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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구혼하는 방법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4 16:18:52

중세 시대 남자들은 여자에게 구혼하기 위한 시험을 거쳐야 했는데, 그 중 한 가지 절차가 찾아가는 밤이었다. 찾아가는 밤은 남자가 여자에게 구혼을 하기 위해 집에 찾아가는 일을 뜻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시간은 밤이었는데, 특이하게도 문을 통해 들어가서는 안 되고 벽을 기어 올라가든, 지붕을 타고 위에서 내려오든 하여튼 어렵고 위험한 방식으로 여자의 방에 들어가야만 했다. 

중세 유럽인들의 잠자리,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그리고 그럴수록 그 '사랑의 크기'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시험하는 하나의 방편이지 않았을까 싶다가도, 그냥 자식을 쉽사리 내주고 싶지 않은 부모의 심술이 만들어낸 풍습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단, 그렇게 찾아간 그 날 밤은 절대 밤은 지새면 안 되고 몇 시간 동안 잡담만하다 나가는 것만 허용되었다고 하니, 생각보다 매우 건전한 풍습이었던 셈. 물론 찾아가는 밤 이후 임신을 한 채 결혼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디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보통 임신 능력이 없는 여성을 집에서 쫓아내는 걸 우리 말로 '소박 맞는다'고 표현하는데, 이런 '소박'은 유럽의 중세에도 존재했다. 다만 남성이 임신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방법이 조금 달랐다. 대리모 대신 '대리부'를 남편이 직접 찾아 나섰던 것이다. 주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남자에게 찾아가 부탁했고, 대개의 경우 부탁 받은 사람은 흔쾌히 청을 받아들여 이웃집 아내와 하룻밤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 남편은 첫날밤이 끝내기를 기다렸다 닭 요리를 만들어 둘을 대접했다고 하니, 기상천외하긴 해도 자손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중세 시절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이를 악용해 먼저 자신의 아내와 하룻밤을 보내달라 부탁해놓고 중간에 들어와 간통을 저질렀다고 난리 치며 돈을 갈취하는 부부 공갈단 또한 존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간혹 사회면에 등장하는 기사와 레퍼토리가 흡사한 것을 보면 공갈범들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보다. 사람의 다산과 곡식의 풍작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은 꼭 중세가 지구 곳곳에서 발견된다. 중세 시절 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중 게르만 족은 이를 아예 직접적으로 연결시킨 풍습을 하나 만들었는데, 마을에서 가장 건장하고 힘센 남자를 하나 골라 '마을의 왕'이란 칭호를 붙여주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자를 한 명 골라 '여왕'이란 칭호를 붙여준 후 섹스를 최대한 자주, 많이 할 것을 명령했던 것이다. 당시 게르만족들은 이들이 열심히 섹스를 할 수록 마을의 그 해 풍작이 보장된다고 믿었다. 막상 왕으로 뽑힌 남자, 그리고 여왕으로 선택된 여자의 기분이 어땠을까 상상해 보면 그리 좋았을 것 같지는 않다. 본인이 원하는 상대를 고르지도 못하고, 섹스 횟수 역시 마을 사람들이 체크하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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