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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의 속담철학: "시종에게는 영웅이 없다."
  • 이종철 칼럼니스트
  • 등록 2026-09-16 17:17:00
  • 수정 2026-09-16 17:18:11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예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에 관한 이야기다. 잘 알고 있듯, 두 사람은 조선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루는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대사여, 우리 서로 솔직해보면 어떨까요? 서로 마음을 터놓고 상대에 할 말 못할 말을 해보지요.'
'왕이시여, 좋은 이야기입니다. 먼저 한 번 해보시오.'
왕이 작심한 듯 먼저 말한다. 
'대사는 왜 그렇게 뒤룩 뒤룩 살만 쪘소. 겉으로는 근엄한 척 하지만 뒤로는 탐심에 찌든 돼지처럼 먹어대는 것이 아니오?'
왕의 노골적인 이야기에 화를 낼 법도 한데 대사는 빙그레 미소만 짓는다. 이제 대사가 말을 할 차례다. 
'왕이시여, 그대의 상은 부처님 같소이다.' 
이 말을 듣고 이성계가 의아스러워 다시 묻는다. 
'대사여. 나는 욕지거리를 했는데, 왜 그대는 덕담을 하시오?'
그러니까 대사가 다시 한 번 미소를 날린다. 
'본디 부처의 눈에는 모두가 부처로 보이지만, 돼지의 눈에는 모두가 돼지로 보이는 법입니다.'
아뿔사! 이성계가 한 방을 먹어도 크게 먹었다. 
파안대소하면서 이성계가 말한다. 
'대사의 도력이 높습니다.'


그냥 떠도는 야담(夜談)이지만 귀담아 들을 내용이 있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돼지의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 는 말이다. 서양에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도 <정신현상학>에서 이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시종에게는 영웅이 없다'는 말이다. 시종이 시종인 것은 시종의 눈으로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시종은 영웅의 곁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보면서 봉사를 한다. 그가 보기에 영웅도 장삼이사 보통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다. 똑 같이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똑같이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시종에게 더 많은 것을 의존하다 보니 신경질도 많고 화도 많이 낼 수가 있다. 그러니 시종이 보기에 영웅의 영웅다운 모습 보다는 성질 더럽고 까탈스럽고 화도 자주 내는, 한 마디로 성격 더러운 종자로 보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눈으로 보는 시종에게 영웅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다 그저 그런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자에게만 존재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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