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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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완동물 중에 개를 제일 좋아한다. 어떤 이들은 야옹 거리면서 까묵 눈을 감으며 다가오는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나는 그런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고양이 털이 작난이 아니라고 한다. 내가 피부 알레르기가 있어서 털이라면 질색을 하기 때문이다. 개 보다는 고양이가 키우는데 덜 힘이 든다고 하지만 고양이는 자기 곁을 두지 않아서 정이 쉽게 가지 않는다. 내가 개를 더 좋아서 고양이한테 마음이 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세를 든 젊은 부부가 개를 키운 적이 있었다. 재래식 주택이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세입자가 개를 키우는 것이 허용될만큼 그 당시는 사람들 관계가 여유로웠는지 모른다. 이 부부와 함께 근처 학교의 운동장으로 가서 놀 때 개가 귀를 뒤로 바싹 세우고 달리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공을 던지면 빠르게 뛰어가서 그것을 물고 다시 오는 모습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남았다. 그 후로는 개를 키울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내가 다시 개를 키우게 된 해는 2005년 즈음이었다. 막내 처가 워낙 개를 좋아해서 우리 집으로 막내 가족들이 올 때는 꼭 2-3마리 정도의 개가 함께 왔다. 그 당시는 개에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 놈들이 거실을 막 뛰어다닐 때면 정신이 없어 불편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한 여름 막내 가족들과 함께 일산의 <호수공원>으로 놀러 갔을 때다. 거리를 오래 떠 돌아 다녀서 그런지 털이 지저분한 말티즈 한 마리가 이상하게 우리를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계속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를 좋아하던 막내 처가 가까이 가서 쓰다듬어도 피하지 않는다. 마침 공원 관리자가 다가와서 거진 1주일 동안 공원을 떠도는 개라고 말해준다. 개가 생각보다 순하니까 막내처가 개를 키워볼 것을 권한다. 나도 떠돌아 다니는 개가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눈빛이 초롱 초롱한 모습이 좋아서 그렇게 키우기로 결정했다. 개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 사람들과 오래 생활해본 개라 그런지 아주 조용히 앉아 있다.
일단 아파트로 데리고 들어와서 목욕을 깨끗이 한 다음 막내처가 가위로 지저분한 털을 말끔하게 정리를 해줬다. 그렇게 하고 보니 공원에서 보던 모습과 전혀 달라졌다. 이 개도 몸이 가벼운게 좋은지 전혀 낯을 가리지 않고 거실을 껑충껑충 뛰어 다녔다. 게다가 돌아오면서 사온 개 사료를 허겁지겁 먹기도 했다. 아무래도 거리를 떠돌아 다내면서 제대로 먹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바로 이름을 '초롱이'라고 지어 주었다. 그렇게 초롱이는 별로 낯을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말티즈를 처음 키워 보았는데 생각보다 머리가 좋았다. 바로 대소변도 가려서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고, 짖지도 않아서 이웃 신경도 쓸 필요가 없었다. 내가 그 당시는 담배를 억수로 피웠었다. 벽지가 담배 연기로 누렇게 변한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베란다에 있던 화초들이 겨울 내내 닫아 두었던 창문 때문에 그대로 담배연기에 노출돼서 담배의 누런 진이 화초 잎에 누렇게 배였다. 그 때만 하더라도 아파트 실내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당연시하던 시절이었다. 담배나 술은 사람을 안하무인 격으로 만드는 면이 있다. 자신은 열심히 피워서 좋을지 몰라도 주위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는 것이 고역이다. 내 방은 베란다 쪽에 있어서 나는 거실로 향한 문을 담고 줄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내 방에 들어와 놀던 초롱이가 담배 냄새를 아주 싫어했다. 잘 놀다가도 내가 담배만 집어들면 바로 눈치를 채고 나가버렸다. 나를 잘 따랐어도 독한 담배 냄새는 정말 싫었나 보다. 어떤 때는 초롱이를 방밖으로 내보내려 할 때 일부러 담배를 드는 모습만 보여 주어도 나가버렸다. 그런 초롱이가 아내랑 산책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 거리에서 만났다가 거리에서 이별을 한 셈이다. 사고를 당해 죽은 개를 보면서 그 상실감 때문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 화장한 다음 우리가 늘 산책한 곤 했던 서삼릉 언덕 길 옆의 오래된 나무 밑에 그 재를 뿌려 주었다.
