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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세워진 배경과 에르미따쉬 박물관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4 16:14:57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는 핀란드 만 주위에 8~9세기부터 노르만 인들이 들어와 정착했다. 이 지역은 노브고로드 대공국에 귀속되었으나 습지에 대다수의 땅이 늪지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았으며 버려진 땅이었다. 표트르 대제는 자신의 개혁 정치를 상징하기 위해 1703년부터 네바 강변에 서유럽식의 새 도시를 건립하기 시작했다. 네바라는 단어는 핀란드어로 “늪”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이미 나타난 것과 같이, 네바 강변의 땅은 매우 거칠고 생활하는데 매우 불편했다. 아무도 이곳에 사람이 거주지를 세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표트르 대제는 그와 같은 통념에 대담하게 도전해 큰 규모의 토목 공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와 같은 건설 사업에는 엄청난 노동력이 동원되었다. 주로 해외로부터 불러들인 건축기술자들의 지휘 아래 러시아 전국에서 목수들이 동원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석공들을 초청해왔다. 일반 노동자들은 대북방전쟁에서 획득한 스웨덴 포로들이 열악한 장비를 가지고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네바 강변은 매우 춥고 습하며 전염병이 나도는 열악한 상황이었기에 거의 하루 종일 일해야 했다. 1712년에 가서야 새 도시의 건설은 대체로 마무리 되었는데, 150,000명 정도의 스웨덴 군 포로들이 작업 도중에 사망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 現 에르미따쉬 박물관,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이와 같은 대북방전쟁에서 패전한 스웨덴 군 포로들의 엄청난 희생으로 인해 새로운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스웨덴 포로들의 뼈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별칭을 얻기에 이른다. 1703년 5월 27일, 러시아 네바 강 하구 삼각지에 광활한 뻘과 늪에 인부들이 거대한 나무와 석조 기둥을 박았다. 도시를 세우기 위해 기반 다지기에 들어간 것이다. 당초 목적은 군사 도시 건설하여 최전방에 요새를 세워 스웨덴을 견제하려는 차르의 생각에 반대가 많았다. 불과 한 달 전에 획득한 점령지에 큰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신하들의 반대론은 31세 젊은 차르 표트르의 의지에 바로 꺾였다. 


표트르는 성당 두 곳을 먼저 짓고 요새에 ‘페트로파블로프스크’(베드로와 바울의 요새)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듬해 인근 스웨덴 기지까지 점령해 항로 통제권을 확보한 러시아는 도시 건설 속도를 높였다. 해군 본부 건립을 시작으로 조선소와 군항이 세워지고 궁전도 들어섰다. 차르가 원했던 신도시의 모습은 베니스와 암스테르담, 선진문물을 습득하려 18개월 동안 유럽 각국을 여행했던 차르는 전 유럽에서 약 1,000명의 건축가와 기술자들을 불러들였다. 네덜란드인이 이탈리아풍으로 설계한 도시 건설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척박한 네바 강 하구는 걸핏하면 바닷물이 들이치고 차가운 북풍이 휘몰아쳤다. 난관은 차르의 의지로 넘었다. 


차르는 공사 현장에 머물며 인부들과 함께 돌을 날랐다. 전국의 석조 건물 건축을 금지해 모든 자원을 신도시에 쏟아부었다. 러시아 전역에 동원된 농노와 스웨덴 포로 수십만이 동원된 공사가 일단 마무리된 시기가 1712년. 9년 동안 100여 개의 섬을 365개 다리로 연결하며 약 15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은 1711년 표트르 대제가 재혼을 하고 원래 결혼식 피로연으로 이용한 장소였다. 모스크바가 오래도록 이어온 수도였으니 이미 자신의 집안이 오랫동안 기반을 마련하고 부와 권력을 축적한 그곳에서부터 기꺼이 신도시로 이주할 귀족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표트르 대제는 자신의 결혼식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졌던 것이다. 국가 최고 권력자의 결혼식에 이들 귀족이 참석치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 대해 황제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이 도시를 떠날 수 없음을 공표함으로써, 상층부의 수도 이전은 빠르게 이루어졌다.여름정원 한쪽의 좁은 궁전에 머물던 차르의 가족들은 두 번째 동궁을 석조로 만들었다. 이것이 현재 에르미따쉬 극장 자리의 첫 번째 궁전에 이어 두 번째로 확장한 규모의 겨울궁전이었다. 표트르 대제의 둘째 부인은 다음 황제위에 올랐는데 바로 예카테리나 1세이다. 그녀는 이 건물을 확장시켜 세 번째 동궁을 지었다.


