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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Z세대 시위 :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한 규탄 시위인가? 상(上)편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2 13:18:20

불가리아는 본래 친러 성향이 강한 국가다. 러시아에 대한 불가리아인들의 감정 또한 그만큼 복잡미묘한 편이다. 과거 러시아 제국이 불가리아의 독립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근대사 기준으로 볼 때 양국은 매우 우호적인 관계였지만 냉전 시대 당시 불가리아는 소련의 위성국으로 존재했었고, 반소감정을 가진 자들이 러시아에 대한 악감정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동경과 증오가 미묘하게 섞여 있다. 현재 불가리아는 나토와 EU의 회원국이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불가리아에서도 반러감정이 강해지면 양국은 적대국으로 변했다. 현재 불가리아에는 소수의 러시아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러시아에도 불가리아계 러시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러시아 내의 불가리아계 러시아인은 약 30,000명 정도 존재한다. 상당수의 불가리아인들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피하기 위해 모스크바 대공국과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으로 이주했다. 러시아 제국으로 이주한 불가리아인들은 부자크 등에 정착했으며 크라스노다르 등에도 불가리아인들이 정착하여 크라스노다르 일대에는 불가리아계 러시아인이 많이 존재하는 실정이다.

루멘 라데프(Румен Радев) 전 불가리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소련 시기에는 소련으로 건너간 불가리아인들도 많았고 스탈린 시절에 불가리아인 일부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하면서 카자흐스탄내에는 소수의 불가리아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서기 6세기에 슬라브족이 동유럽-발칸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루마니아와 헝가리 이남에 정착한 남슬라브인과 오늘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대의 동슬라브인, 폴란드와 체코 일대의 서슬라브인이 분화되었다. 불가리아인은 남슬라브계에 포함되고 있다. 9세기 키예프 루스와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양국은 비잔틴 제국의 영향을 받아 정교회를 도입했고 키릴 문자도 사용했다. 특히 불가리아 제국은 키릴문자를 창제했는데 이후 러시아에 키릴문자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제1 불가리아 제국 말기에 키예프 공국의 대공 스비야토슬라프 1세가 침입해서 당시 차르였던 보리스 2세를 포로로 잡아가면서 수도를 불가리아 내로 옮기려고 했던 사건도 존재하고 있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킬 때 많은 불가리아인들이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이주했는데 그로 인해 러시아에는 불가리아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특히 불가리아인 귀족, 성직자들이 모스크바 대공국에 많이 이주했다.


1806~1812년과 1828~1829년에 발생한 러시아-투르크 전쟁으로 인해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으로 귀순한 불가리아인들의 후손들이 오늘날 몰도바 땅인 베사라비아에 정착하였는데 이들 베사라비아 불가리아인 중 상당수는 오늘날에도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외에도 러시아인 중에도 불가리아계 조상을 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19세기에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주민들이 많아지면서 격양된 범슬라브 민족주의에 따라 러시아 제국은 불가리아를 적극 지원했고, 1877~1878년의 기간 동안 러시아 제국이 발칸 반도의 슬라브족 분리주의 운동을 지원하면서 발생한 제12차 러시아-투르크 전쟁의 결과, 불가리아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아 소피아에 알렉산드르 네브스키 대성당이 세워지게 된다. 발칸반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성당인 알렉산드르 네브스키 대성당은 돔 위에 금박을 입혔는데 이는 러시아인들이 황금을 원조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 성당은 불가리아 독립전쟁에서 전사한 전몰자들을 추도하는 목적에서 지어졌다. 이와 같은 양국의 우호적인 측면도 있지만 러시아가 그냥 독립시켜 줄리 없었다. 


