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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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단파를 상징하던 Assassins hashish에서 Hashish는 대마의 소비자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고 중세 라틴어 Assassini를 경유하여 유럽 각국 언어에 들어가고 영어에서 Assassin의 원형이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십자군이 이스마일파(Isma‘ilis)의 한 갈래인 니자리(Nizari)파의 일원에게 붙여준 이름인데 당시는 단지 분쟁 지역에만 사용되었고 또한 이 종파가 매우 호전성을 띄고 있었다. 이러한 니자리파의 활약상은 1090년부터 알라무트(Alamut) 요새가 함락된 1256년까지 지속되었다. 이에 본래 Hashish에서 파생된 대마초와는 어떻게 연관되었는지는 아직 모호한 관계에 있다. 아마도 지도자에게 완전한 복종심을 심어주는 방편으로 마약이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로부터 유래됐을 것으로 파악했다. 또는 단순히 수니파가 시아파, 열두 이맘파가 속한 이 종파의 성격을 멸시하려는 뜻에서 지어낸 말일 수도 있다. 더구나 시리아에서 암살단파는 몇 개의 요새를 점령했는데, 그들의 수장이 산속의 노인(Shaykh al-jabal)으로 십자군에게 알려지기도 하였고 십자군에게 시아 암살단파는 상당히 두려운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리아 암살단파의 가장 유명한 지도자는 라쉬드 알 딘 시난(Rashid al-Din Sinan)이었지만 그 운동은 사실상 페르시아의 알라무트(Alamut) 성주들이 주로 이끌었다. 그 초대 성주는 하산 알 싸바(Hasan al-sabbah)였는데 그는 파티마 왕조 이집트에서 이스마일파가 쇠퇴하여 분파 작용이 발생했을 때 그 분파의 지도권을 계승하였다.

An agent (fida’i) of the Ismailis («Order of Assassins») (left, in white turban) fatally stabs Nizam al-Mulk, a Seljuk vizier, in 1092.
하산 알 싸바는 페르시아 태생의 이스마일파 선교사였던 다이(Da‘i)였다. 1086년에 하산 알 싸바는 이집트로 여행했는데 그 시기는 파티마 왕조 치하에서 이스마일파 활동의 전성기였다. 이후 하산 알 싸바는 파티마 왕조의 권좌와 이스마일 파 이맘 지위를 이을 촉망되는 계승자인 니자르의 이름으로 선교를 수행하기 위해서 페르시아로 돌아왔다. 그러나 니자르는 1094에 군대 지도자인 알 아프달(Al-Afdal)의 선동으로 인해 동생 무스타알리에 의해 투옥되고 권좌를 박탈되고 말았다. 이에 니자르를 옹호하기 위해 선임된 하산 알 싸바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파티마 왕조와 관계를 끊었다. 그리고 카스피해 근처의 이란 북쪽에 위치한 알라무트 요새, 매의 둥지라 불리는 지역을 점령하게 된다. 알라무트를 작전의 중심지로 삼은 후 알 싸바는 정치적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산악 지대의 종족들 사이에서 근거지를 확립하는데 성공했다. 하산 알 싸바는 영지적 이원론을 신조로 하는 이스마일파 교리의 전파를 통해 자신의 왕국을 세웠다. 이 신조는 신 자체에서 선과 악 사이의 내적 갈등 때문에 신은 알 수 없고 또한 이 갈등에서 예지체(Intellect)라는 일련의 유출물이 배출되는데 그 절정이 이 세계의 유출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스마일파의 교리가 유래된 신비한 배경은 세계와 육체에 있어 빛과 어두움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둘 다 악으로 선언한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에게는 지식의 불꽃이 타고 있는데 그것은 원천으로부터는 떨어져 나와 고립되어 있다. 세계의 종말이 왔을 때에 빛과 어두움이 각각의 영역으로 용해되어 들어간다. 빛과 어두움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반면 불꽃을 지닌 선택된 자들은 비밀스러운 부름을 듣게 된다. 그들은 깨어나서 빛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게 되어 종국에 가서 그들은 구원을 받는다.
암살단파는 이맘을 통해 알려진 이스마일 신앙의 핵심인 비밀 지식의 소유를 주장함으로써 그들을 추종하는 제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맘 자신은 알 수 없는 신의 기체(基體)이자 또한 구원의 매개자이다. 이스마일파는 파티마 왕조 칼리프들을 종파의 정신적 수장이자 이맘으로 받들게 된다. 마르크 폴로가 1271년에 이 지역을 통과했고 그가 암살단파에 대해 들은 것을 여행기에 기록했다. 알라무트 성은 1256년에 몽골군에 의해 정복되었기에 모로코에서 마르크 폴로가 알라무트의 성주를 우연히 만났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불가능했다. 이러한 설은 출처가 확실한 토착자료를 활용하여 유럽에서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로코 이야기는 암살단파가 생성된 본질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해주고 있다.
