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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아랍) 세계에 처음으로 알려진 Corea (코리아) 11세기 고려의 이름이 두바이에서부터 시작되다 - 고려 예성강 벽란도의 이슬람 장사꾼들이 두바이로 돌아와 Corea (코리아)를 알리다 -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3 16:58:47

두바이 요새 입장료는 3디람 (한화 약 960원)으로 싸다. 요새 밖의 것들은 대부분 해상 무역 시대 때 사용했던 배들과 모형 대포들, 그리고 허름한 당시 아랍에미리트 현지인들의 주거 공간 뿐이다. 성축 안에 들어가면 상세한 모습이 물론 나타나지만 겉으만 봤을 때는 실망이 사실 컸다. 역시 3디람의 싼 값이니 제 값한다는 느낌이다. 요새 안에는 해상 무역 도시였기 때문에 이곳을 지켜야 할 군대도 있어야 할테고 무기도 있어야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랍에미리트 (UAE) 두바이에 있는 두바이 요새,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이곳은 페르시아 이후로는 오만의 이맘 왕국이 관할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근세 오만인의 흔적이 많다. 오만은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까지도 영토로 두고 있었고 서쪽으로는 동아프리카 해안 지대까지 영토로 가지고 있었던 해상 제국이었다. 아마도 오만군의 모습을 표현하고 그들이 사용한 무기들을 재현해 전시해놓은 듯 싶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가 예전에는 철광석 산지였다.


고대부터 철기 국가가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이곳의 철은 오만에서부터 각지로 교류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두바이 구시가지의 위치와 지형을 보면 크리크 강변까지 각 나라의 선박들이 올라와 교류를 했다. 물론 각종 특산물들이 거래되고 일부는 메카로 가고 일부는 오만을 통해 인도와 동남아시아까지 간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과도 간혹 교류하기도 했고 그 교류 선단들이 고려 시대 때 고려 예성강 벽란도에서 장사하고 이곳으로 돌아와 Corea 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알렸다. 


두바이 구시가지와 성곽 원형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은 성곽을 복원했지만 그 원형보다는 뭔가 새 살을 붙인 느낌이고 구시가지 알 파히디는 옛 느낌보다는 약간 억지 구성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이 좀 그렇다. 이 모습 그대로만 유지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였던 두바이는 11~12세기에 이르러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이슬람 세계를 중심으로 하고 있던 이집트, 시리아 세력들이 서로 충돌하고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군사적 정복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가장 많이 발전하는 것이 이슬람 세계에 후방 보급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안정된 교역과 상업화이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향신료가 중동에 보급되면서 중동 일대에 향신료가 대유행하게 된다. 두바이는 도자기 공예와 차(茶)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두바이의 도자기 공예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지금 이란에서 발견되는 도자기들은 아랍에미리트 각지에서 나타나는 도자기와 생긴 것이 똑같다. 게다가 인도와 실론에서는 홍차가 생산되어 오만과 두바이를 거쳐 터키에 들어가고 터키에서 유럽으로 차 문화가 이동하면서 당시 15세기 이전의 동유럽인들, 특히 헝가리 (마자르 족) 인들이 홍차를 즐기고 아라비카 커피가 유행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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