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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반도의 역사, 크림 칸국 및 크림 타타르족의 이야기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4 23:04:01

원래 크림 반도는 고대 시대에 그리스 인들의 식민도시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곳에 스키타이가 이동해왔다. 그리고 스키타이 인들은 사르마트 인들에게 패배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크림 반도를 지배했다. 이 지역에는 또한 카프카스 계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9세기부터 하자르나 페체네그, 킵차크-쿠만 인 등 투르크계 유목민들이 흘러 들어와 살고 있었다. 이들은 몽골-타타르 인들이 모스크바 공국을 침략하기 오래 전부터 우크라이나 초원 지대의 진출을 노리고 있었으며 키예프 공국과 오랜 시간을 두고 대립하던 사이였다. 그래서 킵차크 칸국이 건국되기 전에도 이 유목민족들을 타타르 인으로 통칭하여 불러 오기도 했다. 그리스 인, 투르크계 알란 인과 기타 페르시아-아리안계 민족, 체르케스 인과 카프카스의 원주민 같은 여러 민족들이 크림 반도에 정착한 기타 투르크계 종족인 훈족, 하자르 족, 페체네그 족, 킵차크-쿠만 족 등 수많은 민족들이 혼혈하여 크림 타타르 인을 탄생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들 수많은 종족들 중에서도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종족은 킵차크-쿠만 인으로 알려진 폴로베츠 인이다. 

15세기 크림 반도와 드네프르 강 남부 지역의 지도,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11~12세기 폴로베츠 인은 볼가 강, 아조프 해, 흑해 연안의 초원 지대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점차 크림 반도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1241년 몽골-타타르 인이 러시아 남부에 침입하여 약탈하자, 폴로베츠 인과 키예프 공국은 서로 연합군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들 연합군들은 몽골군에 패했으며 당시 흑해 연안 북부의 폴로베츠 인 공동체도 몽골-타타르 인들의 공격으로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에 이들 폴로베츠 인들은 크림 반도의 여러 도시들을 건설하고 철저히 은닉하면서 기회를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1244년 크림반도 역시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에 함락되어, 크림 반도의 초원지대는 킵차크 칸국의 구성원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 시기 크림 반도에는 시린(Sirin), 아르긴(Argin), 바린(Barin) 등과 같은 타타르계 가문이 등장했으며, 이들은 후일 크림 타타르 귀족 계급의 중심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타타르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는 몽골군에 의해 세워진 국가에 거주하는 모든 투크르계 민족을 통칭 및 지칭하는 명칭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건국된 크림 칸국(Crimean Khanate)은 1430년, 킵차크 칸국의 시조인 바투의 동생으로 알려진 샤이반(Шибан)의 후손인 하츠 게레이(Hacı Geray)가 세운 국가로 바투의 부친인 칭기즈칸의 장남 주치의 왕비이자 바투와 샤이반의 모친인 울리치 게레이(Ulitsy Gearey)가 케레이트 옹칸의 누이인 바르볼트 케레이(Barbolt Gearey)의 후예로 알려져 있으며 주치의 결혼이 보르지긴 왕가와 케레이트 가문의 융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1433년 킵차크 칸국의 수도인 사라이에서 궁정 반란이 일어났다. 그와 더불어 당시 킵차크 칸국의 칸이었던 울루 무함마드(Ulugh Muhammad)는 칸의 자리에서 추방되어 아들 무스타파(Mustafa)와 함께 도주하게 되었고 이들 부자는 볼가 강을 따라 올라가 킵차크 칸국의 국경을 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부자들은 새로운 칸인 셰이드 아흐마드(Syed Ahmed)에게 굴복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볼가 강 상류와 카마 강이 만나는 카잔으로 도주하여 카잔에서 칸을 칭하면서 카잔 칸국을 세웠다. 


