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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이 표트르 대제를 존경하는 이유 : 목적을 위해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실천하는 지도자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2 16:45:08

1697년 3월 표트르 대제는 250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서구를 향해 출발했다. 표면적으로는 표트르 미하일로브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신분을 속이고 여행한다고 했지만, 2m가 넘는 엄청난 거구인 표트르를 알아보지 못하는 군주나 관리들은 없었다. 표트르의 여행은 발트 해 연안의 국가들, 스웨덴과 프로이센을 거쳐 독일 지역 여러 국가를 지나 네덜란드로 갔다가, 다시 영불해협을 건너 잉글랜드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 강 강가에 위치한 "잔담의 목수", 표트르 대제의 동상,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러시아 상황이 급박한데 서구 여행을 하는 것을 선택한 것에 참으로 기이한 형태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표트르 대제는 선진 문물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250명으로 구성된 사절단을 이끌고 유럽으로 들어가면서 각자의 지역으로 흩어졌다. 그는 러시아 영토를 벗어나 해외를 순방한 최초의 차르였다. 사절단은 리가와 쾨헤니스부르크, 브란덴부르크, 네덜란드, 영국, 오스트리아 등을 방문하면서 각지로 흩어져 그들의 문화를 배웠다. 


표트르 대제는 다른 무엇보다 서구의 기술적 성취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는 수백 명의 선박 건조 전문가를 러시아로 영입하여 채용했고, 무기와 기타 선진 설비들을 구입했다. 프로이센에서는 포병 부사관 행세를 하고 대포 조작 기술을 배웠고, 네덜란드의 조선소에서는 목수 행세를 하고 손수 배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 영국에서는 수학, 기하학을 배우고 해군 체험도 하면서 명예 제독의 지위도 얻었다. 그리니치 천문대도 방문하고 아이작 뉴턴의 연구에 대하여 듣기도 하였다. 시체 해부하는 것까지 참관했다.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표트르 대제의 개혁정책에 대해 반발이 커져 심지어는 차르의 목숨을 노린 반란 기도들이 발각되기도 했다. 이를 진압하고 혐의자들을 처형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하였기 때문에 서유럽으로의 출발이 그만큼 늦어졌다. 이러한 국내 사정을 두고 표트르 대제는 서구 지역의 여행을 강행했던 것이다. 원래 목표로 세웠던 정식적인 국가들 간의 동맹 결성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표트르 대제는 여러 나라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고 많은 유용한 정보를 접하게 된다. 


표트르 대제는 1년 반 동안 해외에 머무는 가운데 5개월을 네덜란드에서 또한 4개월을 잉글랜드에서 보냈다. 표트르 대제가 바다와 함대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터라 무엇보다 해양에 관한 것들을 배우려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조선업에 대해 주로 배우려 했다.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면 바다로 나아가야 하고 무엇보다 강력한 해군이 필수적이다. 표트르 대제는 네덜란드의 조선업 중심지 얀담에서 직접 목수 일을 해보며, 스스로 ‘잔담의 목수’라고 칭했다. 역대 유럽에서도 황제나 국왕 중에 이른바 ‘노가다’로 직접 체험한 경우는 표트르 대제 말고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러시아 국민들이 표트르 대제를 존경하는 이유는 누구처럼 말로만 떠들지 않고 "목적을 위해 서민들처럼 직접 목재를 다루고 함선을 만들었던 실천하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모델인 위인이 있어도 본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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