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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작농에서 자작농으로, 철학자의 길
  • 타라고
  • 등록 2026-04-12 18:20:10
소작농에서 자작농으로, 철학자의 길
  •  권순홍 국립군산대·철학
  •  승인 2025.05.1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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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에세이]
                                           이미지 출처_ https://philo101blog.wordpress.com/

철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대학에서 가르친 지 45년이 넘어섰다. 노년에 접어드는 시점에 웬 고백인가 싶지만,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뱉고자 한다. 기나긴 세월 동안 소작을 지어 오면서 근근이 빈곤한 사유를 이어 왔다는 말이다. 지주는 하이데거였다. 하이데거가 지금까지도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 신학, 미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많은 학자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해오는 대지주임은 불문가지이다. 대지주 하이데거의 광활한 땅 한 모퉁이에서 가난한 소작농으로서 그가 제공한 농사법으로 그가 원하는 작물을 재배해 왔다. 현존재의 존재가 작물이라면, 현존재의 실존론적 존재론이 농사법이었다.

내가 지어 온 작물에 불만은 없다. 인간 현존재의 존재,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곧 어떻게 살 것인가는 누구라도 인간으로서 반드시 짚어야 할 삶의 근본 문제, 윤리의 근본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긴 세월 동안 농사법을 개량하거나 바꾸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개량하기는커녕 따라 하기 급급하다 보니, 사유의 수확량도 변변찮고, 그마저도 8할이 대지주 몫이었다. 겨우 입에 풀칠하면서 빈곤한 사유의 삶을 꾸려온 셈이다.

50대 초반 삶의 큰 고비를 넘기면서 소작농 생활을 정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 뜻을 뒤로 미루다가 결행한 것이 『불안과 괴로움: 하이데거, 니체, 그리고 초기불교의 4성제』(도서출판 길, 2022)이다. 이 글은 나에게 소작농 생활의 청산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현존재에게 존재의 원인과 유래 및 그 목적이 어둡다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서 현존재에 대한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존재론은 현존재의 현사실적 존재와 그 ‘어떻게’를 관찰하면서 아예 존재의 원인과 유래 및 목적을 도외시한다. …… 현-존재의 피투성은 …… 현존재의 존재를 존재론적으로 현사실적 존재로 축소한다. 축소된 현존재의 현사실적 존재를 현상학적 현미경으로 세심히 들여다보면서 생물학적 탄생과 생물학적 죽음 사이에서 현존재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해명하는 것이 현존재의 실존론적 존재론이다.”(『불안과 괴로움』, 283쪽) 현존재의 존재라는 작물을 재배하기에는 하이데거의 농사법이 꼼꼼할망정 시야가 좁다는 비판이다. 존재의 원인과 목적을 배제하는 하이데거의 농사법은 좋게 말해서 삶에 대한 철학적 추상이고, 나쁘게 말해서 삶에 대한 존재론적 감손(減損)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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