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시골의 밤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등이 펼쳐진 도시와는 정반대다. 가로등도 별로 없고 밤 11시가 넘어가면 모두 잠이 드느라 집에 불켜진 곳도 많지 않지만 그 이상으로 불켜져 있는 곳은 내가 연구하는 방 밖에 없다. 그 정도로 이곳의 사람들은 시간적 근면성이 매우 밝다. 오전 5시에 기상해 밤 11시에 잠들 때까지 그 시간을 무슨일이 생기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의 시골, 타이빈의 밤,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우리가 흔히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날씨가 후덥지근하기 때문에 게으르고 일 잘 안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 편견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말하고 싶다.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등의 국가들은 그게 해당이 되지만 베트남은 다르다. 시골 사람들은 매우 부지런하고 근면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밭갈고 농사짓고, 공예품 만들며 꾸준히 일한다. 다만 점심시간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혹은 3시까지는 씨에스타 시간이 있다.
그리고 3시 이후부터 해질 때까지, 보통 7~8시까지 전력질주하며 일한다. 그 이후는 저녁을 먹고 TV나 각종 오락을 즐기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밤 11시 되면 왠만한 집들은 다 잠자리에 든다. 도시인들도 보통 그 시각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은 매우 영리하고 여자들은 생활력이 강하다. 집안을 끌어가는 것이 여자들이고 만약에 남편과 이혼해도 모든 집안을 먹여 살리는 것이 여자다.
모계사회의 풍습도 강하고 남자는 출세지향적인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익히 편견 속에 지내던 게으르고, 멍청하며 일도 제대로 안한다는 것과는 전혀 반대되는 얘기들인 것이다. 그러한 편견이 "그러니까 못살지" 라는 또다른 편견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서구 열강의 침탈을 받지 않았다면, 강대국들 세력다툼의 무대가 되지 않았다면... 그러면서 온전히 파괴되지 않고 있는 자원을 잘 개발했다면.. 우리보다 더 무서운 국가들이 됐으면 됐지 후진국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란게 나의 판단이다.
베트남은 20세기 들어와서 1980년까지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려왔고 이념에 따른 강대국들의 세력 경쟁 무대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공산주의가 들어와 완전히 고착화되었다. 베트남에 공산주의가 들어온 것은 필연적이었고 라오스, 캄보디아 또한 공산주의가 들어와 독재를 한 것도 필연이었다. 잦은 전쟁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 강대국들의 수탈로 인해 엄청나게 굶어죽은 아사자들, 그 와중에도 강대국에 기대 자국민들을 수탈하여 잘먹고 잘살았던 매국노와 탐관오리들.. 그런 자들이 득실대는 가운데 일반 민중 속에 들어온 "모두의 평등" 이라는 이념의 공산주의는 당연히 환상의 나래를 필 수밖에 없다.
미래의 공산주의 폐해를 내다보는 식자들도 분명 존재했지만 당장 오늘, 내일 먹고 사는게 중요한 99%의 일반 민중들에게 미래라는 것을 생각할 여지가 있었을까? 타이빈에서 전쟁 때 굶어 죽은 영혼들에 대한 진혼제를 열 때 그 축문의 내용을 들어보면 그 사람들이 공산주의가 뭔지도 몰랐을 것이고 그 폐해가 어떤지도 몰랐을 것이며 오로지 오늘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었던 것이고 하나 하나 안타까운 목숨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베트남의 공산화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며 후진국이 어쩌고 저쩌고 한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건 베트남 뿐 아니라, 우리가 그 위치로 격하됐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트남을 제대로 돌아보면 왜 이런 나라가 아사자가 속출할 정도로 가난했으며 이렇게 자원이 풍부한데도 왜 못사는 나라가 됐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투성이다. 단지 그들이 능력이 없어서일까?
제국주의 근대화론을 펼치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베트남이나 그 외에 자원이 풍부한 일명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수탈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는 수탈이라는 공급과 수요가 항상 동반되는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다. 강대국들도 인정하는 그 전제조건에 왜 우리만 역행하는 자들이 생겨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