표트르 대제의 딸인 엘리자베타는 크고 곡선이 많은 엘리자베타식 바로크 건축으로 궁전을 확장하였는데, 1754년에서 1762년 동안 건축된 이 궁전은 1,000개 이상의 방과 사방에 출입구를 둔 굉장한 것이었다. 그녀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만들 목적은 아니었지만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유럽의 작품들을 소장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에르미따쉬 박물관의 시작이다. 입장료 800루블 (한화 약 15,000원) 역시 겨울 평일에 와야 사람이 안 밀린다. 주말이나 여름 성수기 때는 줄이 길어 보통 4시간은 서 있어야 한다. 가장 방문의 적기는 겨울, 그리고 평일이다. 


수요일은 저녁 8시까지 오픈이니 실컷 볼 수 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대영박물관-루브르박물관-에르미따쉬-고궁박물관 등 세계 4대 박물관을 모두 가본 사람이다. 나만큼 운 좋은 사람이 있을까? 본관은 원래 로마노프 왕조의 겨울궁전으로, 옐리자베타 여제 시기에 건축되었다. 러시아 혁명 당시에 케렌스키 임시정부의 소재지였고, 방호순양함 오로라가 포격했었던 곳이다. 이곳에 예카테리나 2세가 수집한 유럽의 예술품 컬렉션을 전시하기 시작해 그 뒤를 이은 차르들에 의해 계속 소장품이 모집되었고, 19세기 말에는 일반에 개방되어 현대까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러시아 혁명 이후 구 귀족들로부터 몰수한 예술품들을 모아놓는 장소가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겨울궁전과 그 주위의 문예 연구기관들을 모두 결합시켜 현재의 에르미따쉬 박물관이 되었다. 러시아 고유 예술품만 모아놓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고대 이집트 유물부터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주의를 거쳐 소련 시절의 예술품까지 모아놓은 박물관이다. 러시아와 동유럽 슬라브권의 고유 예술품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박물관이나 모스크바의 트레챠코프 미술관에 많이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것이 많지만 저곳들 역시 에르미따쉬에 뒤지지 않는 귀중한 유물이 가득하다. 


소련 시절 한때는 경제 개발을 위한 외화가 부족하여 소장된 예술품을 외국에 팔아먹기도 했으나, 소련의 경제가 발전하자 곧 소장품을 확대하였고, 현재에는 마티스나 피카소 같은 현대 미술작가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 총 소장작은 270만 점이고, 전시로의 총 길이는 27km이라니까, 며칠 동안 가도 다 못보고 올 정도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는 핀란드 만 주위에 8~9세기부터 노르만 인들이 들어와 정착했다. 이 지역은 노브고로드 대공국에 귀속되었으나 습지에 대다수의 땅이 늪지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았으며 버려진 땅이었다. 표트르 대제는 자신의 개혁 정치를 상징하기 위해 1703년부터 네바 강변에 서유럽식의 새 도시를 건립하기 시작했다. 네바라는 단어는 핀란드어로 “늪”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이미 나타난 것과 같이, 네바 강변의 땅은 매우 거칠고 생활하는데 매우 불편했다. 아무도 이곳에 사람이 거주지를 세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표트르 대제는 그와 같은 통념에 대담하게 도전해 큰 규모의 토목 공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와 같은 건설 사업에는 엄청난 노동력이 동원되었다. 주로 해외로부터 불러들인 건축기술자들의 지휘 아래 러시아 전국에서 목수들이 동원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석공들을 초청해왔다. 일반 노동자들은 대북방전쟁에서 획득한 스웨덴 포로들이 열악한 장비를 가지고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네바 강변은 매우 춥고 습하며 전염병이 나도는 열악한 상황이었기에 거의 하루 종일 일해야 했다. 1712년에 가서야 새 도시의 건설은 대체로 마무리 되었는데, 150,000명 정도의 스웨덴 군 포로들이 작업 도중에 사망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 現 에르미따쉬 박물관,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이와 같은 대북방전쟁에서 패전한 스웨덴 군 포로들의 엄청난 희생으로 인해 새로운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스웨덴 포로들의 뼈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별칭을 얻기에 이른다. 1703년 5월 27일, 러시아 네바 강 하구 삼각지에 광활한 뻘과 늪에 인부들이 거대한 나무와 석조 기둥을 박았다. 도시를 세우기 위해 기반 다지기에 들어간 것이다. 당초 목적은 군사 도시 건설하여 최전방에 요새를 세워 스웨덴을 견제하려는 차르의 생각에 반대가 많았다. 불과 한 달 전에 획득한 점령지에 큰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신하들의 반대론은 31세 젊은 차르 표트르의 의지에 바로 꺾였다. 


