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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측 발루치스탄과 중국의 이해관계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4 16:04:46

중국이 이란을 지원하려면 13년 전이나 현재나, 선결해야 할 곳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란-파키스탄 국경에 걸쳐 있는 발루치스탄 지역이다. 발루치스탄 지역이 이란과 파키스탄, 모두에개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풍부한 천연 자원이다. 우라늄과 구리의 매장량은 중동 지역에서 이라크 북부 & 시리아 북동부 지역 다음으로 두 번째로 풍부하다. 그리고 파키스탄 전체가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1/3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천연가스를 아프가니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및 이란 북동부 지역의 호라산 일대도 나눠 쓰고 있다는 것이다. 천연가스는 이들 지역들이 소비하는 에너지원의 50%이상 차지한다. 현재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천연가스는 2006년 현재 28 Trillion Cubic Feet (TCF)에 이르고 있는데, 이 가운데 19 TCF가 발루치스탄에 묻혀 있는 실정이다. 

Relatives of missing Baloch community people take part in a demonstration demanding greater civil rights for citizens, in Quetta, Pakistan, on Aug. 18, 2024.


이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전체 천연가스 매장량의 68%의 수치다. 두 번째는 이란과 인도를 인접국으로 두고 아라비아해를 바라보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이란과 인도를 인접국으로 두고 있는 관계로 이란-파키스탄-인도를 이어주는 가스 파이프 라인을 건설하자고 논의된 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중국이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을 인수하였기 때문에 인도양에서 세력을 확대하려는 계획으로 인해 이 논의는 지지부진 해졌다. 인도양 북부의 아라비아해에 위치한 과다르 항구는 중동 산유국들의 주요 석유 수출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과 불과 400㎞ 거리에 있는 전략적인 요충지로 여겨진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세계 석유의 약 20%가 운송되고 있는 곳이고, 이곳은 배를 기항할 수 있는 기항지로써 역할도 가능한 곳이다. 


중국은 과다르 항구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카슈가르를 이어주는 철도와 송유관 건설까지 함께 추진할 예정에 있다. 파키스탄 정부 또한 주변 국가들과 연결되는 각종 인프라들을 건설할 예정이고, LNG 터미널이나 제철소, 자동차 공장, 시멘트 공장, 석유 정제소도 건설을 완료하며 또 다른 중국의 인도양 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애 있다. 이처럼 인프라 시설을 갖추게 되면 과다르 항구는 아라비아해와 오만해, 걸프만, 호르무즈 해협 등 인도양 전체를 장악할 수 있게 된다. 이와 더불어 각종 물류들 및 에너지 교환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어 파키스탄과 이란, 그 외의 아랍 국가들과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을 더욱 부상시켜 줄 것이다. 과다르는 항구 건설이 시작될 때, 겨우 5,000명에 불과한 소규모 어촌이었으나 2013년에는 인구가 130,000명, 현재는 약 220,000명으로 늘어나 있는 상태다. 인도는 중국의 이와 같은 행위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인도는 이란과 막역한 친분이 있다. 


이란이 차바하르(Chabahar) 항구를 건설하며 중국의 과다르 항 견제에 나서고 있는데 인도는 이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이란의 차바하르 항구가 과다르 항을 누르고, 에너지 물류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위해서 과다르 항구를 부상시키려는 중국과 파키스탄의 계획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게다가 이란-파키스탄-중국의 이해관계가 모두 얽혀 있는 발루치스탄 지역은 심각한 분리주의 운동이 존재한다. 필자는 이 분리주의 운동에 대해 상(上), 중(中), 하(下)편으로 나누어 연재한 적 있다. 현재 파키스탄이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아프가니스탄 지역과 겹쳐 있는 파슈툰족의 펀자브 지역이나 인도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잠무-카슈미르 지역도 아난 이 발루치스탄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이다. 


대한민국에서도 2012년 11월에 발루치스탄 민족 독립운동을 하던 자가 서울 출입국 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 인정 불허처분 취소 소송이 있었다. 이 때 원고를 승소 판결하여 발루치족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첫 판결이 있었을 정도로 이란-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분리주의에 대한 탄압이 매우 심각했다. 현재 발루치스탄 지역은 파키스탄 영토의 1/3이 넘고, 이는 이란의 시스탄-발루체스탄 주(州)의 3.5배에 달한다. 이러한 발루치스탄 분리주의 운동이 실현될 경우 현재 파키스탄 면적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파키스탄 남동쪽에서 발루치스탄 종족은 약 600만 명뿐이지만, 발루치스탄 종족들은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걸쳐 상존하고 있으며, 이 지역이 모두 통합되고 파키스탄 남서쪽의 2,300만 인구의 신드족까지 합쳐 독립을 하게 되면 발루치스탄은 매우 큰 국가가 된다. 그러나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이란과 아프가니스탄도 발루치스탄의 분리 독립을 원하지 않고 있기에 파키스탄과 이란은 분리주의 운동을 탄압하는데 있어 아주 긴밀하게 공조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발루치족들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파키스탄에서 끈질기게 독립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1947년 파키스탄으로부터 합병을 통보 받게 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칼라트(Kalat)의 칸이 파키스탄에 합병될 것을 거부하며 저항하게 되었고 당시 파키스탄의 국부(國父)인 무함마드 진나가 1948년 군대를 파견해 강제로 굴복시켜 합병해버렸다. 이어 1955년 서부 파키스탄을 만들게 되면서 행정구역에서도 지우게 된다. 1960년대에 발루치족들은 지역의 자율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파키스탄 중앙정부에 대해 저항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1년 동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가 독립을 한 것에 고무되어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도와준 인도의 인드라 간디를 높이 칭송하면서 저항을 했으나, 1973년 파키스탄 정부의 토벌로 인해 무참하게 대량 학살을 당했다. 이후부터 발루치족들은 파키스탄 정부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가며 지금도 계속 독립을 억제 받고 있다. 초기에 발루치족 민족주의자들은 독립이 아니라 자치를 원했으나 1973~1977년 사이에 있었던 극단적인 대립 속에 완전한 독립으로 그 목적이 바뀌어 갔다. 


