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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율법에서 기초한 샤리아 법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4 21:24:48

샤리아의 모태는 모세의 율법이다. 고대 아라비아에서는 범죄를 일종의 부정한 행위라고 보고, 이 부정을 씻는 것이 형벌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형벌을 받는 것이 청정화(淸淨化)를 의미했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법(샤리아)에서는, 형벌을 하끄 알라(신의 권리)와 하끄 아다미(인간의 권리)로 구별하여, 신을 거역한 범죄에 형벌을 과하는 것은 신의 권리이고, 피해자 또는 그 친족의 요구가 있어서 형벌을 과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라고 보았다. 이슬람법에서 형벌은 끼싸쓰(qiṣāṣ) · 핫드(ḥādd) · 타지르(ta‘zir)의 세 가지로 크게 분류된다. <하디스>에 따르면, 의도적인 부분으로 나타난 니야(Niyyah)는 모든 행위의 본성을 판단할 때 고려되어야 할 요인이다. 이에 대한 하디스의 설명은 ‘행위는 의도에 뒤따라 이루어진다….’ 라고 하였다. 이슬람은 종교와 일상생활을 구분하지 않으며 종교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해 종교 이외의 것과 세속적인 것까지도 포함한다. 이슬람법은 종교의례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모든 측면을 다루고 있다. 오늘날 많은 무슬림 국가에서 이슬람법은 가족과 종교적 관행 문제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 공공행정과 상업을 다루는 데는 별개의 법률 체계가 적용되고 있어 형평성을 맞추려 하고 있다.

샤리아 법전과 이슬람 세계에서 샤리아 법의 위상, 출처 : Ulum Al-Azhar Academy


이슬람 법체계에 병행하여 군주의 시민법이 있었는데, 그것의 원천은 이슬람 방식이 아닌 토착적인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전통주의자들은 현대화를 표방하며 유럽식 방식을 차용한 현대식 법체계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슬람 법은 그 접근 방식이 상당히 이상적이고, 진리를 따르는 것을 당연한 욕구로 여기는데다 종교적 획일성에 맞춘 이른바 ‘성스러운’ 사회가 실존한다고 보기 때문에 항상 국가가 관장하는 사법 체계가 공존해 왔다. 샤리아 법에서는 사건의 정황으로 미루어 사람을 고발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증인이나 피고의 자백이 있어야만 한다. 사실상 기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 때문에 범죄 사건을 기소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정치적 권위에 의한 재판은 반드시 샤리아에 꼭 필요한 보조품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통치 군주는 형을 집행할 수 있고 종교 재판의 판결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이는 군주와 그의 권한을 위임받은 지방 관료를 포함한 모든 행정 당국자가 사법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를 시야사 샤리야(Siyasah shar‘iyyah)라고 하는데 종교 법정에서 사법을 집행하는 것과 같이 행정당국에서도 사법 업무를 관할하는 것이다. 군주는 또한 까눈(Qanun), 시민법의 그리스어의 카논(Kanon)에서 유래했고 ‘법률(Canon)’ 을 제정하여 칙령(Al-Sahar)으로 공포했는데 오늘날의 행정부와 입법부는 이러한 특권을 이어받았다. 


이 외에도 샤리아 법의 시행은 전통적으로 이슬람 신도들의 관습에 의해 제한되어 왔다. 이 점은 아라비아 인들에게는 메디나(Medina)와 쿠파(Kufah)의 관습법에 따른 통치가 샤리아와 통합되었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베르베르 인(Berbers) 혹은 까쉬까이 부족(Qashqais)과 같이 나중에 이슬람에 등장한 인종집단에게는 부족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경우에는 부족의 전통적 관습은 그 사회의 합법적 관례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많은 경우 이러한 부족적인 관례가 샤리아 법을 대신했다. 이러한 예는 특별히 말라이(Malay) 제도의 국가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인도네시아에는 아다트(Adat)라는 관습법이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오늘날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지역 국가들을 제외하고 샤리아 법을 지배적인 법체계로 채택한 나라는 없다. 몇몇 국가에서 샤리아는 서유럽의 법체계를 공고히 하여 만든 법으로 대체되었다. 다른 일부 국가에서 샤리아는 가족법의 소송을 판결하는 것으로 격하되었다. 또 다른 국가들에서는 서유럽의 법체계와 샤리아가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나라들은 13~19세기에 서유럽의 법체계를 받아들여 처음에는 상거래에만 적용했다. 이집트에서는 무함마드 알리(Mu-hammad ‘Ali)가 나폴레옹 법전을 정착시켰다. 터키에서는 13~19세기의 탄지마트(Tanjimat)라는 개혁 운동 기간 중에 유럽의 법체계를 기본으로 종합적 법체계가 도입되었다. 


