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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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어떤 국가였을까? 겨우 한반도의 절반보다 조금넓은 부분만 점령했던 그런 국가였을까? 기존의 국사 교과서를 보면 보통 첫 사진의 지도처럼 나타나 있다. 그런데 고려를 향한 대외적인 문서나 여러 기록들을 보면 지도에서 말한것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늘날 이란에 위치한 일한국의 라시드 앗 딘의 <집사>를 보면 고려를 카을리로 표현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묘호를 조(祖)와 종(宗)으로 했다. 일개 중국의 제후국이 묘호를 조(祖)와 종(宗)으로 바꿀 수 있나?.

하노이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한국 도자기 전시회에서의 고려 청자,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그리고 태조가 즉위하여 연호를 천수(天授)라 하였다. 그리고 광종 때 광덕(光德)이라는 연호를 쓰고 잠시 송나라와 관계 개선을 위해 건덕(乾德)이라는 송나라 연호를 쓰긴 했지만 불과 5년 뒤에 다시 바꾼다. 중국의 제후 국가가 연호를 쓸 수 있나? 게다가 연호를 사용한 것은 칭제(稱帝)를 했다는 의미이다. 제후이자 한반도의 절반보다 조금넓은 부분 밖에 안되는 국가가 황제로 칭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광군(光軍) 30만을 두었으며 이들 광군은 상비군이나 마찬가지도 그럼 예비병력은 최소 10만은 된다는 얘긴데 한반도의 절반보다 조금넓은 부분의 영토를 가지고 있던 고려의 인구가 40만의 자국 군대를 감당할만큼의 인구가 존재했나?
영토 대비 인구를 놓고 볼 때 도무지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한 고려가 거란 요나라와의 전쟁에서 승전을 했고 요나라의 대군과 대등하게 싸워 이겼다. 그 전쟁으로 인하여 요나라는 급격히 쇠락했고 고려는 동북아시아 최강국으로 급부상한다. <고려사>를 보면 고요전쟁 승전 이후, 고려가 많은 나라에게 조공을 받았다는 기사들이 깔려 있다. 한반도의 절반보다 조금넓은 부분을 차지한 나라가 대국인 요나라와 대등하게 싸워 이겼고 많은 나라의 조공을 받았다. 선뜻 이해가 될 수 있을까?
승전국 고려는 여진의 세력이 강성해져 고려의 동북방을 위협하던 1100년까지 100여년 동안 평화를 유지하며 조공을 받고 당시 문학, 예술 등이 유행했으며 벽란도를 중심으로 국제 상권의 중심지가 되고 수도인 개경 인구가 30만이 넘었다. 특히 고려의 유물, 고려청자는 정말 아름답다. 고려 시대의 불상도 아름답다. 그래서 이러한 고려의 아름다움 원천은 그 전성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는 그리 많지 않다. 고려는 불교국가일까?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폈던 조선은 쿠데타로 인한 정권 찬탈의 정당성으로 불교를 지목하여 억제했을 뿐이다. 종교적이나 국가 정책적으로 불도와 유도는 서로 대립을 거듭해온 것이 고려 때나 조선 때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참고로 고려는 불교만이 성행했던 국가가 아니다.
고려는 선도(仙道)와 불도(佛道), 유도(儒道) 그 외에도 각종 종교가 존재했던 다종교 국가였다. 누구나 종교의 자유가 있었으며 고려 내에는 다민족이 존재했다. 특히 예성강 하구 벽란도(碧瀾渡)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국제 무역항이었으며 멀리 이슬람, 동로마 제국의 상인도 와서 이곳에서 거래하곤 했다. 물론 개경이나 예성강 일대를 더 발굴해야 하겠지만 북한은 대규모로 발굴할 능력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내 추측컨데, 아마도 이곳에 조로아스터나, 기독교, 이슬람 사원이 공존했을 것이다. 이들 상인들로 인하여 고려의 국명인 Corea는 그렇게 서방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때부터 Corea 라는 국명이 서방에 알려진게 고려가 최초는 아니다.
