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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와 종교주의의 경계선 이념, 이슬람주의(Islamism)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3 21:03:08

이슬람주의는 이슬람 개혁운동에서 발전한 이슬람 모더니즘이 레닌주의와 기독교 원리주의 선교 등의 영향으로 급진화 및 극단주의화 된 사상으로, 수니파와 시아파를 막론하고 현대 이슬람 근본주의의 근간이 되고 있다. 현대 이슬람 극단주의가 아라비아 전반으로 퍼진 직접적인 계기는 터키의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의 세속주의 이슬람 개혁 특히 칼리프 제도를 폐지하는 충격을 받은 이슬람 개혁가들이 파편화, 극단화된 것에 있다. 당시 충격을 받은 이슬람 모더니즘 사상가들 상당수가 근본주의 신학으로 기울고 이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무슬림 형제단으로 이어졌다. 아라비아 사회주의와 아라비아 민족주의 성향의 시리아 정부와 이집트 제2대 대통령 나세르는 이들의 극단적인 행보에 위기를 느껴 이 단체 및 일원인 마르완 하디드(Marwan Hadid)를 탄압하고 사이드 쿠틉을 처형했는데, 국외로 추방된 이들이 주변 아라비아 국가로 퍼지면서 아라비아~이슬람권 전반에 이슬람 극단주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하나피 파가 널리 분파되어 있었으나, 파키스탄에서는 이슬람주의 어용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우민화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기에 아불 알라 마우두디(Abul Allah Maududi)의 반지성주의적인 이슬람 근본주의가 섞여 아프가니스탄으로 흘러 들어 가면서 탈레반의 사상적 기원이 되었다. 

During the Arbaeen Walk, a significant pilgrimage for Shia Muslims, when approximately 20 million participants walk from Najaf to Karbala (Iraq) in memory of Imam Hussain. 출처 : أخٌ‌في‌الله on Unsplash


이슬람주의 세력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동안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그리고 미국의 지원하에 세력을 성장시켰다. 냉전 당시 반공주의가 팽배했던 미국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을 지원했는데, 알카에다가 9.11 테러를 일으키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벌어지는 등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배신을 당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란에서는 알리 샤리아티(Ali Shariati)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슬람 시아파의 12이맘파 신학을 결합하여 이슬람이 지하 투쟁의 종교라고 주장함과 동시에 서구식 민주주의를 부정하면서 시아파식 이슬람주의를 확립하였고, 이것이 이란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세속주의 정책으로 이란의 현대화를 이끌던 팔레비 왕조가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인해 몰락하고 호메이니에 의해 시아파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 사건은 이슬람권 전체에 종파를 가리지 않는 수니-시아파 간의 극단 종파주의를 일으킴과 동시에 걸프 아라비아 왕정국가들이 제2의 이란 혁명을 막기 위해 보수 율법 학자들과 타협하는 정책을 취하면서 근본주의의 유행을 이끄는 역사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오마르 알 바시르(Omar Al-Bashir) 치하의 수단은 19세기 마흐디 운동을 계승한다는 명목으로 남수단을 핍박했으며, 소말리아 역시 시아드 바레(Siad Barre) 치하의 이슬람 사회주의 정권이 파탄으로 끝나면서 급속히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화가 진행되었다. 