요르단은 여전히 13~19세기의 오스만투르크의 법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터키는 술탄제(Sultanate)가 폐지된 이래 유럽식 법체계와 상당히 유사한 법전을 채용해 왔다. 유럽의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은 식민세력의 법전을 상당히 많이 받아들였다. 현대적 헌법이 생겨나면서 더욱 유럽식 법체계를 채용하게 되었다. 이는 보다 종교적인 사회로 회귀하고 싶은 욕구, 차용한 것이 아니라 고유한 틀을 통해 정치 활동의 표현을 재발견하려는 욕구 및 현대의 원리주의와 신(新) 민족주의가 ‘저항’ 과 혁명의 수단으로 부상한 점 등으로 인해 많은 무슬림 국가와 정부들은 어쩔 수 없이 ‘이슬람법으로의 회귀’ 라는 행위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 샤리아법에서 나타난 일종의 행위들은 피상적이고 상징적인 형식으로 나타났다. 간혹 공개 태형처럼 더욱 종교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중의 정서에 부응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샤리아 법으로 회귀한다는 것은 신앙의 시대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현대인에게는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오늘날의 무슬림 국가와 정부들은 물질주의를 전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으로 넘어선 것이다. 


오늘날 전적으로 샤리아 법만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의 완벽한 적용은 현대 사상과의 보완 절충을 하거나 현재 세상의 단순화를 의미하고 있다. 이에 대한 실례로 개혁가들은 공리주의에 입각한 현대의 합리주의를 채택한 것을 논거로 들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이 세상이 변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이것이 모든 사회에 실현 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주의 조화에 변화가 일어나야만 한다.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우주의 균형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다. 이미 이러한 부분에 대한 무함마드의 예언이 있었는데 무함마드는 이렇게 말했다. 


‘태초에는 사람이 10개의 법 중 하나만 어겨도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끝날 무렵에는 10개의 법 중 하나만 지켜도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본래 아랍어로 샤리아는 무슬림이면 누구나 복종하고 따라야 하는 ‘신을 향한 길(The way to God)’이며 이에 대한 궁극적인 목표는 신의 의지에 대한 귀의와 복종이라는 의미에서 ‘길(Way)’을 뜻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서구 사회의 법 개념보다 포괄적이며, 국가와 사회에 우선하고, 종교와 세속의 차이를 두지 않으며, 시공을 초월하여 ‘신의 뜻에 따른 올바른 삶의 방식(The right way of life according to God's will)’을 가리킨다.


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법이 아니라 신의 계시에 의한 절대적이자 변하지 않는 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샤리아를 이해하고, 실제적인 인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하여 법원을 채택 · 논의 · 분류하여 체계적인 적용 기준을 마련하는 등 법 이론으로 발전된 형태를 피크흐(Fiqh)라 한다. 샤리아의 가장 우선적인 법의 근본적인 원리는 <꾸란>이다. 그러나 <꾸란>의 내용이 모호하거나 <꾸란>에 언급되지 않은 사안에 관해서 예언자 무함마드의 말씀인 <순나>와 <하디스>를 법의 근원으로 삼는다. 그 뒤를 이어 <이즈마>가 제3의 법의 원리이며, 마지막으로 <꾸란>과 <순나>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미 만들어져 있던 확실한 법적 결정들 속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아내어 적용하는 끼야쓰(Qiyas, 유추)가 있다. 끼야쓰는 반드시 앞의 세 법원에 의하여 확립된 사실에 근거를 두어야만 한다. 법원에 근거하여 샤리아 법체계를 형성해온 주류 법학파에는 앞에서 거론한 하나피학파, 말리키학파, 샤피이학파, 한발리학파가 있다. 세부적이고 형식적인 부분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이슬람법의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문제에서는 모두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오늘날 수니파 무슬림들은 이 네 학파 중 한 학파에 속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추종하는 학파를 변경할 수 있지만 전통적으로 가족, 사회, 국가 등에 따라 정해진 학파를 변경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 외에도 몇 개의 다른 수니 무슬림 학파들이 있다.


