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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음식문화 : 한국인들이 모르는 베트남 쌀국수의 유래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2 15:09:10

베트남의 국수가 처음으로 나타난건 11세기 이(李) 왕조 시기 때부터다. 당나라가 906년에 멸망하고 960년 송나라가 건립되기 전 중국 중원이 5대 10국(五代十國)으로 혼란스러워지자 939년 응오 씨는 독립적인 왕조를 세우며 중국 5대 10국 남한의 지배 하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독립을 했어도 1009년 이 왕조가 세워지기 전 까지 70년간 지배세력이 안정적인 세력을 구축하지 못한 채 부침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베트남 현지 쌀국수,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이러한 불안정한 시스템을 정리하고 베트남 최초로 안정적이며, 독립적인 왕조를 세운 인물이 이공온(李公蘊)이다. 이러한 이공온이 왕이 되었지만 공식적으로 내부에서 황제국으로 칭했다. 물론 송나라의 법제를 이어 받아 중국식 관호도 사용했지만 당시 이 왕조가 통치하고 있는 북베트남 지역은 지금처럼 농경 문화가 활달한 곳은 아니었다. 게다가 굶는 백성들이 많았고 전쟁도 빈번했다. 


그래서 쌀알 한 톨이라도, 쭉정이라도 버릴 수 없었기에 그 가루들을 모아 만들어 굶주림을 해결하게 한 것이 바로 베트남 쌀국수의 시작이다. 그리고 방식은 중국 남방, 광동 지방의 국수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한다. 꼬불꼬불한 라면 같은 국수 모형은 최근의 것이고 하얗고 면발이 굵은 국수는 11세기부터 다양한 형태의 면으로 이어왔으며 조리 방법도 간단하여 끼니 때우기 딱 좋은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 식민지 시기 때 프랑스 총독인 폴 두메르는 전체 예산의 25%를 술, 아편, 소금의 전매로 조달했으며 베트남의 토지를 프랑스에서 이주해 오는 기업과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베트남 민중들의 생활 기반을 빼앗았다. 이 결과 코친차이나의 토지 중 총 36만 헥타르가 프랑스인 이주자에게 불하되었다. 여기에 소수의 대지주가 동참하면서 토지 집중은 심화되었고, 전체 국민의 90%에 달했던 농민층의 양극화와 극빈층의 붕괴를 초래하였다. 그 사이에서 베트남인 아사자들이 속출했고 볏짚을 털어 나온 쌀로 국수를 만들어 연명한 사람들이 많았다.


베트남 음식에서 주로 사용되는 면류는 다음과 같다.


1. 퍼 Phở : 넙적한 쌀국수 면발. 주로 북부에서 먹는다.

2. 분 Bún : 일반 국수 면발과 비슷한 면발. 주로 중부에서 먹는다.

3. 후 띠에우 hủ tiếu : 당면과 비슷하게 생긴 면발. 주로 남부에서 먹는다.

4. 미 mỳ : 라면 면발


예를 들어서 Phở bò와 Bún bò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조리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면발 차이에 있다. 똑같은 소고기 국물 쌀국수라 해도 면발을 퍼를 쓰면 퍼 보, 분을 쓰면 분 보, 후 띠에우를 쓰면 후 띠에우 보, 미를 쓰면 미 보가 된다.


베트남 면 요리 이름은 대체로 면발 종류-조리 방법-주요 재료로 구성된다. 국물이 있는 면 요리는 이름에서 조리 방법이 생략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쌀국수의 경우, 나라나 민족에 따라 조리법이 조금씩 다른데, 크게는 볶은 것과 국물을 넣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태국 등지의 길거리 음식으로서의 쌀국수는 그 자리에서 갖은 양념과 부재료를 한데 넣고 바로 볶아 손님에게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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