몇 개월 동안 개없이 지내는데 어느 날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상암동인데 엄청 귀여운 강아지가 비를 맞으면서 떨고 있어. 그 개 데리고 오면 안 돼?" 내가 바로 답했다.
"안 돼. 초롱이랑 이별을 할 때 얼마나 힘든지 경험했잖아. 그리고 강아지를 데려오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걸 생각이나 해봤니?"
"내가 키울 수 있어. 정말이야. 아빠." 그렇게 두 세번 실강이를 해도 내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빠, 그러면 한 1주일 동안만 우리 집에 같이 있게 해줘. 그 사이 내가 입양할 친구들을 찾아볼게." 너무 간절히 부탁을 하는데 그 말마저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일단 강아지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했다. 사진을 보니까 갓 태어난지 한 달도 안돼 작고 귀여워 보였지만 손발이 큼지막한게 신경이 쓰였다. 그 사진을 막내처에게 보내주니까 실내에서 키우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거라 했다. 그리고 털도 많이 빠지는 종류라고 했다. 하지만 개에 대한 그런 경험도 없는 상태에다가 이미 결정을 한 탓으로 그냥 집으로 데려오라고 했다. 그런데 단 자기가 키우겠다고 한 딸아이 말이 완전 공수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강아지의 털이 아주 시커멓고, 거실을 멋대로 뛰어 다니는 모습이 람보와 같아 보여서 이름을 까만 람보, 즉 '깜보'라고 붙였다.
깜보는 확실히 아파트 안에서 키우기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쑥쑥 자랐다. 먹기도 잘 먹고 놀기도 잘했다. 깜보는 무엇보다 털이 아주 많이 빠졌다. 나는 개털을 정말 싫어하는데 깜보와 외출하고 나서 씼길 때 빠지는 털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목욕을 마친 다음 털을 말리고 나면 거실은 눈송이가 뭉쳐서 돌아다니는 것처럼 털들이 사방을 듬성듬성 채웠다. 나중에는 털 청소가 감당이 안돼서 업소에서 사용하는 크고 강력한 청소기를 사용해 털을 빨아 들였다. 한창 자랄 때는 털도 엄청 빠졌지만, 나이를 먹고 병약해 지니까 털도 별로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이 깜보는 활동량이 많아서 규칙적으로 산책을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오래 두고 나갔다 오면 스트레스가 심한지 온통 벽지를 입으로 다 물어 뜯어 놓기도 했다. 개의 습성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을 때였다. 이런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특별히 생각나는 방법이 2가지다. 하나는 아파트 반경 15킬로 안에 산책 장소를 만들어 놓고 돌아가면서 이용하는 것이다. 주로 뒷산에 있는 공원에 가서 산책을 했다. 야산이지만 잘 꾸며 놓아서 평일 날 가면 한적해서 깜보가 운동하기가 아주 좋았다. 두 번째는 행주산성 아래의 한강변이다. 이곳은 성산대교나 반포 아래의 공원과 달리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사람들이 없어서 깜보가 멋대로 뛰어 놀기가 아주 좋았다. 깜보는 나에 대한 충성심이 아주 좋아서 함께 걸을 때도 절대 10메타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깜보의 마음을 읽을 때면 나의 마음도 위로를 받고 힘도 얻는다. 나는 깜보를 통해 '절대 감정'을 느꼈다. 오죽하면 아내가 섭섭한 마음을 털어놓을 때도 있다. "밥은 내가 주는데, 밖에서도 당신만 따라 다녀."
