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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원(原)민족 크메르족의 동남아시아 이동과 태국의 원(原)민족 타이족과의 관계 - 현재 태국-캄보디아 분쟁에서 민족적, 역사적 갈등의 원인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3 18:32:16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태국 지역에서 크메르족이 거주한 B.C 900년경으로 나타나며 태국의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B.C 500년경 태국 중부 차오프라야(Chao Phraya) 강 유역까지 내려와 거주했고 이때부터 크메르족이 쌀농사를 시작하였다. 그러자 B.C 2세기경에는 인도계 민족이 남하하여 크메르족과 혼혈함으로 인해 부족의 수효가 늘어남에 따라 국가 건국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 때부터 푸난(Funan, 扶南) 왕국이 현재의 캄보디아, 태국 지역 및 말레이(Malay) 반도 북부에 걸쳐 건국되어 상당한 부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크메르 인은 이주하던 당시 고(古) 크메르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중앙 집권을 시도하려 했으나 워낙 많은 부족들이 모여있었고 언어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중앙 집권화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부남 왕국은 여러 부족들로 산개된 형태로 각 부족들끼리 자치권을 허용하며 중앙의 부남 왕에게 세금을 바치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는 동남아시아 최초의 부족 연합국가라 볼 수 있다. 

 Through challenges and change, Khmer people stand strong in unity and spirit. 출처 : Paradise Travel


부남 왕국은 크메르족과 몬족, 타이족 등의 주요 민족을 주 종족으로 두고 있고 그 외에 상당수 많은 부족들을 거느리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부남의 백성은 중앙 집권적인 국가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각 부족을 상기하는 표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들 부족민들은 크메르족을 중심으로 점차 부남 왕국에서 멀어지면서 동남아시아 말레이 반도, 베트남 남부 지역까지 농지로 개척하여 사용했다. 보통은 이들 크메르족이 말레이 반도로 내려가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새로운 부족들의 지배부족이 되었지만 이들을 말레이 반도의 원주민으로 많이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 이들은 말레이 피지배 부족과 융합하여 그 언어도 크메르어와 점점 달라지게 되는데 이를 따이까다이어로 부르며 이들 계통도 따이까다이어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따이까다이어족 중에서 가장 후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을 구성하는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이들 또한 주로 상좌부 불교를 신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남 왕조는 4세기경 진랍 왕국과 분리되었고 진랍 왕국이 인도차이나반도 서쪽에서 오늘날 미얀마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성장한 대신 부남은 점차 몰락하여 라오스 남부의 몬(Mon) 왕국 및 메콩(Mekong) 강 유역의 다른 크메르(Khmer) 족이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소규모 국가로 세력이 줄게 되었다. 이와 같이 부남 왕국이 몰락한 후 태국과 라오스 중부 지역과 서부 지역은 6세기경에 몬족의 불교 문화인 타와라와디(Dvaravati) 문명의 주민들이 영토를 지배하면서 부남 왕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이후 부남의 일부와 메콩강 하류에 분포하고 있던 크메르족은 현 캄보디아를 구성하는 주 민족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민족은 부남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는 부남 정부에 조공을 바치던 하위 부족들이었다. 이러한 메콩 강 하류의 크메르족은 자신들과 유사한 언어를 구사하는 동일 민족인 부남의 후예와 일부 몬족, 타이족을 흡수하면서 앙코르 제국이 세워지는 근간이 되었다.


