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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는 정년이 없다— 초고령사회, 노년의 학자들을 왜 연구실 밖으로 내모는가
  • 이종철 칼럼니스트
  • 등록 2026-10-16 00:08:42

      그림은 AI

한국 사회가 본격적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5년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0.3%를 차지한다. 국민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65세 이상인 셈이다. 이 비율은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고령화는 단순히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생애주기와 노동, 교육, 복지 등 사회의 모든 제도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도록 요구하는 역사적 변화다.

과거에는 환갑을 넘기면 인생을 정리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80세를 훌쩍 넘긴 오늘날에는 사정이 다르다. 60대는 물론 70대에도 건강을 유지하면서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과거의 나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학자들도 50대가 되면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기보다는 그동안 해 온 연구를 정리하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통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히려 50~60대는 가장 왕성하게 연구해야 할 시기이며, 70대에는 평생 축적한 학문적 경험을 토대로 독자적인 사상을 완성할 수도 있다. 80대에 이르러 연구성과를 집대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학문은 단순한 육체노동과 다르다. 오랜 독서와 연구, 삶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적 능력과 통찰력은 나이가 든다고 일률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철학이나 역사학, 문학과 같은 인문학 분야에서는 오랜 사유의 축적이 독창적인 연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실제로 철학사에는 노년에 이르러 중요한 업적을 남긴 학자들이 적지 않다. 칸트는 57세에 『순수이성비판』을 출간했고, 이후 60대에도 비판철학을 완성하기 위한 저술을 계속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78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는 100세가 넘도록 철학을 연구했고, 위르겐 하버마스는 90세에 방대한 철학사 연구서를 출간했다. 이들의 사례는 학문적 창조성이 특정 연령을 넘으면 반드시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게다가 오늘날 학문이 다루어야 할 문제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디지털 문명, 기후위기 등 새로운 문제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학자들이 50대부터 연구를 정리하기 시작한다면 이런 시대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50~60대에도 뼈 빠지게 연구해야 하고, 70대에도 새로운 연구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대학과 국가의 학술정책은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은 대체로 65세에 정년을 맞는다. 물론 정년제도 자체는 필요하다.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학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대학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에서의 정년퇴직과 학문적 연구활동의 종료는 전혀 다른 문제다.

현실에서는 교수가 정년을 맞으면 연구실을 비워야 하고, 대학도서관과 해외 학술 데이터베이스 이용에도 제약을 받는 경우가 있다. 강의와 대학원생 지도 기회가 줄어들고,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새로운 소속기관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명예교수로 위촉되면 일부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역시 대학마다 사정이 다르다.

젊은 시절에는 강의와 행정업무에 시달려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다가, 정년퇴직 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이번에는 연구할 공간과 제도적 기반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보다 더 모순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국가의 연구지원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일부 연구지원사업은 신청 자격에 연령 제한을 두고 있다. 2025년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B유형은 만 64세 이하, 2026년 A유형은 만 60세 이하를 신청 요건으로 규정했다. 물론 모든 연구지원사업이 고령 연구자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학문후속세대를 육성하기 위한 사업의 특수성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연구자를 지원해야 한다고 해서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학자들의 활동을 지원할 필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정책은 충분히 병행할 수 있다. 새로운 연구주제를 발견하고 연구 역량도 갖춘 학자를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그것은 합리적인 학술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한국 사회는 고령자의 경제활동과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노인 일자리와 평생교육, 재취업과 사회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한다. 그런데 정작 오랜 세월 전문지식을 축적한 학자들의 연구활동은 개인에게 맡겨두는 경우가 많다.

학자 한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대학과 대학원 교육, 학술연구비, 연구시설 등 사회적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지적 자산이 정년과 함께 연구 현장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다면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러한 현실이 한국 학문의 독창성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상이나 독창적인 이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철학에서는 하나의 문제를 수십 년 동안 천착하면서 기존 이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개념을 구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때로는 60대와 70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완성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 대학에서는 재직 중에는 논문 실적과 강의, 행정업무에 쫓기다가 정년이 되면 연구 기반마저 약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독창성을 갖춘 사상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국 학문의 문제를 모두 정년제도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장기적인 연구와 사유를 지원하는 제도적 환경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분명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 국가와 대학은 정년퇴직한 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연구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

우선 퇴직 연구자들의 대학도서관과 학술 데이터베이스 이용을 폭넓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 학자에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연구활동의 필수적인 기반이다. 일정한 연구경력과 연구계획을 갖춘 퇴직 연구자에게 자료 접근권을 제공하는 데 큰 비용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전자저널 등의 이용은 계약과 저작권 문제가 따르므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한국연구재단에 가칭 '시니어 학술연구자 지원사업'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65세 이상의 연구자를 대상으로 연령보다는 연구계획의 독창성과 학문적 기여도를 평가해 지원하자는 것이다. 특히 인문학에서는 소규모 연구비와 안정적인 자료 접근만으로도 상당한 연구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울러 대학이나 공공연구기관에 퇴직 연구자들을 위한 공동연구공간을 마련하고,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세미나와 공동연구를 수행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노년 학자의 경험과 젊은 학자의 새로운 연구방법이 결합한다면 세대 간 학문적 교류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원이 퇴직 교수들만을 위한 특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시간강사나 독립 연구자로 활동해 온 학자들도 지원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직책이나 나이가 아니라 현재의 연구 능력과 의지, 그리고 연구의 가치다. 또한 청년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줄이지 않고 별도의 연구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고령사회에서는 인간의 활동 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65세라는 나이는 대학에서의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기준일 수는 있지만 연구자의 학문적 능력까지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물론 모든 학자가 70대와 80대까지 연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쉬고 싶은 사람에게는 쉴 자유가 있어야 하고, 계속 연구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연구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학문적 활동의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의지를 갖춘 연구자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학문은 본래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지적 탐구다. 젊은 시절에 중요한 업적을 남기는 학자도 있지만, 노년에 이르러 비로소 자신의 사상을 완성하는 학자도 있다. 대학의 정년이 학문적 삶의 정년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이제 우리는 노년의 학자들에게 언제까지 연구할 것이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계속 연구할 수 있도록 국가와 대학이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학술정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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