두 번째는 자기 스스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다. 어느 순간 개사슬을 가지고 거실에서 하키하듯 몰고 다니며 한참을 뛰는 것이다. 쇠사슬을 드리블 하다가 이것이 멀리 가면 껑충 뛰어서 다려가는 폼이 보통이 아니다. 거진 20분 이상을 격렬하게 운동을 할 때는 거실 바닥이 깜보가 흘린 침으로 번들 거릴 정도다. 내가 그 모습을 유심히 살피면서 알아챈 것이 있다. 운동을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라 꼭 밥먹기 전에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깜보야, 밥먹자.'라고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한다. 그러면 큰 소리로 다시 말한다. 그제서야 마지 못해 그만두고 밥그릇 쪽으로 간다. 그런 모습을 보다 보면 우리 어렸을 때 밥먹는 시간도 잊고 놀던 모습이 생각난다. 엄마가 밥먹으라고 불러서야 마지 못해 친구들과 헤어지곤 했는데, 그런 옛 모습을 깜보를 통해 다시 알게 되었다. 하루에 3번 식사를 하니까 깜보도 3번을 운동을 하는 셈이다. 아무튼 깜보는 자신이 개발한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개와 오래 살면서 '교감'empathy)에 대한 체험을 많이 했다. 나와 다른 타자 -그것이 사람이든 아니면 동물이든- 와 마음이 통하는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마음을 느껴 보았지만 오래 가지 않았고, 그것이 깨질 때는 실망도 컸다. 그런데 깜보랑은 그런 감정이 깨진 경우가 없었고, 강도와 지속도도 높았다. 아마도 이런 감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지 모르겠다. 내가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갔을 때, 나는 내 문제에 더 골몰해서 깜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살아졌을 때 나의 부재에 대한 깜보의 상실감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다 아내랑 화상 통화를 할 때 내 목소리를 듣고 거실에서 껑충껑충 뛰어 다니는 모습만 보고 안도한 것은 나의 큰 불찰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깜보가 사람을 기다릴 때 소변을 참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가 사람이 들어오면 그때서야 일을 봤다. 왜 그랬는지 몰랐지만 그런 버릇이 오래 지속되면서 방광염이 생긴 것이다. 귀국을 하고 나서 그런 깜보의 모습이 이상해서 동물 병원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정밀 검사를 하고 나더니 깜보의 방광에 아주 큼지막한 암덩어리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수술이 가능하냐고 물으니까 불가능하다고 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냐고 하니까 6기월 채우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초롱이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다시 몰려왔다. 그날은 약 처방을 받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갈 때 가더라도, 가는 날 까지는 내가 곁에서 지켜주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이런 다짐 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2017년 크리스 마을 이브을 강화에서 보내자는 아내 말을 따라 강화로 가는 운전을 할 때였다. 김포의 통진 4거리에서 직진을 할 때 옆에서 차 한대가 신호 위반을 하면서 파고 들어 내 차의 오른쪽 후미를 박았다. 내 차는 그대로 한 바퀴를 돌아 도로변 가로수를 박았다. 순간적으로 아내와 내가 기절을 했다. 눈을 떠보니 나의 왼쪽 손이 돌아간 핸들 틈에 끼여 있었고, 눈 앞의 본네트가 크게 찌그러진 상태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아내도 오른 쪽 발이 문틈에 끼여 있었다. 다행히 깜보는 다친 곳이 없는데 큰 충격을 받고 떨고 있었다. 간신히 문을 열고 나와 119 신과와 함께 보험사에 사고를 알렸다. 차는 이미 완전 반파되어 있었다. 잠시 후 경찰차가 오고 이어서 보험회사의 직원도 달려 왔다. 그날 119 차를 타고 일산 병원의 에머전시 병동으로 실려갔다. 워낙 경황이 없어 그랬는지 몰라도 깜보의 행방은 몰랐다.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차에 그대로 실려 있는 상태로 견인되어서 그쪽에 2-3일 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 나는 오른 쪽 어깨 수술을 받고, 당시 병원 근무로 바쁜 아내는 수술 예약만 한 상태로 약물 치료로 버텼다. 깜보아 지낼 시간이 많이 않은 상태에서 나는 꼼짝없이 병원에서 2주 이상을 보내야 했다. 깜보가 사고가 있기 전에는 피 오즘을 많이 싸서 거실이 온통 피칠 갑을 했는데 아내 혼자 감당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종합병원에서 로칼로 병원을 옮겨야 할 때 잠시 집안을 들렀다. 깜보 걱정이 컸었다.
아파트 문을 열자 마자 깜보를 불렀다. '깜보야!' 평소 깜보는 내 바국 소리를 들으면 바로 컹하고 짖었는데, 워낙 병환이 심한 상태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기적처럼 깜보가 내 목소리를 듣고 엄금엄금 간신히 기어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까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기어오는 모습이다. 이미 식음도 전폐한 상태여서 꼼짝하기도 힘든 상태였는데 그렇게 기어왔다. 그날 밤 깜보가 죽었다. 아마도 깜보 마음 속에는 죽기 전에 나를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이 되었다. 앞서 말한 '절대 감정''을 다시 느꼈다. 깜보와의 마지막 순간은 내가 죽을 때까지 결코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잘 지내니? 깜보야. 벌써 깜보가 우리 곁을 떠나 간지 9년이나 됐어.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깜보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해. 깜보를 사랑해." 사랑의 감정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 않다. 그 이후로 나는 아내의 간청이 있었지만 다시는 개를 키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