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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파키스탄의 소수민족 발루치스탄과 발루치인들 - 중(中)편 : 발루치스탄의 무장단체들과 독립을 위한 치열한 투쟁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3 18:23:30

이란과 파키스탄은 서로 시아파와 수니파라는 종파 갈등으로 인해 그다지 서로 관계가 좋지 않다. 그러나 발루치인들의 독립을 막는 것만큼은 예외다. 이들 두 국가는 서로 협력하여 발루치스탄의 독립 조직들을 색출해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란과 파키스탄의 발루치인들은 무장단체인 발루치해방전선(BLF)과 준달라(Jundallah), 자이쉬-울-아디(Jaish ul-Adl, 정의의 군대) 등의 독립 파벌을 결성하여 이란과 파키스탄을 상대로 테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특히 발루치 무장단체는 BLF와 준달라, 자이쉬-울-아디 외에도 여러 개가 존재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군소조직이라 정확히 얼마나 산재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이란과 파키스탄에서는 발루치스탄 무장 단체들의 테러가 연달아 이어지고 있어 골치 아픈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와 반대로 비무장 및 비폭력 투쟁으로 파키스탄 정부와 이란 정부에 저항하는 발루치족 집단들도 존재한다. 이들 중 대표적인 단체가 삼미 딘 발루치(Sammi Deen Baloch)가 단장으로 활동 중인 발루치 실종자를 위한 목소리(Voice for Baloch Missing Persons), 발루치 약제티 위원회(Baloch Yakjehti Committee)가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폭력적인 무장단체들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 발루치스탄 무장단체들이 연합, 발루치스탄 해방군(BLA·Balochistan Liberation Army)을 창설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나섰다.

Fighters of Marri Baloch tribe Pakistan's Balochistan province in this 2004 photo. Baloch rebels hijacked a train and took hundreds of passengers hostage on March 11, 2025. 출처 : Reuters


이들 BLA는 아프가니스탄 서남부 칸다하르 지역에 본부를 두고 투쟁을 적극 지원했다. BLA의 이념 및 사상으로 볼 때 발루치스탄 민족주의와 분리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세속주의를 추구한다. 그러나 MEK처럼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딱히 거리를 두거나 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은 발루치족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해 관심이 없을 뿐이다. 다만 이들은 발루치족 민족주의가 워낙 강하다보니 외국에 대해서 크게 적대적이다. 특히 파키스탄에 적대적이기에 파키스탄 군을 표적으로 전쟁을 일으키지만 민간인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 납치도 빈번하게 자행해 납치한 자들의 몸값을 받고 풀어주고 그 돈으로 무기를 구입한다. 그러다보니 국제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으며 파키스탄과 중국은 물론 대한민국, 이란, 미국과 영국, EU에서도 테러단체로 등록되었다. 이와 같은 발루치스탄의 독립을 둘러싼 무장단체들과 이란, 파키스탄 정부군과의 발루치스탄 분쟁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본래 발루치스탄 분쟁은 역사적으로 발루치족과 브라후이족의 연합국가인 칼라트 칸국(Kalat Khanate)이 존재한 17~20세기 사이의 역사부터 시작된다. 칼라트 칸국은 지역 내에서 상당한 자치와 통치권을 행사했던 국가였다. 그러나 파키스탄 퀘타 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에 이들은 당시 이란과 인도 무굴 제국 사이에서 매우 애매한 정치적 지위를 갖고 있었다. 이들 칼라트 칸국은 19세기부터 영국의 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고, 번왕국이라는 자치 지역의 형태로 유지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칼라트는 영국의 지원을 받았다. 영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던 이유는 러시아와 영국 사이에서 그레이트 게임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시기였고 이 지역은 영국과 러시아 사이의 완충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영국은 러시아가 인도와 이란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고, 러시아 또한, 영국이 중앙아시아에 세력권을 확대시키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기에 이런 완충적인 요소로 인해 칼라트는 영국과 러시아 모두에게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100여년 후, 인도-파키스탄 전쟁으로 인해 파키스탄이 독립한 직후, 일각에서는 발루치스탄의 독립 의지와 발루치족의 민족주의가 충만했음에도 불구하고 1948년 3월 칼라트 칸국의 군주가 파키스탄으로의 편입을 확정하는 문서에 서명하자 칼라트의 독립을 염원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압둘 카림(Abdul Karim) 왕자 등을 지도자로 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것이 발루치스탄 분쟁의 첫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발루치스탄 내에는 1950년대까지 전통적인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부족 단위에서 여러 독자적인 반란이 있었으며 드라비다 계통의 브라후이(Brahui)족의 반발이 극심했다. 게다가 브라후이족들은 친인도 성향의 사람들이 많았다. 브라후이족들은 대부분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지만 유목 또는 반유목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일정한 주거지들이 없었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 투르크메니스탄의 메르브 인근에까지 생활권역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발루치족과 같이 살아왔기 때문에 발루치족의 일부로 보는 경향도 있지만 상당수 브라후이족 인구가 브라후이어를 발루치어 다음의 제2언어로 사용하거나 역으로 일부 발루치족이 브라후이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을 정도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자와힐랄 네루는 은근히 발루치족 사이의 브라후이족에게 접근하여 이들을 적극 지원하면서 파키스탄 내에 자주 소요사태를 일으키게 했다. 그러자 파키스탄 정부는 1956년 지방 자치권 폐지를 단행했다. 이는 발루치족의 반감을 짓누르고, 이들에 대한 탄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자 발루치족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1960년대에 마리(Mari) 족장은 파키스탄 정부에 반란을 일으켰지만 패배했고, 이란 시스탄 주로 도주했지만 이란 팔레비 왕가가 이들을 체포하여 파키스탄에 넘겼다. 이로 인해 대다수의 발루치족들은 이란에 극심한 반감을 갖게 된다.


