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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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파 이슬람에서는 생소한 단어인 숨은 이맘(Hidden Imam)의 교의는 이란 시아파의 주축인 열두 이맘파만이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일부 이스마일파(Ismail)는 그들만의 변형을 발전시킨 부분으로 숨은 이맘 신앙에 관해서 열외가 되지만 열두 이맘 파는 무함마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이른바 사마라(Samarra)에서 869년에 태어났다고 하는 제12대 이맘이 제11대 이맘인 아버지 하산 알 아스까리(Hasan al-‘Askari)가 죽은 후 얼마 안 된 873년 4세 때 사라졌다고 믿고 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 국가 별로 견해가 분분한데 이란 학계에서는 12대 이맘이 사마라에 있는 가정의 지하실(Sardib)로 사라졌다고 추정했으며, 또한 이라크 쿠파의 시아파 계열 학계에서는 바그다드 가까이 있는 힐라(Hilla)에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의 시아 계열들은 그가 다시 나타난 일이 몇 번 존재한다고 하지만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자연의 이치를 넘어 인간이 드문 곳에 숨어 살아왔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어느 나라 간의 학계든 공통적인 것은 12번째 이맘이 종말이 올 때 마흐디(Mahdi)로 자기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믿고 있다.

12이맘 시아파에서 나타난 12명의 이맘과 왼쪽 끝 사라진 숨은 이맘,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12번째 이맘이 사라진 이후부터 이맘이 70세 쯤 되던 940년까지 이맘의 의지는 대물림 받은 대리인 4명인 와킬(Wakil)을 통하여 알려졌다. 첫 번째 대리인은 숨은 이맘의 아버지인 하산 알 아스까리의 비서 우스만 이븐 사이드(Uthman ibn Sa‘id)이다. 우스만은 간혹 제11대 이맘을 대신하였고 숨은 이맘의 가족 여자들과 함께 그에 대한 설화들, 특히 12번째 이맘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사례들에 대해 전격 조사한 다음 그에 대한 기록들을 서술하였다. 다른 대리자로는 아부 자파르 무함마드(Abu Ja‘far Muhammad), 아부 알 까심 이븐 루흐(Abu al-Qasim ibn Ruh) 및 아부 알 하산 사말리(Abu al-hasan ‘Ali ibn Muhammad Samarri)가 있다. 대리인들이 이맘과 비밀리에 접촉한 이 시기를 ‘소은폐’(Al-ghaybah al-sughri)라 지칭하고 있다. 이러한 대리인들의 시기를 우칼라(Wukala), 혹은 밀사 시기(Al-sifarah)라고도 한다. 이러한 숨은 이맘을 위하여 와킬은 훔스(Khums)라 불리는 시아파들이 이맘에게 마땅히 치러야 할 특별 종교세,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5분의 1의 세금을 거두었다. 본래 메디나 공동체에서는 이것을 전리품 가운데서 예언자의 몫으로 5분의 1을 받았다. 또한 예언자는 그것을 종교와 국가의 이익에 따라 나눠주는 특권을 누렸다.
수니파 사이에 이 훔스는 예언자가 죽은 뒤 사라졌지만 시아파는 예언자의 후손인 이맘을 위해 그것을 지켜나갔다. 940년에 마지막 와킬(Wakil)이 죽을 때 지금 당면한 문제는 알라에게 달려 있다라고 하면서 이맘과 연락하는 구실을 물려받을 사람을 지명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은폐’(Al-ghaybah al-kubra)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열두 이맘 시아파는 제12대 이맘이 보이지는 않지만 아직 살아 있어서 그 후계자가 없다고 믿고 있다.그런데 제11대 이맘에게 다른 자식이 없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부분이다. 자식으로 인정된 숨은 이맘을 제11대 이맘이 두지 않았다면 사람과 알라 사이에 구원에 필요한 이맘의 중재는 끝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아신앙의 기반이 되고 있는 교리, 200년간 엄격하게 지켜왔던 지상과 신탁에 의해 정해지고 영감을 받은 중재자의 실존인 이맘 지위는 계승 원칙이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훔스(Hums)라는 종교세를 징수할 정당한 근거가 없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은 물라(Mulla)가 훔스를 추종자로부터 받고 있었고『아까이드 알 시아(‘Aqa’id al-Shi‘ah)』로 알려진 시아파의 기록에 따르면 제11대 이맘은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하다 28세에 죽었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41세에 죽었고 아내를 두지 않았다.
이것은 예언자의 순나(Sunnah)에서는 결혼을 종교의 반이라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아주 드문 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관습은 합법적으로 결혼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자식을 두는 것은 예외로 알려져 있다. 제11대 이맘이 아내가 없었기 때문에 제12대 이맘은 제11대 이맘의 첩이나 하녀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믿고 있다. 그 하녀는 나르지스 하툰(Narjis Khatun)이라는 비잔틴 제국 황제의 손녀였다고도 하는데, 그녀는 몸값을 받으려고 구류한 것은 아니고 평민으로써 붙잡혀 노예로 팔렸다. 제10대 이맘은 그 사실을 듣고 한 대리인을 시켜 자기 아들을 위해 신의 섭리를 받아 노예를 샀다고 한다. 나르지스 하툰이 아들을 낳았을 때 제11대 이맘은 아이를 보호하려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는 새들에게 ‘40일마다 아기를 자기에게 데리고 오라’ 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자주 아기를 못보고 아기가 비밀 안식처에 있는 새들에 의하여 항상 여자들이 있는 곳에 있었다는 말이다. 시아파는 숨은 이맘을 ‘현세의 주인’으로써 우주의 정당한 통치자이며, 정신세계의 지축(地軸, Axis mundi)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기대되는 마흐디’(Al-Mahdi al-Muntaiar)로서 세상이 끝날 때 돌아오고 자신의 통치권을 확보하여, 세상에 질서와 정의를 가져온다.