크메르인이 동남아시아에 정착한 이후, 크메르인들의 역사는 캄보디아의 역사와 병행되고 있다. 퓨족과 몽족과 같은 다른 동남아시아의 민족들처럼 크메르족도 인도의 무역과 학문에 영향을 받았으며, 그들의 종교와 과학, 문화를 수용하고 그들의 언어를 가져왔다. 종교적으로 크메르족은 시바트 베다 라자(Shibat Beda Laza)와 수미산(Sumisan)으로서의 거대한 사원의 개념을 인지하게 되었다. 비록 크메르 제국은 14세기에 멸망하고 없어졌지만 그들이 세운 사원 양식은 현재도 잘 보존되어 있다. 이렇게 현존하는 크메르인들의 다수는 캄보디아에 살고 있으며, 그 중 90%가 크메르인들이다. 또한 태국이나 베트남 출생의 크메르인들도 있다. 약 1백만 명 이상이 있으며, 대부분 태국의 수린(Surin), 부리람(Buriram), 스리사켓(Srisaket)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 베트남의 크메르인인 크메르 크롬은 베트남 정부의 통계로 110만 정도에서 7백만가량으로 예상된다. 캄보디아 내전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크메르인이 학살되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지금은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프랑스 등지에도 살고 있다. 


6세기에 크메르족은 부남의 세력이 약해져 진랍과 공존하고 있을 때이다. 이들 크메르 세력들 중 메콩 강에 자리 잡은 민족들은 다(Da) 강과 푸후(Phu Hu) 산간 지대를 타고 평야 지대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이는 그곳이 이미 교지군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6세기에서 7세기 사이 크메르족은 다시 라오스 북부, 태국, 버마 지역까지 분포되어 나갔다. 크메르족은 동남아시아 대륙 부에 비교적 일찍 도착한 민족으로서, 이미 동남아시아 지역을 정복하고 있던 교지인, 참파인, 부남, 운남인들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북부 외곽 지대를 따라 서쪽 방향으로 1세기 동안 분포되어 나가면서 조심스럽게 정착했던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각 부족 간의 경쟁과 통합 속에 일정 규모 이상의 정치적 권력을 가지는 소규모 공국 무앙(Muang)들이 출현하며, 무앙의 세습적 지배자들을 짜오(Chao)라고 했다. 짜오라는 단어는 난 짜오, 후일 운남 지역에 남조(南詔, Nan Zhao)를 구성하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남조가 크메르족의 나라라는 주장을 받쳐주는 증거로 인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배자 짜오와 피지배층의 관계, 그리고 크메르인들의 이동 및 정착 과정에 대해 데이비드 와이어트(David Wyatt)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한 지도자가 자신의 무앙 남자들을 모아 군사 원정대를 조직한다면, 대체로 그의 아들 중의 하나가 이 원정대를 지휘했다. 군인들은 먼 지역 하나를 정복하고 그곳에 이전 무앙의 가족들을 이주시킨다. 새로 정착한 이들은 “정글을 논으로” 바꿀 것이고 이 젊은 왕자의 지배하에 조직된 공동체 안에서 거주하게 될 것이다."


위와 같이 이동하던 크메르족들이 베트남 북부, 참파는 물론, 버마의 역사 기록에까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 7세기경부터이다. 크메르족들은 대륙 부 동남아시아 북부 지역에 길게 정착을 완료한 것이다. 크메르 민족의 이동 흔적을 찾는 연구는 위와 같이 진행되었고 이는 9세기에 앙코르 제국이 세워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은 현 태국의 북쪽에 도달한 후 남하하여 차오프라야(Chaopraya) 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동족인 부남과 진랍을 공략했다. 이러한 역사는 태국의 기록보다는 옛 크메르 기록들을 중점으로 고증했고 태국 북부에서부터 들어온 메콩 지역의 크메르 족들은 자신들의 점령지에 부락들을 만들어 모든 크메르 족들을 정착하게 하였고 이들이 후일 앙코르 제국의 영토 확장에 큰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크메르인은 북쪽 라오스와 태국으로 이주하던 당시 태국과 캄보디아 지역의 주요 민족들과 함께 움직였다고 이를 연구한 프랑스 학자들이 공통 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태국에서도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다. 크메르 족은 라오스 북부 지역에 대한 완전 정복을 위해 정복 전쟁에 나선 것으로 보여 진다. 당시 크메르인들은 생활 전선에 있으면서 전시에 대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전사 2만여 명을 보유하고 있었고 대다수 창검과 궁술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했다. 게다가 일관적으로 화살촉에 독을 묻혀 사용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보통은 살촉과 창날에 독을 묻혀 사용하는 경우는 정글에 사는 남방민족들이 주로 사용하는데 이는 다른 북방민족들의 상태와는 다르다. 특히 크메르족은 본래 북방민족으로 남방민족과 혼혈하였으며, 이 민족들 중에서 지배계층은 북방족과 남방족의 지도자가 한 번씩 바뀌었다. 그리고 종교는 주로 티베트의 영향을 받아 상좌부 불교를 신봉하고 있다. 


