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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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함마드알리 라자이(Mohammad-Ali Rajai) 대통령과 모함마드자바드 바호나르(Mohammad-Javad Bahonar) 총리가 MEK에 의해 암살된 직후, 이란 정부의 공격에 직면한 MEK는 1982년 당시 이란과 전쟁 중이었던 바트주의 이라크 공화국으로 거점을 옮기게 된다. 바트주의 이라크 공화국은 1968년 7월 17일 아흐마드 하산 알 바크르(Ahmad Hassan al-Bakr)가 쿠데타를 일으켜 이전 정권을 전복하고 세워진 좌파 정권이다. 본래 바트주의 이라크의 본체는 1950년대에 설립된 아랍 사회주의 바트당(Arab Socialist Ba'ath Party)이다. 1958년 7월 14일 혁명을 통해 하심 왕조를 전복시키고 압둘 카림 카심(Abdul Karim Qasim)을 집권시켰다. 그들은 확실한 친소주의자들로 중동 내의 최대 계파를 차지하고 있던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냉전 시대에 친서방 성향 중동 국가들이 체결한 군사 동맹 기구인 중앙 조약 기구(Central Treaty Organization)에 반감을 가지며 탈퇴했고, 소련과 관계 개선을 통해 중동에 소련의 영향력이 신장되도록 노력했다.

2025~2026년 이란 시위, MEK와 쿠르드족 등의 친미 세력들의 획책과 이란 경제의 장기적 침체로 인해 발생했다. 출처 : Debug Lies News
그러나 카심 정권은 친미성향을 가지고 있었기에 바트당과 성향이 맞지 않았고 결국 하산 알 바크르는 사담 후세인과 동맹을 맺고 1963년 2월 라마단 혁명을 성공시키며 카심 정권을 붕괴시켰다. 하산 알 바크르는 거의 20년 가까이 집권하며 독재 정권을 이루었는데 이 때 사담 후세인이 득세하여 그 세력이 강해졌다. 친소와 같은 공산주의 체제보다 미국 및 서방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 했던 후세인으로 인해 하산 알 바크르의 세력은 점차 축소되어 갔고, 미국 CIA가 사담 후세인을 적극 지원했다. 사담 후세인은 CIA의 지원을 등에 업고 안보 기관을 통해 바트당과 국가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했다. 결국 1979년 하산 알 바크르는 "건강상의 이유"로 모든 공직에서 사임하면서 사담 후세인에게 권좌를 이양했고, 3년 뒤인 1982년에 갑자기 사망했는데 하산 알 바크르의 죽음에는 CIA가 관련되어 있다는 설이 매우 유력하다. 이란 측 정치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하산 알 바크르의 죽음에 사담 후세인이 관련되어 있고, 그 배경에는 CIA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하산 알 바크르의 죽음은 원인미상(原因未詳)이다. 그리고 하산 알 바크르의 죽음 직후에 MEK 조직원들이 이란에서 이라크로 넘어 들어왔다. 이들은 이란-이라크 전쟁의 와중에서도 사담 후세인 정권의 지원을 받으면서 이란 배후를 테러 공격하는 등, 이란-이라크 국경인 후제스탄 일대에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이란이 후제스탄 일대에서 MEK 조직원들을 격파함으로써 MEK의 마지막으로 무력을 동원한 이란 정권 쟁탈 시도는 거의 종결되었다. 이후에도 MEK는 이라크의 이란 대사관과 시리아까지 건너가 시리아 내 이란 대사관 등을 테러 공격을 벌였다. 이어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바트당 정권과 협력하면서 이란 호메이니 정권에 부분적 위협으로 자리 잡았으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알리 하메네이가 이란 의회에 MEK를 국가 테러 집단으로 지정하면서 이란의 내외적으로 활동량이 줄어들게 된다. 본래 이라크의 바트주의는 아랍 사회주의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후에도 사회주의는 공식적으로서 어느 정도 유지되기도 했었지만 실상은 아랍 민족주의에 가까웠으며 사담 후세인이 미국 로날드 레이건 정권에 밀착함에 따라 사회주의 성향이 약해지고 오히려 반공주의에 가까워졌다. 그런 상황에서 MEK의 존재는 이라크나 사담 후세인 입장에서는 이념적으로 맞지 않았지만 이란을 교란시키고 이란 내부를 흔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즉, 사담 후세인과 MEK는 이란과 호메이니라는 공동의 적 때문에 이념적으로는 맞지 않더라도 공생할 수밖에 없었던 관계였다. 사담 후세인은 사담 페다인 민병대를 동원해 매춘부를 처벌하고 샤리아에 근거한 여성 권리의 제한과 이슬람주의를 주창했지만 어느 정도의 세속주의를 유지했고, 이슬람 근본주의 및 이슬람 극단주의를 탄압하여 종교적 근본주의를 약화시켰다. 근본주의와 세속주의 경계를 교묘히 타면서 후세인 만의 권력을 강화했던 것이다.