“이 종파의 우두머리가 마르코 폴로의 머리에 수정으로 만든 투구를 씌워주었다. 그러나 그는 잠시 동안 밖에는 그것을 쓰고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썼을 때 수정이 순수한 악의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산 알 싸바의 암살단파는 그 시기에 이슬람 세계에 탈리미야(Ta‘lamiyyah, ‘가르치는 사람들’), 바띠니야(Batiniyyah, ‘내적 정신을 가진 사람들’) 또는 피다이야(Fidaiyya, ‘스스로 제물이 되는 사람들’)로 알려졌다. 마르코 폴로는 암살단파들이 어떻게 신봉자들의 완전한 복종을 받게 되는지를 묘사했다. 입문식의 한 부분으로서 초심자는 먼저 마약을 복용함으로써 각기 자살 공격을 목적으로 삼는 피다이윤(Fida’iyyun)이 된다. 그들은 약물의 환각 상태에서 깨어나면 자신들이 포도주, 우유, 꿀이 나타나는 분수와 천국의 소녀(Haori)들이 접대하는 완전한 쾌락의 정원에 있음을 발견한다. 이 내세(來世)의 삶을 잠시 지내본 후에 다른 마약이 투여되고 다시 그들이 정상 상태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진실로 천국을 방문했었다고 듣게 되었으며 또 그들이 이러한 환각 상태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순종만 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믿게 된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까지는 아니라도 비유적으로 볼 때 종교적 영성(靈性) 집단의식의 명분 아래 급진주의적 정치 운동을 실재 체제 속으로 주입하는 지적 과정을 잘 묘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세계를 다양하고 신비하게 바라보는 시각이며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적 충격을 주는 것이고 일단 한번 체험을 하고 나면 그의 지각이 영원히 바뀌게 된다. 물론 완전하게 지각전환(De-program)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힘들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마르코 폴로의 글과 라시드 앗 딘(Rashid al-Din)의 Al-habib의『종합사(Universal History)』에 인용된 내용에 의하면 어떠한 누군가의 실재에 대한 지각을 신중하게 수정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전통적인 일례라 할 수 있다. 현재로 돌아와서 판단해 볼 때 이는 세뇌 공작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암살단파가 그 중견 간부급 인물을 완전하게 통솔한 방법을 설명하려고 중세의 유럽 연대기 기록자들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암살단파 수장의 추종자들은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벼랑에서 뛰어내림으로써 자신을 죽음 속으로 집어던졌다. 이는 적들을 겁먹게 하기 위한 단순한 연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효과적이고 정형화된 암살단파 만의 방식이었다. 피다이윤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할 준비가 확실히 되어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테러를 일으켜서 이 종파에 대해 공포심을 퍼뜨리는 것이었고 동시에 중요한 정치적 인물을 살해함으로써 적들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암살단파는 이슬람의 데르비쉬(Dervish, ‘탁발승’)와 수도자로 가장하여 적진으로 침투했다. 그들이 신뢰를 얻었을 때 그들은 선택된 희생자들을 항상 칼을 사용하여 살해했다. 그들은 계획에 따라 명백히 명령을 수행했을 때 대개 자살을 해버린다. 그들의 희생자 중에는 셀주크투르크 왕조의 재상 니잠 알 물크(Nizam al-Mulk)와 또한 그의 형제와 아들도 있었다. 니잠 알 물크는 최초로 암살단을 억압하려 했던 인물로 이로 인한 국가적 위험성을 간파하고 있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술탄 말리크 샤(Sultan Malik Shah), 니자르를 죽인 파티마 왕조의 칼리프 무스타알리(al-Musta‘li)의 아들 알 아미르(Al-Amir), 압바스 왕조의 두 칼리프 등 수천 명은 아니더라도 수백 명이 희생되었다. 시리아에서는 십자군의 지휘관 또한 그들의 표적 중의 하나였고 암살단파는 예루살렘 왕국의 왕인 몽페라의 콘타드(Con-rad of Montferrat)를 살해하는데 성공했다. 쌀라흐 알 딘 자신은 암살단의 살해음모를 간신히 피했으며 그로 인해 항상 경비병을 두어야 했다. 그들 암살단파는 심오한 신학적 유대감을 통하여 그들의 추종자들을 결속시켰고 살해 계획의 수행에 의해 정치적 소요를 일으킴으로써 암살단파는 왕국 안에 보이지 않는 왕국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북부 페르시아와 시리아에 위치한 그들의 성은 잘 선택된 위치로 인하여 공격과 포위를 당해도 거의 난공불락이었다, 결국 암살단파의 적들은 자신의 충실한 하인이 이 비밀스러운 종파에서 보낸 하수인으로 판명되자 치명적인 암살의 위험에 대해서 타협을 하게 되었다.
