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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지역보다 현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가진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3 18:10:12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가 만들어진지 20년째 되던 해를 축하하기 위해 2017년에는 아스타나 엑스포가 열렸다. 만들어진지 이제 겨우 29년 되는 아스타나를 어디에 비교할 수 있냐면 바로 우리 세종시다. 내년인 2027년은 아스타나 건설 30주년이 된다. 서울에 있는 정부 기관들을 세종시로 옮겼듯이 카자흐스탄도 기존 수도인 알마아타에서 1997년 아스타나 시를 만들고 그곳으로 모든 정부 기관들을 옮기고 기존 수도 알마아타를 알마티로 고쳤다. 전체적인 기능이나 도시 크기나 역사적으로도 알마티가 훨씬 더 앞서지만 카심 조마르트 토가예프 대통령은 아스타나 엑스포가 성황리에 벌어진 이후, 아스타나가 알마티를 분명 뛰어 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름 바꾼 누르술탄으로 바꿨다가 다시 아스타나로 바꾼 현재, 발전 속도를 보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1998년에 수도로 지정된 이후로 인구는 빠른 속도로 늘어 천도 당시에 30만 명이 채 되지 않던 인구가 20년만에 100만명을 넘었고 현재 약 14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Central Downtown Astana: in center Bayterek tower, 출처 : Wikipedia, Astana


하지만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1996년에 천도를 지시하고 초원 한 가운데에 도시를 건설하도록 지시했으며, 당시 90년대 경제적으로 취약한 카자흐스탄이 자원을 바탕으로 천도하고 건설한 도시라는 평이 있다. 거리 곳곳에 거대한 상징물과 화려한 건물들을 전세계 유명 건축가들을 공모해 건설했지만, 빠른 시기에 겉보기에 치중하여 엄청난 극과 극을 보이고 있다. 아직 소련의 일부였던 1989년 당시에는 고작 마을 몇 개로 운집되어 있는 도시의 인구는 약 54.1%가 러시아인으로, 카자흐인은 17.7%밖에 안 되고 러시아인 및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등이 인구의 대다수였다. 90년대 소련이 붕괴한 이후 러시아인 등 유럽인들이 빠져나간 대신 카자흐인이 급속도로 유입되어 2018년 인구의 78.2%가 카자흐인으로 러시아인은 인구의 13.4%에 불과해졌으며 현재는 약 84%가 카자흐인들이고 러시아인은 인구의 약 12.5%로 줄었다.


필자는 2017년, 아스타나 건설 20주년을 맞이해 아스타나 엑스포를 참관한 바 있다. 이 엑스포에서 많은 나라들의 발전을 확인했고 각 나라를 홍보하는 전시관들을 하루 종일 돌아다보며 그 나라들의 현재와 미래를 엿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미래 계획을 보았다는 것, 앞으로 어떻게 국가들의 정책이 이루질 것인지를 예견이 가능해졌다는 것에서 꽤 의미있는 시간들을 보냈다. 엑스포는 전시회, 박람회, 설명회의 의미를 두루 포괄하는 단어인 Exposition에서 나온 말로, 상품의 매매교환 또는 문화와 정보를 교환하는 장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각국의 산업과 기술을 보여주는 기존 개념을 넘어 저마다의 문화와 예술을 보여주는 글로벌 축제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제 엑스포는 명실공히 기술, 산업, 비즈니스, 문화, 예술이 융합된 총체적인 국가능력과 이미지를 보여주고 교류하는 대표적인 글로벌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엑스포는 전 세계인을 상대로 국가 이미지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대중 외교의 장'이다. 이런 점에서 엑스포는 선진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패스포트'로 불리기도 한다. 엑스포를 치러야 비로소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1993년 대전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러 세계적으로 선진국 등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2012년 여수 엑스포 개최를 통해 해양 선진국으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2010년 7월 1일에 엑스포 개최를 위해 입후보한 도시는 벨기에의 리에주,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 중, 결국 2012년 11월 22일에 중앙아시아 최초 개최이자 이슬람권 국가의 최초 개최라는 큰 의미를 갖고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로 개최가 결정되었다. "에너지와 미래 (Energy of the Future)"이라는 주제로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2017년 6월 10일부터 9월 10일까지 개최되었다. 이후 아스타나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퇴진하면서 이름을 바꾸어 "누르술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필자는 아스타나가 워낙 입에 붙어 몇 번을 실수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은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누르술탄 시민들도 이 도시를 누르술탄이라 부르지 않고 있다. 이 시민들에게서 이 도시는 여전히 아스타나다. 첫 번째로 새로운 이름에 적응이 쉽지 않고 두 번째로 무엇보다 카자흐스탄을 30년 넘게 통치한 대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독재자의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었다. 현 카자흐스탄 대통령인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도 당시만 해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부하 정도에 불과한 인물이었다. 때문에 당시 카자흐스탄은 나자르바예프가 상왕으로 물러난 것 뿐이지 정계를 떠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누르술탄이라는 이름은 시민들이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있다. 도시 이름에야 누르술탄이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Дa 아스타나 (Yes 아스타나), Нe 누르술탄 (No 누르술탄)을 고집하고 있다. 아스타나라는 이름은 카자흐어로 '수도'라는 뜻이다. 2008년 카자흐스탄 의회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누르술탄으로 개칭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스타나 시민들의 눈치를 보고 있던 나자르바예프가 이 제안을 거부하면서 그대로 이름이 아스타나로 남았다. 결국 2019년 3월 20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사임과 함께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한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가 다시 한 번 이를 제안하였고, 의회에서 가결되면서 2019년 3월 23일부터 아스타나는 '누르술탄'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당시 필자는 아스타나의 마지막 시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2018년 10월 나는 아스타나에 있었고 내가 떠난 직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누르술탄이란 이름으로 바꼈다. 아스타나.. 투르크어 형식의 비교언어로 바꾸면 아사달이 맞다. 그러나 카작인들, 투르크계 인종들이 이동하면서 그 어원을 들고 온 것이지 여기가 아사달은 아니다. 재야의 몇몇 인간들이 아스타나 한 번을 안 와보고 여기가 아사달이라고 주장하는데 1997년에 만들어진 이제 고작 22년된 신형 도시이다. 그런 판국에 뭔 여기가 아사달이라는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여기는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 이전만 해도 허허벌판 척박한 사막과 초원이었으며 몇몇 촌락들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동네 개천 크기만한 이쉼 강이 흐르고 있는게 전부였다. 주변에 산이 하나도 없고 주변에는 그저 소련이 몰래 핵실험을 계획했던 풀만 듬성듬성한 사막에 불과했다. 메소포타미아도 과거에는 옥토였다가 사막이 됐다고 하지만 거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라는 거대한 강이 지금도 흐르고 있다. 그러나 여기는 정말 동네 개천 수준에 불과한 이쉼 강이 흐르고 있다. 고대 제국의 수도라면 그만한 기반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런것으로 볼 때 역설적으로 누르술탄으로 바꾼 것은 잘한듯 싶다. 여기가 아사달이고 고조선이라는 이상한 소리가 들어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2021년 카자흐스탄 소요 사태로 인해 러시아로 망명하면서 누르술탄이라는 이름은 다시 아스타나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카자흐스탄의 수도는 "아스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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