1969년 일부 잔존 반란군들은 아프가나스탄 서남부를 왔다갔다 하면서 게릴라 전을 펼쳤고, 야히아 칸(Yahya Khan, 1917~1980) 대통령은 발루치족에게 휴전을 제안한다. 이에 동의한 발루치족의 반란 세력들은 대부분 무장을 해지했고, 야히아 칸은 단일화 정책을 폐지했다. 그러면서 발루치스탄의 자치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의 정치 불안은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특히 1973년에는 발루치족의 테러 집단 소탕을 위해 파키스탄과 이란의 합동 군사 작전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발루치스탄 반군 세력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후 파키스탄에서 4개 주(州) 체제가 확립되면서 반란은 급격히 줄어 들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 다시 발루치스탄 해방군 BLA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분쟁은 전면전과 게릴라 전 일변도에서 대 테러활동 및 일부 게릴라 전으로 변화하게 된다. 2001년에 9.11 테러가 미국에서 발생하고, 알 카에다 조직원들의 소행으로 지목되자, 이 때부터 발루치족 무장 집단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테러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이 지난 9월 13일, 미국은 파키스탄 대통령 페르베즈 무샤라프(Pervez Musharraf, 1943~2023)에게 탈레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과 파키스탄 영공 통과 및 이륙 & 착륙에 대한 백지 위임장을 요청했고, 당일 날 모든 조건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수락되었다. 이는 발루치족에게 큰 행운으로 다가왔다. 


2001년 10월 7일 공중 폭격을 시작으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시작되었다. 이 때 발루치족들은 미국을 도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이란 영내에서 광범위한 첩보 활동을 했다. 이 때 BLA는 미국에게 상당한 양의 군수물자를 지원받았다. 이후, 2005년 초에는 발루치스탄의 수이(Sui)에서 발루치족의 여의사가 파슈툰계 파키스탄인에게 강간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발루치족의 부그티(Bugti) 부족이 대규모 봉기를 일으키면서 여기에 BLA도 합류했다. 그리고 한편 같은 시기에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인 준달라(Jundallah)가 조직되어 이란을 중심으로 파키스탄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다. 준달라의 수장인 압둘 말렉 리기(Abdol Malek Rigi)는 본래가 알 카에다 요원이었고,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의 수하로 있었다. 리기는 빈 라덴을 비롯한 알 카에다와 사이가 좋지 않은 호메이니와 하메네이를 극도로 혐오했다. 게다가 이란-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 이란에 대한 대리전을 펼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집단들과 함께 사담 후세인에 의해 지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란에 대한 적개심은 이라크 입장에서 충분한 이용 가능한 대상이었디. 이후 리기는 이란 인민저항운동(People's Resistance Movement of Iran,  PRMI), 이른바 준달라를 설립했는데 아마 빈 라덴의 지령으로 대 이란에 대한 투쟁을 위해 설립한게 아닌가 싶다. 