표트르는 성당 두 곳을 먼저 짓고 요새에 ‘페트로파블로프스크’(베드로와 바울의 요새)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듬해 인근 스웨덴 기지까지 점령해 항로 통제권을 확보한 러시아는 도시 건설 속도를 높였다. 해군 본부 건립을 시작으로 조선소와 군항이 세워지고 궁전도 들어섰다. 차르가 원했던 신도시의 모습은 베니스와 암스테르담, 선진문물을 습득하려 18개월 동안 유럽 각국을 여행했던 차르는 전 유럽에서 약 1,000명의 건축가와 기술자들을 불러들였다. 네덜란드인이 이탈리아풍으로 설계한 도시 건설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척박한 네바 강 하구는 걸핏하면 바닷물이 들이치고 차가운 북풍이 휘몰아쳤다. 난관은 차르의 의지로 넘었다. 


차르는 공사 현장에 머물며 인부들과 함께 돌을 날랐다. 전국의 석조 건물 건축을 금지해 모든 자원을 신도시에 쏟아부었다. 러시아 전역에 동원된 농노와 스웨덴 포로 수십만이 동원된 공사가 일단 마무리된 시기가 1712년. 9년 동안 100여 개의 섬을 365개 다리로 연결하며 약 15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은 1711년 표트르 대제가 재혼을 하고 원래 결혼식 피로연으로 이용한 장소였다. 모스크바가 오래도록 이어온 수도였으니 이미 자신의 집안이 오랫동안 기반을 마련하고 부와 권력을 축적한 그곳에서부터 기꺼이 신도시로 이주할 귀족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표트르 대제는 자신의 결혼식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졌던 것이다. 국가 최고 권력자의 결혼식에 이들 귀족이 참석치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 대해 황제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이 도시를 떠날 수 없음을 공표함으로써, 상층부의 수도 이전은 빠르게 이루어졌다.여름정원 한쪽의 좁은 궁전에 머물던 차르의 가족들은 두 번째 동궁을 석조로 만들었다. 이것이 현재 에르미따쉬 극장 자리의 첫 번째 궁전에 이어 두 번째로 확장한 규모의 겨울궁전이었다. 표트르 대제의 둘째 부인은 다음 황제위에 올랐는데 바로 예카테리나 1세이다. 그녀는 이 건물을 확장시켜 세 번째 동궁을 지었다.


표트르 대제의 딸인 엘리자베타는 크고 곡선이 많은 엘리자베타식 바로크 건축으로 궁전을 확장하였는데, 1754년에서 1762년 동안 건축된 이 궁전은 1,000개 이상의 방과 사방에 출입구를 둔 굉장한 것이었다. 그녀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만들 목적은 아니었지만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유럽의 작품들을 소장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에르미따쉬 박물관의 시작이다. 입장료 800루블 (한화 약 15,000원) 역시 겨울 평일에 와야 사람이 안 밀린다. 주말이나 여름 성수기 때는 줄이 길어 보통 4시간은 서 있어야 한다. 가장 방문의 적기는 겨울, 그리고 평일이다. 


수요일은 저녁 8시까지 오픈이니 실컷 볼 수 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대영박물관-루브르박물관-에르미따쉬-고궁박물관 등 세계 4대 박물관을 모두 가본 사람이다. 나만큼 운 좋은 사람이 있을까? 본관은 원래 로마노프 왕조의 겨울궁전으로, 옐리자베타 여제 시기에 건축되었다. 러시아 혁명 당시에 케렌스키 임시정부의 소재지였고, 방호순양함 오로라가 포격했었던 곳이다. 이곳에 예카테리나 2세가 수집한 유럽의 예술품 컬렉션을 전시하기 시작해 그 뒤를 이은 차르들에 의해 계속 소장품이 모집되었고, 19세기 말에는 일반에 개방되어 현대까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러시아 혁명 이후 구 귀족들로부터 몰수한 예술품들을 모아놓는 장소가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겨울궁전과 그 주위의 문예 연구기관들을 모두 결합시켜 현재의 에르미따쉬 박물관이 되었다. 러시아 고유 예술품만 모아놓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고대 이집트 유물부터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주의를 거쳐 소련 시절의 예술품까지 모아놓은 박물관이다. 러시아와 동유럽 슬라브권의 고유 예술품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박물관이나 모스크바의 트레챠코프 미술관에 많이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것이 많지만 저곳들 역시 에르미따쉬에 뒤지지 않는 귀중한 유물이 가득하다. 


소련 시절 한때는 경제 개발을 위한 외화가 부족하여 소장된 예술품을 외국에 팔아먹기도 했으나, 소련의 경제가 발전하자 곧 소장품을 확대하였고, 현재에는 마티스나 피카소 같은 현대 미술작가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 총 소장작은 270만 점이고, 전시로의 총 길이는 27km이라니까, 며칠 동안 가도 다 못보고 올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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