가잘리(Al-Ghazali)는 탈리미야(Ta‘limiyyah)라고 지칭하면서 그들에게 맞서서 논증법을 사용하여 이 종파의 가르침을 논박했다. 라지(Fakr al-Din Razi)도 그들을 비난했으나 암살의 위협과 또한 그들에게 순응하면 한 자루의 금을 선물하겠다는 회유책으로 인하여 침묵하고 말았다. 그가 그들을 공격하는 것을 멈추자 그의 제자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가 대답하길, ‘나는 논거가 아주 날카롭고 그 증거도 분명한 사람들의 죄악을 말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한다. 암살단파 세력은 1256년에 훌라구 한(Hulagu Khan)의 영도 하에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 온 몽골족에 의해 멸망했다. 역사가인 주와이니(Al-Juwayni)가 말하기를 곡(Gog)과 마곡(Magog)의 세력도 이 대부대에 의해서 멸망했다라고 기술했다. 알라무트 성의 마지막 성주 루큰 알 딘(Rukn al-Din)은 항복했으나 카라코룸(Qara-qorum)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는 시리아의 암살단파 요새를 정복했다. 시리아의 암살단파는 그들의 힘이 쇠퇴하자 모두 십자군과 동맹을 맺고 또한 그리스도교인들이 되기를 제의했다. 이 제의는 십자군의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해 거절되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암살단파들이 어떠한 종교를 갖게 되더라도 그것은 외면적일 뿐이지 그들의 내적인 믿음은 개종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살단파의 이러한 행위들은 단순한 테러행위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이스마일파는 첫 세기를 지식에 대한 진지한 추구로 인해 많은 서적을 쌓았고 과학적 도구들을 구해왔다. 역사가인 뚜시(Tushi)가 진술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우주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학자들을 납치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몽골군의 알라무트 성 공격에 참여한 네스토리우스 교인(Nestorian)들과 시아파들은 알라무트에서 단순히 살해의 중심지로서만 아니라 학문에 대해서도 강한 욕구를 보여주는 책과 기구들을 발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암살단파의 과학에 대한 흥미는 이스마일파의 본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2세기에 이집트에서 번성한 발렌타인 영지주의(Valentinian Gnosticism)에서와 같이 이스마일파 신앙에서도 이원론적 형이상학은 우주 철학으로부터 분리해 낼 수가 없다. 이는 물질적 우주는 어떤 의미에서는 신성 그 자체이고 형이상학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심연(‘Abyss’, 혼돈)의 그림자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하산 알 싸바는 아들조차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살했다. 그러나 알 싸바가 죽어갈 무렵 그의 부관 키야 부조르그 우미드(Kiya Buzurg Ummid)를 라마사르(Lamasar) 요새의 수장으로 임명함으로써 사실상 그의 후계자로 삼았고 또한 이스마일파와 알라무트 성의 새 주인임을 선포한 셈이 되었다. 알 싸바는 그 자신의 주장을 새로운 설교(Al-da‘wah al-jadidah)라고 명명했다. 이로 인하여 카이로의 이스마일파인 파티마 왕조와 관계가 단절되었다.