1990년대 초에는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국가가 되었으며 알제리 내전의 사례처럼 이슬람주의자들이 항상 승리를 거두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벌인 항공기 납치 사건으로 에펠탑이 파괴될 뻔한 일도 있었던 만큼 국제사회에서는 이들의 존재가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21세기에는 아랍의 봄으로 인해 독재 정권이 해체된 후 정치권력의 공백을 틈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이 확장하려는 양상을 보였다. 이로 인해, 테러리스트 단체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가 중동을 초토화 시키는가 하면, 아랍의 봄 과정에서 생긴 여러 내전으로 무슬림 난민들이 유럽으로 피난을 가면서 아라비아권 외부로도 이슬람 근본주의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에 있다. 무함마드 초기의 메카 계시에는 타 종교와 공존하는 이슬람 세계를 구상하여 비교적 관용적인 구절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획이 좌절된 이후로는 무함마드의 사상이 정복 전쟁 위주로 과격하게 변질되어 이후의 메디나 계시에는 타 종교인들에게 가혹한 서술이 증가한다. 이로 인해 무함마드의 계시를 기록한 <꾸란> 역시 평시 상황과 전시 상황이 서로 다른 말들이 상당수 기술되었다. 본래 평시 상황의 해석과 전시 상황의 해석은 각각의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하고 이것을 Naskh (نسخ : 대체)라 지칭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이슬람이 전 세계를 정복할 때까지 전시 상황이라 자신들의 기준대로 규정하고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행위를 <꾸란>이나 <하디스>에서 나온 해석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초창기 그대로의 이슬람을 실천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들이 행하는 자살 폭탄 테러는 스리랑카 내전 당시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에게서 넘어온 관습이고, 지하드나 예배를 과시하거나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은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슬람주의는 사후 세계를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기독교와는 달리 <꾸란> 및 <하디스>에 나타난 대로 무함마드가 지상에 건설한 공동체 사회인 움마를 이상향이라 생각하며, 이 공동체 사회는 이슬람 제국으로 실존했던 적이 있다. 따라서 터키나 인도네시아 등의 몇몇 세속 국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이슬람국가들은 개발도상국이 가지고 있는 빈곤 및 저발전 문제에 대해 이슬람교에 의지하여 현실 세계에서 이슬람 공동체 사회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슬람 국가들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저발전 상태에 머물러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등 산유국의 높은 명목 GDP는 석유 수출에 기인한 것으로, 자원 산업은 그 특성상 일자리 증가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정작 사회 발전은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일부 학자들은 이슬람 정부나 테러로 인해 생겨난 많은 군벌들이 치안이 불안하고 민주적인 정치체제가 전무한 상황에서 분열된 세력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무슬림들의 신앙심을 이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교는 우민화 정책에 이용되어 국가나 반란의 세력을 결집시키거나, 개혁을 할 명분을 제공해 주었으며,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여 정치권력의 비호를 얻음으로써 세력을 안정화시키고 확장시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온건한 이슬람은 정치권력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밀려났다. 결국 대부분의 산유국을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 중 선진국으로 분류된 나라가 단 한 나라도 없으며, 인권 의식도 상당히 낮다. 국가가 사회의 저발전을 바꿔야 한다는 사상이 소련에서 시작된 공산주의인데, 이슬람은 공산주의를 미국보다도 더 혐오했다. 종교적인 이유로는 이들이 무신론자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본질은 사유재산의 관리 문제로 종교와 야합한 토후들의 지배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했기 때문이다. 7세기 <꾸란>에서는 많은 재산과 권력을 가졌으면 이를 가족이나 친지들과 나누고 베풀라고 했는데,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지배자의 자세였을지 몰라도 21세기 국가가 등장한 현 시점에는 본질적으로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행하는 시혜일 뿐이다. 이는 자기 씨족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현대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예시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중동 대부분은 유목민들이 대다수로 국가라는 개념도 없고, 한 지역에 정주한다는 개념도 없었다. 이 때문에 이슬람을 믿는 유목민 집단 중 한 지역에 정주라는 것이 가능했던 집단은 일부 생활이 가능한 오아시스 지대를 점거한 몇몇 토후들 밖에 없었다. 