크메르족의 영향으로 인해 타이족이 인도차이나 반도로 남하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는 태국 중부와 북부 지역이 크메르족의 이동과 공격으로 인해 거의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 현재의 태국에 정주하게 되었는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고 있지 않고 있다. 타이족이 들어오기 전 태국에는 반 치앙(Ban Chiang) 문화 때부터 여러 다양한 토착 문화가 존재하여 왔다.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태국은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이웃한 동남아시아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태국 중부로 내려온 타이족을 제외하고 북부 베트남에서는 눙(Nhung)족이라 불리고, 라오스의 라오(Lao)족, 크메르족, 버마의 샨(Shan)족 등이 모두 같은 몽골-티베트 계통의 민족들이다. 중국 남부는 물론 귀주, 사천 등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해 있던 티베트 계통의 민족들은 동남아시아로 이주해 들어오면서 각지로 넓게 분포해 간 것이다. 운남성 대리(大理) 근처로부터 동남 방향으로 거의 직선처럼 흘러 베트남 북부로 들어가는 홍 강(Red River)과 흑 강(Black River) 근처에 분포하던 이들은 5-8세기 동안 서부로 방향을 돌려 이동하여 라오스 북부와 가까운 베트남의 디엔 비엔 푸(Dien Bien Phu) 분지로 이동하면서 메콩 강에서 올라온 크메르족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메콩 강 지역에 자리잡았던 크메르 족은 운남성에서 건너온 라오, 샨, 타이, 기타 크메르 등의 연합 민족들과의 전쟁에서 먼저 자리잡아 파악한 지형과 기후 상태의 유리함을 이용하여 그들이 지나온 영역을 대부분 점거하기 시작했다. 이들 민족들도 다수의 씨족들을 거느린 부족들이었지만 운남성 원주민과의 직접적 민족 연계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들의 이동은 중국 수나라, 당나라의 침공과 더불어 이루어졌고 그들이 운남성에서의 정치적 근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밀린 것으로 판단된다. 라오, 샨, 일부 크메르족은 산간 민족이었던 데 반해 메콩 강의 크메르인들은 평지와 정글에서 오랜 기간동안 숙련된 민족으로 사실상 전쟁은 메콩 크메르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들은 라오족을 공격하여 복속시키고 오늘날의 비엔티안을 비롯한 라오스 북부에 정착을 허용하고 노예로 부렸다. 다른 크메르 일부 집단은 메콩 크메르에게 패배하여 현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 치앙라이 일대로 밀려나 정착했고 버마의 남부인 이라와디 강 하류까지 밀려는 샨 부족은 후일 버마족에 흡수되었지만 미얀마 중북부 지방을 장악하고 무사히 정착에 성공했다. 


결국 운남성에서 이동한 부족들은 메콩 강과 라오스에 정착하지 못한 채 태국과 미얀마에 정착하고 오직 라오족 만이 메콩강을 따라 내려와 정착하면서 메콩 크메르 정치 세력들에게 점차 통합되어 가면서 피지배 계급으로 영위하게 된 것이다. 한편 남쪽 부남이 해상 교역을 바탕으로 대제국을 형성했던 것과는 달리 메콩 크메르인들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민족이며, 내륙에서의 동서 교역을 통해서도 부를 축적하게 된다. 특히 메콩과 연결되는 톤레삽(Tonle Sap) 호 주변의 풍부한 농업 생산력과 톤레삽 호수의 수산 자원은 인구의 안정된 부양 및 지속적인 증가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메콩 크메르가 더욱 강력해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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