알라무트의 후계자들은 알 싸바의 전통을 고수했다. 보조르그 우미드의 손자인 하산(Hasan)은 신비하고 믿을 수 없는 방법을 통해 그 스스로를 파티마 왕조의 퇴출당한 세자 니자르의 숨겨둔 자손으로 자처하면서 이스마일 파의 이맘이라고 선언했다. 하산의 아버지 무함마드(Muhammad)는 살아있는 동안 아들의 주장을 거절하고 아들의 추종자 250명을 처형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산이 통치를 할 당시 자신이 이맘이란 것을 계속 확언했다. 그가 계승한지 2년이 지나 1164년 라마단 달 동안 그는 호라산, 이라크, 시리아 그리고 카스피 해 지역의 니자리 파 지도자들을 알라무트 정원에 소집한 자리에서 선언하기를, ‘진(Jinn), 천사들과 인간들’의 구원은 그의 명령을 따르는데 있기 때문에 이슬람의 종교법(shari‘ah)를 폐지한다는 것이었다. 이어 하산은 단식달의 조기 종료를 나타내는 두 라카아트(Raka‘at)의 예배의례를 행했다. 그리고는 그날을 부활축제의 날, 이드 알 끼야마(‘Id al-Qiyamah)라고 불렀다. 참석자들은 그와 합류하여 먹고, 마시며 종교법이 공식적으로 폐기한다는 뜻을 내포한 축제를 즐겼다. 또한 여행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알라무트의 도서관 문에는 ‘신의 도움으로, 우주의 통치자는 법의 족쇄를 파괴했다’(‘Ala dhikrihi al-salam ‘그의 기억에 축복이 있기를’)라고 서술되어 있다. 이는 영지주의 신지학에서 종교법은 때때로 악이라고 여기고 있고 이를 근거로 한 압제는 하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산 자신은 살해되었으나 그의 아들 무함마드가 아버지의 정책을 계속 이행했다. 그러나 그의 손자 잘랄 알 딘(Jalal al-Din, 1210∼1221)은 완전히 정책 방향을 그 동안 해온 것과 반대로 전환을 하였다. 잘랄 앗 딘은 스스로를 수니파라고 선포하고 공개적으로 조상을 비방하면서 하산 알 싸바의 책을 분서했다. 이후 이슬람법의 관례를 복원시키면서 수니파의 방식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그는 스스로 압바스 왕조 칼리프와 동맹을 맺고 자신의 군사력을 칼리프의 처분아래 두었다. 잘랄 알 딘이 죽었을 때 그의 아들 알라 알 딘(‘Ala’ al-Din)은 어둡고 타락한 인물로서, 그의 증조부 시대의 법칙으로 일시적으로 되돌아가면서 이슬람법은 ‘우주의 환상’과 같이 마음 내키는 대로 입고 벗을 수 있는 옷에 불과한 것이라 했다. 하산과 더불어 끼야마(Qiyamah, ‘부활’) 교리는 암살단의 내적 교리로 그 서두를 열었다. 그러나 잘랄 알 딘과 더불어 그 교리는 폐쇄되었다. 또한 알라 알 딘의 통치 기간 중에 잠시 동안이나마 중단되었지만 사트르(Satr, ‘장막’)이라고 알려진 이 시기는 다시 돌아왔다. 니자리파와 카이로의 파티마 왕조의 관계가 붕괴되자, 이맘 혈통도 완전하게 분열되었다. 이집트 고유의 종파는 니자르의 동생을 따랐고 그들은 무스타알리 이스마일리 파(Musta‘li Isma‘ilis)라고 불리웠다. 니자르 자신과 그의 아들과 아마도 그의 손자는 이집트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몇몇의 자료에 따르면, 알라무트의 니자리 혈통이 갑자기 다시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 기록에는 니자르나 그의 아들의 첩이 임신한 채 배속의 이맘을 그곳에 데려왔는데, 그는 세상에 태어나면, 암살단파 수장의 아들을 대체할 것이라는 기록도 있다. 무스타알리의 아들 알 아미르(Al-Amir)의 죽음으로 무스타알리 혈통은 멸망했다. 그러나 몇몇의 무스타알리 이스마일파는 알 따입(Al-tayyib)라고 불리우는 알 아미르의 아들로 추정된 이가 마치 열두 이맘 시아파의 숨은 이맘과 같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살아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종말의 시기에 마흐디(Mahdi)로서 그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비밀리에 무스타알리 혈통을 이을 알 따입의 자손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고 믿었다. 예멘의 무스타알리 이스마일파와 인도의 보호라파(Bohoras)는 내세울 뚜렷한 이맘이 없어도 이스마일 파의 이 분파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대신 그들은 다이 무뜰락(Da'i Mutlaq, ‘절대적 선교원’)라고 불리우는 인물에 의해 통솔되고 있다. 몽골에 의해 알라무트가 멸망하는 가운데서도, 새로운 선교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 오래된 이름은 사라졌지만 다시 이 종파는 이란에서 살아 남아서 새로운 이맘과 삶을 찾았다. 무엇보다도 인도의 호자파(Khojas)에서 그들의 개종을 성공시킴으로써 그들은 아직 살아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