상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整理 및 揷畵 : 제미니(Gemini)
출처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9BE9FqU2IsI&t=2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