후세인은 사회주의 성향이 있었지만 이라크 공산당을 탄압했는데 이는 걸프전쟁 이후, 세속주의에 기반을 둔 아랍 민족주의로 변화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MEK를 1997년에 테러집단으로 지정하면서 이들을 규탄했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MEK는 더 이상 사담 후세인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이후 미국에 의해 강제로 무장 해제를 당했으며 이 전쟁 직후 수장인 마수드 라자비(Masud Rajavi)가 갑자기 실종되면서 지도 계층이 붕괴되었다. MEK 측 주장에 의하면 마수드 라자비가 이란의 주요 표적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이란에 숨어 지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년이 지나도 그 모습을 본 사람이 없고, 그가 지하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호로지 MEK의 주장 뿐이었기 때문에 대체로 그가 사망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한 상황이다. 그리고 마수드 라자비의 뒤를 이어 공동 지도자로 있던 마리암 라자비(Maryam Rajavi)가 사실상 단독 지도자가 되었다.
이라크-미국 전쟁이 사담 후세인의 체포로 인한 사형을 당하자 MEK는 친미 및 친이스라엘로 돌아섰다. 아이러니한 것은 공산주의를 그토록 혐오했던 미국이 정작 이슬람 사회주의 성향의 MEK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미국이나 마리암 라자비의 지령을 받아 이란 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MEK는 이브라힘 라이시(Ebrahim Raisi)에 의해 철저히 색출되어 제거되어 사라졌다. MEK는 이라크와 시리아, 터키로 옮겨가 활동했다. 그러나 MEK는 이라크에 있으면서도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라크 민주주의 탄압에도 협조하는 등, 온갖 악행을 일삼았다. 2010년 7월 이라크 고등재판소는 라자비를 포함한 MEK 회원 39명에 대해 1991년 이전 이라크 정권에 대한 봉기를 진압하고 이라크 시민들을 학살하는 데 이전 이라크 보안군과 연루되어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있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와 동시에 미국은 2012년에 MEK를 국제 테러 단체의 제재에서 해제하면서 이 단체는 미국에 인정을 받는 국제 단체가 된다.
라자비와 일부 잔당들은 이라크에 남아 있다가 미국 정부의 알선으로 2018년에 알바니아 아샤라프 캠프 3(Camp Ashraf 3)로 이주해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과거의 폭력 투쟁 대신 비폭력 투쟁으로 선회하여 평화적인 방법으로 세속주의 이란을 건국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 온라인 선동, 해킹 등에 집중하고 있다. 더불어 이들의 활약은 2022년 히잡 시위에서의 선동에 빛을 발했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망으로 촉발된 히잡 시위에서 이란 정권 전복을 목표로 여성들의 저항을 지지하며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이후에도 시위 확산 및 선전 활동을 통해 시위대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시위 현장에서 히잡을 벗은 여성들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사진을 불태우는 등의 행동을 지지하고 확산시켰으며 SNS 등을 통해 시위 상황을 전파하고 국제 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며 시위의 조직력과 확산에 기여했다. MEK는 이란 정부의 인터넷 차단에도 불구하고 위성 통신 등을 활용해 현장 정보를 전달하여 전 세계가 조작된 영상과 사진 등을 유포해 하메네이 정권이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이 같은 행위는 2025~2026년에 걸친 이란 시위 때도 마찬가지였다. MEK는 산하 조직인 '저항 부대(Resistance Units)'는 이란 내부에서 시위를 지휘, 조정 및 조직하며 정권의 진압에 맞서 시위대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MEK는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 명단을 업데이트하며 발표했다. 사망자 수가 최대 12,000명에 달한다는 소식 또한 MEK의 업데이트로 인한 사망자 수를 가지고 발표했을 가능성이 높다. 2026년 1월 20일 기준 321명의 실명을 확인하여 공개했으며 스웨덴 예테보리와 캐나다 토론토 등 해외 거주 MEK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이란 내 시위대와 연대해 "독재 타도", "자유 민주 공화국 수립"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MEK가 주축인 이란저항국민회의(NCRI)는 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이란 혁명수비대(IRGC)를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이란 외교관 추방 및 석유 금수 조치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MEK는 이번 시위를 단순한 경제적 항의를 넘어선 정권 교체의 기회로 보고 움직이고 있으며, 내부 저항망을 통해 시위의 동력을 유지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사실상 이정도면 이번 시위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