이슬람 상인이나 동로마 상인들을 비롯한 유라시아의 해안 지대를 주름잡던 이들에 의해 알려진건 육로를 통해 그동안 유라시아에 소개되어 왔던 고구려 등의 고대 국가과는 다소 다르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 내 견해이다. 왜냐면 고구려는 무쿠리, 묵시르 등의 이름으로 불렸고 고구려 멸망 후 코리 집단 등도 나타나지만 고려는 바닷길로 접해진 유라시아 지역들을 중심으로 그 이름이 전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유라시아 역사에서 볼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도시가 바로 개경이었다. 나는 이 100여년의 시기를 "팍스 코리아나" 라고 부른다. 그만큼 안정적이고 평화로운데다 풍족한 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고려는 몽골 제국의 침략을 받았다. 몽골은 서방 원정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장악을 쉽고 빠르게 이어가서 거의 무적의 신화를 자랑했던 것과는 달리 그 명성에 비해 동방 원정에서는 사실상 매우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삼국유사>, <삼국사기>, <제왕운기> 등을 보며 몽골과의 40년 항쟁을 하며 견뎌낸 나라 고려의 "대몽항쟁사", <고려사>, <고려사절요>도 다시 보면 보통 칭기즈칸의 몽골하면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어떻게 되었는지 모두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적수가 없었으며 유라시아 전체가 몽골을 두려워했다. 그러한 몽골에게 40년 동안 끈질기게 항쟁이 가능한 요인이 무엇일까?
무엇이든 전쟁이라는 것은 그 기반이 다져져 있지 않으면 쉽사리 굴복하는 법이다. 그러나 고려는 앞서 말한 광군 30만 이후에도 꾸준히 군사력을 강화하고 늘려왔다. 오죽하면 김부식을 비롯한 문관들이 득세하고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 군사정권을 만든게 가능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고려는 전통적으로 문과 무, 특히 무(武)가 강한 나라였다. 고려를 만만히 보고 덤빈 나라들은 모두 100년 이상을 무사치 못했다. 요나라도 귀주대첩에서 패한 후 100년 뒤 금나라에 망했고 몽골도 고려에 어렵게 항복을 받긴 했지만 100년도 못되서 축출되고 명나라에 망했다. 왜구들도 동북아시아를 휩쓸다가 고려와 조선에 의해 대마도에서 토벌되면서 100년도 못갔다. 그건 역사의 팩트 아닌가?
분명 고려는 몽골에 비해 열세였지만 미리 축조해둔 성곽들을 중심으로 비교적 잘 방어했다. 사실 40년간 항쟁한 나라치고 그 정도면 선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른 나라 같았음 몽골에게 멸망하고 씨가 말렸을테니 말이다. 고려가 잘 버틴 이유는 문(文)이 발달한만큼 무(武)도 발달했고 무(武)는 역대 한국사에서 고구려 다음으로 가장 강력했다. 그 200만의 인구인 중원의 송나라도 요나라, 금나라에게 이기지 못했는데 고려는 요나라도 막아내고 몽골과도 치열히 항쟁했으니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인 것은 확실하다. 다시 말해 고려는 어느나라가 침략해 오든 항상 준비가 되어 있었던 국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비판이 있어 왔던 정중부의 군사 쿠데타에 이은 정권 찬탈, 최씨 일가까지 연결된 군사 정권은 군이 우대를 받으면서 그 긴장감을 불어 넣어 줄 수밖에 없었다. 다만 문화적인 부분에서 많은 후퇴를 가져왔지만 반면 군의 기강이 강해지고 전반적으로 외적의 침입에서 늘 방어가 가능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도 역사의 이면에서 참조해야 하지 않을까? 10세기 후반 고요전쟁 이후부터 11세기~12세기 초반에 이르는 "팍스 코리아나"라 불린 그 기간의 고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 역사에서 가장 홀대했던 국가, TOP 3에 발해, 고려, 백제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