러시아 제국은 당시 지정학적 주적인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공격하여 흑해를 장악한 이후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것이 국가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터키의 지배를 받던 불가리아의 독립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약화시키기 위한 정치적이 술수에 불과했다. 이후 불가리아 정교회를 부흥시키는 과정에서 터키계 무슬림들을 학살하고 불가리아인 무슬림들인 포마크인들은 강제로 개종시키거나 터키로 추방했다. 러시아는 불가리아 내 정계에 대해 간섭하고 조공을 바치라는 식으로 불가리아를 대했기 때문에 막상 불가리아에게서 러시아는 은인이면서도 역시 그냥 은혜를 배풀어 준 것이 아니었다. 이처럼 불가리아와 러시아의 공식적인 수교는 1879년 7월 7일에 이루어지면서 146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이후 러시아 제국은 세르비아 왕국과 사이가 매우 긴밀해지면서 사이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러시아 제국이 협상국, 불가리아 왕국은 동맹국에 속했기 때문에 완전한 적대관계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소련은 연합국, 불가리아 왕국은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국이었으나 불가리아는 대조국전쟁에 가담하지 않았다. 이후 1944년 소련은 불가리아를 침공하였고 이후 불가리아는 소련과 강화를 맺어 연합국 측으로 전향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불가리아 왕국은 멸망했다. 결국 소련에 의해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이 세워졌으며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은 소련의 16번째 공화국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소련과는 매우 가까웠다. 불가리아는 소련인들이 가장 선호하던 휴양지였고, 소련 중산층들의 한 달 월급이 180루블 정도였던 시절에 평균 여행 경비 150루블로 다녀올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해외 여행지였다. 특히 흑해 연안의 바르나와 부르가스 근처의 해변이 발달하여 소련 관광객이 많았다. 불가리아는 경제적으로 소련의 지원과 원조를 받았으며 동구권에서 가장 친소 성향이 강한 국가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후반에 동유럽 혁명이 일어났고 불가리아는 별다른 유혈사태 없이 민주화되면서 공산정권이 붕괴되었으며 소련도 1991년에 해체되었다. 불가리아는 21세기에 나토, EU에 가입했지만 러시아와  나름 우호적으로 지냈다. 양국은 언어, 문화, 종교, 혈통에서 매우 가까운 편이고 불가리아가 EU와 나토에 가입한 이후에도 러시아와의 관계는 우호적으로 자리잡았다. 불가리아에는 소수의 러시아인들이 존재하고 러시아에도 불가리아인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리아는 2010년대에 있었던 크림 병합 이후 발생한 러시아 제재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불가리아에도 반러 감정이 일부 존재하는 편에 있지만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세르비아와 함께 친러 성향이 강한 편에 속한 국가였다. 그래도 역사적인 이유로 반러 감정이 심한 폴란드나 발트 3국,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조지아 등 다른 여러 동구권 국가들에 비하면 그나마 러시아에 우호적인 편이다. 러시아 관광객들은 언어적 유사성과 저렴한 물가, 온화한 기후로 인해 불가리아를 많이 방문하니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들로 인해 굳이 러시아를 제재할 필요가 없다. 특히 여름에 써니 비치 같은 인기 관광지에서는 러시아인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불가리아는 러시아인들에게 있어 매우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불가리아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를 비판했으며 러시아 항공사의 불가리아 영공 진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불가리아 상황은 어떨까?


지난 10일, 수도 소피아에만 최대 15만 명이 모였다. 이 중에는 상당수가 대학생들이었고,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해외에서 온 불가리아계 주민들도 있었다. 시위대는 “Поколение Z идва (Z세대가 온다)”, “Поколение Z срещу корупцията (부패와 맞서는 Z세대)”라고 적힌 표어들을 들고 행진했다. 수도 소피아의 국회의사당 건물 벽에는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문구를 새겨 놓았고,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여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영상을 상영했다. 소피아 뿐만 아니라 플로브디프, 바르나 등 불가리아 전역에서 수천 명이 모여 반(反) 정부 구호를 외치면서 친EU 총리와 의회 내각 총 사퇴를 요구했다. 이번 시위는 지난 11월, 2026년도 예산 안을 두고 시작되었다. 불가리아는 오는 2026년 1월 1일부터 유로존 가입을 앞두고 있는데, 유로화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첫 번째 예산 안이 문제였다. 이 예산 안에는 사회 보장 분담금 인상 계획이 들어 있었는데 이에 대한 증세에 대한 불만은 정부의 부패를 감추기 위한 위헌적 행위라면 극렬히 반대했다.


그러자 정부는 예산 안을 철회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의 분노는 잦아들지 않았다. 특히 미디어 재벌로 알려진 델리안 페에프스키(Делян Пеевски)가 창당한 정당이 연립 정부를 지지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페에프스키는 지난 2020년부터 각종 부패 혐의로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인물이었으며 그의 해외 재산은 동결된 상태였다. 시위대들은 페에프스키가 여전히 정부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2025년 1월 집권한 로센 젤랸스코프(Росен Желянсков) 총리는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임을 발표했다. 불가리아의 Z세대는 1989년에 공산 정권이 붕괴된 이후 이어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지 않은 세대다. 특히 냉전 시대와 공산 정권을 겪지 않은 세대들의 첫 시위이기 때문에 더더욱 주목을 받았다. 불가리아는 2007년 EU에 가입한 이후에도 국제 투명성기구에 의해 유럽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로 꼽히기도 했다. 특히 고위급 인사들의 부정부패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해 국민적 분노가 높아진 상태인데 이를 Z세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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