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저는 늘 육체적·정신적·시간적인 과부하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편입니다.
가능한 한 남은 에너지까지 의미 있게 사용하려 하다 보니, 저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널리 이로운 방향의 최적값과 최대값에 가까운 근사값’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피로와 고통은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삶에 함께해 온 익숙한 요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쩌면 너무 오래 지속되어 왔기에, 그것마저 어느 정도는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환절기라 몸의 상태가 조금 나빠진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소보다 몸이 무겁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것을 굳이 깊게 살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약을 먹고 잠을 자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미 몸살이 더 깊게 와 있었구나.
그제야 제가 느끼고 있던 여러 신호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세상의 복잡한 구조와 인간의 모순을 끊임없이 관찰하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 몸의 신호에는 둔감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정신과 의지의 영역에서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관리하면서도, 육체라는 가장 직접적인 존재의 한계에는 충분히 귀 기울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몸살은 제게 하나의 작은 자가점검이 되었습니다.
존재는 무한하지 않고, 에너지도 무한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방향을 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 방향을 수행할 수 있는 몸과 시간, 그리고 회복의 여백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감내한다는 것은 무조건 견디는 것만을 의미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때로는 멈추는 것도 감내이고, 회복하는 것도 관리이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또한 성실함의 일부일 것입니다.
오늘은 몸살이라는 작은 신호 앞에서
저 자신의 우둔함에 조금 실소하면서도,
‘널리 이롭게 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다시 배워 봅니다.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