이들은 이란의 수니파 무슬림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을 벌인다고 주장한 자들이며  대략 700~2,000명 정도의 비교적 소규모 조직원들을 보유했다. 이들의 수효는 BLA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대체로 알 카에다와 같은 정예의 테러 요원으로 키워졌다. 준달라는 발루치스탄 자치주의 운동의 분파로 여겨진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이란의 수니파 무슬림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이란-파키스탄 영내의 발루치스탄의 독립이었다. 이들은 BLA와 협력을 하고 이란 각 지역 내에서는 홀로 움직였다. 그리고 파키스탄에서도 같은 이름을 가진 준달라가 활동하고 있는데 여기에 다른 집단이 최소 하나 이상 더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2008년 10월 17일 알-아라비야 TV에서 압둘 말렉 리기를 인터뷰 했는데 그는 자신들이 군사, 정치, 이념적으로 훈련을 받은 2,000명 이상의 요원들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산에 거주하는 요원들은 200명을 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준달라는 이란의 디젤유를 약탈하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으로 밀수하는 데 크게 관여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란의 디젤유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유가에 비해  5배 이상 저렴하다. 이 디젤유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마약과 교환되어 이란으로 밀반입 되었고, 여기에서 판 돈으로 테러 활동에 사용할 무기들을 구입했다.


이 무기들로 이란 곳곳에서 준달라는 테러를 자행했다. 이들은 이란 국민 154명을 죽이고 320명을 부상시켰다. 이란 하메네이 신(新) 정부는 2010년 준달라에 대한 체포 작전을 감행했고, 압둘 말렉 미기는 체포되었으며 재판 이후 곧바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준달라는 이란과 미국에 의해 테러 조직으로 지정되어 있고, 다수의 테러, 납치 및 마약밀수 등의 혐의로 불법 범죄 조직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란은 미국과 다른 서방 세력들이 준달라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국경을 넘나드는 발루치스탄 무장 세력들을 제압하기 위해 파키스탄이 이란은 서로 협력을 했지만 파키스탄 영내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이들 조직에 대한 하메네이는 혹시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 아닌지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준달라는 미국, 영국과 같은 외국 정부는 물론, 알 카에다나 탈리반과의 어떤 연계도 부인하고 있으며 미국도 준달라에 대한 어떤 관여나 지원도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ABC 뉴스,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 언론인 세이무어 허쉬(Seymour Hersh) 등은 이란에 대항해 미국이 준달라에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압둘 말렉 리기의 사망 이후, 준달라는 산개하여 활동하고 있거나 BLA에 합류해 함께 움직이고 있다. 


현재 BLA의 대원들은 약 1만 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만 BLA의 게릴라전으로 인해 민간인까지 희생되는 사례가 많아 미국과 유럽에도 테러단체로 지정되어 제재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인도는 카슈미르의 이슬람 무장 단체들을 몰래 지원해 주는 파키스탄에 대한 맞불로 파키스탄의 적인 BLA에 몰래 지원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발루치족들은 브라후이족의 사례도 있고, 인도와 이들은 매우 우호적이며 파키스탄은 인도 정부에게 테러 단체를 지원한다면서 맹비난하고 있지만 인도는 정작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들은 무장 투쟁에서 점차 온라인으로 저항 위치를 바꾸고 있다. 즉, 무장 투쟁 요원은 따로 두고, 온라인 쪽을 담당할 요원들을 새로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서방의 편에 서서 이란과 파키스탄에 대해 매우 악의적인 선전물들을 쏟아 붓는다. 게다가 미국의 스타링크 또한 이들의 악의적인 선동들을 돕고 있다는 것이 2026년 이란 시위 당시 낱낱이 밝혀졌다. 당시 인터넷과 전화가 끊겼는데 스타링크를 통해 접속한 이들이 대부분 MEK, 쿠르드, 모사드 요원, 발루치스탄 인터넷 저항 부대 등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들은 이란과 파키스탄의 시위에 적극 잠입하여 폭동을 부추기거나 직접 테러를 실행하는 것과 동시에 인터넷을 이용하여 매우 악의적인 선전을 하는 등, 온-오프라인에서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란과 파키스탄의 소수민족 발루치스탄과 발루치인들 - 하(下)편

- 이란-파키스탄-발루치스탄의 삼각관계 및 지역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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