대다수의 유목민들의 재산은 말 그대로 사람과 식량으로 쓸 수 있는 가축 두수가 전부였고, 부동산을 가질 수 없었다. 토후들 역시 부동산이란 한 지역에 오래 두며 순례객을 받아야 할 이슬람 모스크가 전부였으며,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자연스럽게 종교와 권력이 결탁했다. 애초에 이슬람이 정교 분리가 안 되어 있는 종교 체계이기도 하다. 현재 이슬람 절대왕정이 오일머니로 독점한 부를 유지하는 방법 또한 그와 같다. 현재 중동의 모든 이슬람 절대왕정은 종파 지도자와 토후의 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이해가 일치해 종교적으로 이슬람을 유지하면서 아버지가 가족의 부를 독점하면서 아버지가 가족을 돌보도록 시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정신적 근거를 신학자들이 전파하고, 토후들은 오일머니를 독점해 부자가 된 대신 얼마 되지 않은 국민들에게 마구 돈을 퍼주면서 자기가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이슬람의 방식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국가 개념은 중동 왕정에게는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며, 국가가 국민에게 지역의 모든 부를 분배하는 공산주의는 이슬람의 지배를 뿌리부터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슬람이 바뀌지 않는 한 중동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진다. 국민의 투표로 뽑힌 이란의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를 미국이 CIA를 동원해 제압한 것을 다른 왕정들이 보고만 있었던 것도, 아라비아 민족주의를 탄압하기 위해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를 중동 왕정이 그렇게 혐오한 이유도 모사데크나 나세르가 본질적으로는 국가주의자이며,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오일머니를 왕가에서 탈취하여 국민이 세운 정부가 독점하고 수익을 국민에게 분배하는 것을 중동 내에서 실현하고, 팔레비 왕가가 실각한 이후에도 신정정치일지 몰라도 원칙적으로 공화제를 내세우면서 오일머니를 국가가 공유하는 이란을 중동 산유국들이 혐오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소수지만 중동에도 오일머니를 왕족들이 독점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세력은 있으니까 이것이 하나의 기폭제가 되어 왕정 폐지 운동이 일어나면 그들의 존립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는 넓은 의미의 가부장 제도이다 보니 가난할수록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가난하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내세울 것이 과거의 질서에 따른 남성우월주의 밖에 없는데 그걸 정당화 해주는 유일한 사상이 이슬람 근본주의 뿐이니. 일종의 심각한 현실 도피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시기에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전 세계에 있었던 특성이나, 기독교가 중심이었던 서구권에서는 근대화의 영향으로 민족국가의 개념이 출현해 국가가 종교를 대신해 국민을 관리하고 유지하며, 이외 문화권에서는 서구 열강들의 영향으로 서구화가 진행되어 세속주의로 변모하며 종교계의 권위가 약화 되었다. 오히려 가장 근본주의적인 걸프 지역 아라비아 왕정 국가들이 석유 수출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으며, 이들이 현재 무슬림 사회의 여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세계의 혼란 원인을 인간의 도덕적 타락으로 인한 신의 분노라고 해석하여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고 샤리아를 도입하면 이를 거의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실제로 나이지리아 북부에서는 샤리아를 시행하여 에이즈를 막자는 선전을 했으며, 영국 런던에서는 무슬림 난민들이 이슬람 교리에 따라 주류 판매를 금지하자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사회의 다원성을 무시하고 탄압한 채 이슬람의 도덕적 우월성을 갖고 사회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나오는 것처럼 보이고 있지만,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이슬람 국가에 남아 있는 인권 탄압이나 부정부패 등의 사회 혼란은 국가의 회복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다른 일례로 독재 정권을 붕괴시키고 무슬림 형제단이 이집트 국민들 기대 속에서 정권을 장악했으나 이슬람 근본주의였던 무슬림 형제단은 모든 요직을 이슬람 성직자가 독점하고 해외기업 추방과 기독교와 세속주의 탄압에만 중점을 두었다. 이는 이집트 시민 혁명의 원인이 되었던 경제난과 식량 부족 문제를 더욱 악화키면서 집권한 지 1년 만에 이집트  국민들의 지지와 서구권의 묵인한 군부 쿠데타로 몰락하게 된다. 이는 냉혹해야 할  경제와 식량 문제를 외면하고 본인들만의 이상향을 만들고자 했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말로라 할 수 있겠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짙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는 오일머니로 인해 자원이 풍족하여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경쟁할 필요가 없다. 이는 원인관계를 착각하기 쉬운데, 이들은 앞서 언급한 제국주의자들과 극단적인 이슬람 신학자들이 군벌이 되어 서로 살해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석유라는 광물 자원이 생기면서 중동의 영토를 지배하게 된 토후들이다. 이들이 왕이라는 근거는 오직 각자의 내전에서 승리한 것 뿐이다.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칼리프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멸망으로 인해 사라진 지 오래이고, 종교적 권위를 가진 신학자는 토후들이 원하는 교리만 반복했으며, 경전을 해석하고 설명해 줄 능력은 없는 원리주의자들만 남았다. 그들에게 지금의 오일머니 독점의 정당성을 받기 위해 중동은 철저하게 가부장적이고 원리주의적이며 가장이 모든 부를 독점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들은 노동력을 모두 고학력 외국인으로 도입해도 대다수의 인구가 북유럽 수준의 복지를 누리며 중산층의 삶을 누리고 있다. 이들이 자칫 오일머니 독점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지 못하도록 돈과 권위로 막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자국민들에게 포퓰리즘으로 투자하고도 돈이 남기 때문에 가진 돈으로 외국에서 오는 이슬람 학자들에게 와하비즘을 주입하고 기부금 형식으로 근본주의 단체나 정권을 육성하는데 힘쓸  수 있었다. 


종교 연구가 패트릭 수크데오(Patrick Sookhdeo)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한 담론에 의하면, 20년 동안 1,0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와하브파의 주도로 모스크 건설, 종교인 양성, 종교 매체 발행에 쓰여 이슬람의 극단화에 기여 했다. 이들의 오일머니는 매우 강력하여 타국의 무슬림 협의체가 이슬람 개혁을 위해 벌이는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주장한다. 근본주의적 성향을 가진 무슬림들은 이교도가 무슬림에게 베푸는 배려, 관용 등은 당연하다고 간주한다. 이슬람주의 역사 교육관에 따라 중세~근세 중동과 동유럽의 기독교 세력이 무슬림들에게 핍박받아 노예나 인신매매로 팔려나간 것을 "해방"이라 왜곡하여 서술하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또한 대다수의 이슬람 국가들이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로 인한 피해로 인해 서구에 대한 피해의식과 반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영국이 맥마흔 선언으로 인해 아라비아 국가 건설을 약속하고는 밸푸어 선언을 통해 유태교 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이중 계약을 하는 이중성을 보여주었기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의 토대가 생성되었다. 더불어 냉전 당시 아라비아를 지원했던 소련에 대항하여 미국이 아라비아 입장에서는 이교도 국가인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아라비아의 반서구 감정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사례가 오사마 빈 라덴이 걸프 전쟁으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을 요청하여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게 된 것을 '이교도의 성지 침범'으로 해석하여 알 카에다를 조직한 것에 있다. 9.11 테러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나타나는데, 1982년 레바논 내전 당시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건물이 파괴되자,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에 대한 보복으로 발생하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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