이 시기에 80,000명의 파키스탄 정부군과 55,000명의 발루치스탄 반란군들이 대치하기도 했고 게릴라를 격퇴시키기 위해서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도 무차별 폭격을 했었다. 파키스탄에서 이 소탕 기간 동안 목표를 자치에서 독립으로 바꾼 발루치 민족주의자들이 등장을 하고, 이들 중 대표적인 단체가 발루치스탄 해방군(Baloch Liberation Army, BLA)이다. 이란은 이 시기에 파키스탄 정부의 발루치족 분리주의자들을 소탕하는데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이는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민족주의 운동이 이란 내의 120만 명에 달하는 발루치족들에게로 번져 오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아파가 주류인 이란에서 발루치족들은 소수의 수니파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란의 소수 수니파인 발루치족들과 파키스탄의 차별 받은 발루치족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국가가 아닌 발루치족만의 국가인 발루치스탄 건국을 함께 목표로 하게 되었다. 그동안 파키스탄 군대의 잔혹한 진압에 맞서 발루치족들만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발루치스탄 민족주의자들은 파키스탄 정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천연가스 시설들을 공격하여 파괴하는 것으로 맞대응해왔다.


발루치스탄 천연가스 생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수이(Sui) 가스 지대인데 해당 지역은 부그티(Bugti) 부족이 통치하는 지역으로 이들은 발루치스탄 내에서 전통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는 부족이다. 발루치스탄 지역은 파키스탄 탈레반이 통제하는 스와트 계곡(Swat valley)만큼이나 전근대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발루치족 부족장들을 중심으로 결속력이 강한데 이는 파키스탄 정부가 오히려 이들을 압제함으로 인해 자처한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 정부는 발루치스탄 지역에 교통과 통신 인프라를 거의 건설하지 않아 이들을 오랜 고립 속에 두었기 때문에 전근대적 혈연적인 종족성을 유지하게 만든 것이다. 이 부그티 지역의 수이(Sui) 남부 가스 회사가 관장해야 하는 파이프라인 네트워크만 해도 신드(Sindh) 주와 발루치스탄(Balochis tan) 주에 걸쳐 무려 27,542km에 이르기 때문에 발루치스탄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에 속수무책(束手無策)일 수밖애 없었다. 이들 민족주의자들 중 발루치스탄 해방군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데 이 그룹은 파키스탄과 오랫동안 동맹 관계였던 미국과 영국이 공히 테러리스트 그룹으로 지정했다. 


이에 발루치스탄 해방군은 파키스탄 정부만이 아니라 발루치스탄 지역에 다양한 투자를 하는 중국을 겨냥한 테러도 진행하고 있어 사실 이들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 있다. 우선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 속에서 발루치스탄을 보고 다음에는 중국과의 관계도 같이 보아야 한다. 2007년 8월 발루치 부족 지도자인 아크바르 부티(Akbar Bugti)가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정부의 공격으로 폭사하면서 발루치스탄에 분쟁이 격화되었다. 당시 파키스탄은 9.11 사건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 아프가니스탄의 배후를 치면서 미국을 돕는 굳건한 동맹 부족들이었다. 그 때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군사 원조는 9억 달러에 달하고 있었고 다국간 원조를 포함한 전체 경제 원조액은 36억 달러에 달하고 있었다. 게다가 여기에 미국의 주도로 이루어진 파키스탄의 부채 감면액은 135억 달러였다. 당시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F-16 전투기와 코브라 헬기로 발루치스탄 지역에 폭격을 퍼부었다. 유럽 여러 국가들은 이 사건을 파키스탄 내 소수 민족 문제로만 보고 판단했다. 


당시 집단 서방은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Pervez Musharraf)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했지만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를 파키스탄 국내 문제라고 간주해 버렸다. 그러나 지금 미국 내에서는 발루치스탄 독립운동을 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파키스탄과 중국이 준동맹으로 중동, 중앙아시아, 남아시아에서 일대일로로 세력을 공고히 하고 있는데 이는 곧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 인도 아시아 대륙을 포함한 남아시아는 이렇게 중동, 중앙아시아, 이란과 함께 보아야 한다. 남아시아를 바라보는데 있어 인도를 중심으로 보는 시각, 특히 인도라는 남아시아의 맹주가 있고 그 주변 국가들에 인도와 비교하자면 인도에 비해 약소국 무슬림 국가들인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가 존재하고 있다는 시각은 국제 정세 속에서 남아시아를 보는 것에 한계가 있다. 게다가 파키스탄의 가장 큰 문제는 발루치스탄 문제인 것을 모르는 것이 하나의 일례라 할 수 있다. 


파키스탄에서 가장 심각한 국제 관계 문제를 잠무-카슈미르 문제로만 알고 있는 것도 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아시아를 보는 시각과 그로 인한 한계에서 나온 것이다. 이란, 중앙아시아 국가들, 아프가니스탄, 남아시아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이슬람 국가들과 러시아, 중국을 함께 엮어서 보아야 한다. 이는 인도를 포위하고 있는 무슬림 국가들은 중국, 이란과 긴밀하게 협력해 오면서 인도가 남아시아의 맹주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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