숨은 이맘의 특징적인 점은 신의 적에게 앙갚음을 한다는 것이다. 수니파들 또한 마흐디 사상을 채용하였으나 시아파의 어느 이맘과도 동일인물로 보지는 않는다. 수니파에게 마흐디는 세상이 끝날 때 영적 청결함을 회복한다. 그러나 앙갚음에 대한 측면은 그들의 개념에는 생소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시아파는 숨은 이맘이 사람을 깨닫게 만들고 또 그들을 대신하여 알라에게 중재한다고 믿는다. 그는 사람마다 하는 예배를 듣는다. 특히 신자들이 간청하는 관행은 봉인 편지를 써서 이맘들과 가까운 친척들도 무덤에 두든지, 우물에 던지든지 또는 바닷물에 내던지는 것이다. 구원받는 사람은 죽을 때 숨은 이맘의 환영을 본다는 주장도 있다. 이슬람에서는 예수가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 창세기 이전의 상태에서 살고 있으며 세상이 끝날 때 이 세상에 돌아온다는 설도 있다. 의심할 필요 없이 최후의 심판 날에 이 세상에서 예외적인 기능을 받은 유일한 예언자와 관련된 꾸란의 교리가 있다. 이 교리는 제12대 이맘의 존재와 관련한 시아파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특별한 것으로 어구(語句)의 차용이나 전례를 제공한다. 이를 대표로 하여 무스타알리 이스마일파(Musta‘li Ismmils)와 드루즈파 등의 여러 다른 종파가 영적인 인물을 숨기거나, 은폐하였다.
그러나 제12대 이맘의 교의는 이러한 교의들 중 가장 발달한 것이고, 시아파들은 이 교의가 역사에 기억될 정도로 엄청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무함마드 알 마흐디(Muhammad al-Mahdi)의 본명은 무함마드 이븐 알 하산(Muhammad Al Hasan)이다. 시아파의 제11대 이맘 하산 알 아스카리(Hasan Al Askari)의 장남으로 압바스 왕조 치하의 사마라에서 태어났다. 당시 압바스 왕조에서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시아파에 대한 박해가 극심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하산 알 아스카리는 아들의 존재를 숨겼고 874년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그다드의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시아파 이맘 위의 후계자 문제가 대두되자 가족들은 무함마드 이븐 알 하산이 하산 알 아스카리의 장자임을 밝히게 된다. 그는 5세의 나이에 이맘 위에 오르게 되었으나 즉위 직후 자취를 감추었다. 시아파에서는 그가 신의 뜻으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사마라에 있는 모스크 지하 동굴에 숨은 것이라 주장하였다. 이후 940년까지 나이브(Naib)라고 불리는 4명의 대리인에게만 모습을 보이며, 시아파 공동체를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압바스 왕조의 시아파 박해가 극심해진 940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는 대(大)은폐'로 부른다.
그의 사망일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며, 학자들에 따라 즉위 직후 사라졌을 당시 사망한 것으로 보는 경우는 874년 당시로, 소은폐기(877~940년)가 끝난 시점으로 보는 경우에는 94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열두 이맘파에서는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언젠가는 마흐디(메시아)가 되어 세상에 돌아와 진정한 이슬람교를 실현할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로 제12대 이맘인 그를 무함마드 알 마흐디 또는 무함마드 알 문타자르(Muntajar, 기다려지는 이)로 부른다. 마흐디의 재림이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라는 희망적인 교리는 여러 시대와 지역에서 이슬람 혁명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1881년 이집트의 지배에 저항하여 수단의 무하마드 아마드(Muhammad Amad)가 독립과 자유, 이슬람으로의 회기를 주장하며 마흐디 운동을 일으켜 1898년까지 실제 마흐디 국가를 존속시켰던 사례가 있다. 사예드 알리 무함마드(Sayyed Ali Muhammad)의 본명은 알리 무하마드 시라지(Ali Muhammad Shirazi)이며, 사예드 알리 무함마드로 불리고 있다. 바비즘의 창시자로서 구세주와 연결되는 중개인을 의미하는 바브(Bab, 문(門), 통로)라고도 알려져 있다. 사예드 알리 무함마드는 1819년 시라즈(Shiraz)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삼촌의 보호하에 성장하였고, 10대 후반부터 숙부의 사업을 도왔으나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1841년 시아파 성지 순례 차 이라크를 방문하여 7개월간 머무르며 샤이히 운동(The Shaykhi movement)을 이끌었던 신학자 카짐 라슈티(Kazim Rashti, 1793~1843)의 제자가 되어 교리를 배웠다. 1843년 카짐 라슈티가 사망하면서 머지않아 시아파의 마흐디, 구세주가 재림할 것을 예언하였고, 그의 후계자 물라 후세인(Mulla Husayn, 1813~1849)이 사예드 알리 무함마드를 만나 예언을 전했다. 사예드 알리 무함마드는 카짐 라슈티의 예언과 종교적 영감을 바탕으로 자신을 숨은 이맘, 즉 마흐디와 연결된 바브라고 주장하였다. 물라 후세인을 시작으로 18명의 제자가 그를 따랐고,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수많은 추종자가 생겼다. 바비즘의 주된 교리는 마흐디를 따르는 자는 바브를 통해서만 구원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리가 급진적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시아파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과 부패한 성직자를 비난하고, 사회적 평등과 경제 분야의 장애 요소 제거, 조세 감면 및 형벌 완화 등을 주장하여 짧은 기간에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바비즘 세력이 빠르게 증가하자 이를 막기 위하여 1947년 카자르 정권은 그를 변방으로 보내어 감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