시아파의 경우 나름대로의 법학파를 형성하고 법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꾸란과 순나를 법체계의 기본으로 삼은 것은 일치하지만, 이즈마를 법원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시아파에서는 이즈마의 역할을 이맘의 독점적인 판결로 대신하였다. 현재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샤리아는 종교법과 가족법 등에만 적용되고, 나머지는 서구의 법체계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샤리아는 본래 종교와 세속의 경계가 없고, 신의 의지에 따르는 올바른 삶의 추구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 있으므로 무슬림 사회 및 개개인의 삶의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그를 추종하여 모인 무슬림에게 공동체가 지켜야 할 이슬람의 길인 샤리아, 이슬람 율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꾸란>을 한 곳에 모아 집대성하기 전에 죽었다. 무함마드가 죽은 직후에 무슬림의 법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무함마드의 사후에는 종교적, 정치적 권한을 계승한 칼리파가 대법관이 되었다. 그 후 이슬람 제국이 팽창되면서 각 지역마다 대표자를 뽑아 그들에게 법적 판결의 권한을 위임하였다. 이슬람 샤리아 법은 이슬람의 영토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이슬람 정복 초기 유대교인과 기독교인들은 딤마(Dimma)라는 피 보호 주민 계약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슬람 국가의 국민으로서 이슬람의 삶의 방식과 그 국가의 법을 이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유대교인과 기독교인들은 인두세라는 머리 수 대로 세금을 내야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이 세금이 무거운데다 사회 진출도 어렵기 때문에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도 했지만 대개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며 살았다. 이에 대한 일례로 2004년 요르단에 사는 아라비아 기독교인들은 혼인, 이혼, 상속 등에서는 교회법을 따르고 나머지 모든 일상생활의 상업 행위와 민사상의 행위는 요르단 국가 헌법인 이슬람의 샤리아를 따르고 있다. 무함마드의 행위 모범의 일부는 무슬림 윤리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무슬림은 <꾸란> 다음으로 무함마드의 행위 모범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행위 모범은 무함마드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를 그의 동료들이 그의 제자들에게 전달하고, 그가 다시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여 이렇게 전달된 일련의 내용들이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 혹은 무함마드의 행위 모범으로 알려진 <순나> 라고 명칭이 붙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슬람 <하디스>의 대부분은 소수의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이 듣고 보고 나서 다시 소수의 사람들에게 전한 내용이어서, 단지 절반 정도의 신뢰성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꾸란>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하디스>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이로 인하여 무함마드가 알라의 예언자로서 말하고 행한 <하디스> 내용은 그의 사후에 이슬람법으로 입법화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무함마드의 사후 무슬림 공동체는 다양한 성격의 여러 문제에 직면하면서 그 해법이 가지각색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언행들이 일치함을 방증하기 위해 무함마드가 생전에 무엇을 말하였는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것이 곧 <하디스>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내는 동기가 되었다. 정치적 사건과 종교적인 사항들을 이슬람 공동체가 합법화하기 위해서는 유추와 합의가 필요했다. 그리고 누가 이 말을 했는지 하는 그 근원지를 찾았다. 그래서 만약 이 말이 상당히 신빙성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판단되면 <하디스> 내용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당시 무슬림들은 서로 다른 지역별로 독자적인 입법 방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슬람법으로 입법화하는 과정에서 하나피파, 말리키파, 샤피이파, 한발리파 등으로 나뉘게 되면서 공통적인 법안을 발의하는데 상당히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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