카잔 칸국의 주민들은 지배층인 몽골-타타르족과 볼가 불가르 인들의 후예인 추바시 인, 핀-우그르 계의 모르도바 인, 투르크계의 바시키르 인 등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울루 무함마드는 카잔 지역을 9년간 통치하며 모스크바를 자주 공략하여 약탈하였고 이 외에도 멀리 노브고로드까지 원정을 자주 다니곤 했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궁정 내부에서 반란이 발생하는 사태를 겪게 되었다. 반란을 일으킨 자는 아들인 무스타파였고 울루 무함마드는 아들에게 피살되었다. 이러한 내부 쿠데타로 인하여 무스타파의 동생 카심은 모스크바 공국으로 도주하게 된다. 이는 울루 무함마드가 막내아들인 카심을 총애했고 그를 다음 후계자로 낙점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무스타파는 부친과 카심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고 이는 무스타파가 노브고로드로 원정을 떠났을 때 촉발되었다. 무스타파는 동생인 카심을 처단하려 하였으나 카심은 이미 모스크바로 도주한 상태였다. 무스타파는 카잔 칸국의 칸이 되면서 모스크바 공국 내에서 벌어진 내전에 관여했고 바실리 2세를 반란을 일으킨 세력들에게 포로로 잡혀 눈을 뽑아 장님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일조를 했다. 


하지만 이 내전은 카심이 장님이 된 바실리 2세를 도와 카잔 칸국의 군대를 축출하고 반란 세력들을 모두 처형하면서 바실리 측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이 때 바실리 2세를 도운 공으로 카심은 그의 이름을 딴 카시모프라는 도시를 영지로 받고 카시모프 칸국, 혹은 카심 칸국이라는 일종의 모스크바 공국의 인정을 받고 슬라브 인들의 조종을 받는 국가를 건국하게 된다. 15세기 전반기 킵차크 칸국이 대거 붕괴되면서 크림 지역에는 독립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하츠 게레이(Hacı Geray)는 평소 킵차크 칸국에 불만을 가진 투르크 세력들을 규합하여 각 도시에 있던 킵차크 관리들을 축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크림 지역의 킵차크 관리들과 총독들은 1244년부터 1449년까지 존재했다. 그러나 1449년 크림 반도의 남쪽 연안과 인근 지역에서 킵차크 총독에 대한 반란이 발생하면서 수도인 사라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함으로 인하여 크림 킵차크 총독은 정부에게 별도의 허락을 받지 않고 군을 증강할 수 있었지만 반란이 발생하자 군대가 킵차크 총독에 모이지 않았다. 


그러자 킵차크 총독은 크림 반도 남쪽 연안을 반란 세력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마침 하츠 게레이가 크림 반도 서부 지역을 함락시키면서, 크림 반도 남쪽 연안의 반란군과 합세했다. 그리고 킵차크 정부군이 합류하기 전에 킵차크 총독과 몽골-타타르 세력을 축출하려 하였다. 하츠 게레이는 사라이와 지리적으로 멀다는 이점을 가지고 킵차크 총독의 군대를 드네프르 일대로 추방했고 하츠 게레이는 크림 반도 남쪽 연안의 세바스토폴에서 크림 칸국을 세웠다. 그러나 나라는 세웠지만 하츠 게레이가 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킵차크 칸국의 쿠축 무함마드(Küchük Muhammad, 1435~1459)의 반발이 가장 심했는데 1449년에 독립한 크림 칸국을 인정하지 않았다. 더구나 킵차크 칸국의 세력이 약해졌어도 드네프르 강 유역의 각 도시 군들은 여전히 킵차크 칸국에게 조공을 바치는 봉신국(封臣國)이었고 이들은 새로 건국된 크림 칸국을 자주 공격했다. 그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하츠 게레이는 제대로 된 칸으로 인정받고 안정적으로 즉위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폴란드-리투아니아 공국과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이어 모스크바 대공국을 상대로 동맹을 맺었으며 이들 드네프르 강 유역의 소(小) 공국들에 반격까지 가해 드네프르 중류 지역까지 점령하기도 했다. 하지만 킵차크 칸국의 군사들이 돈 강을 건너 드네프르 지역의 크림 군을 공격했고 이후에는 크림 반도의 길목인 헤르손(Херсон)이 포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하츠 게레이는 결국 포로들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강화해야했다. 얼마 후 킵차크 칸국의 세력이 다시 강대해지고 모스크바의 세력 또한 드네프르 일대로 확장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자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하츠 게레이를 구원하기 위해 블라디스와프 브레스트 대공이 4만의 정예병을 파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전쟁은 폴란드-리투아니아가 개입한 국제전이 되었고 하츠 게레이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원을 받아 드네프르 지역의 킵차크 군을 공격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군과 함께 킵차크 군의 본영인 자포리제(Запоріжжя)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킵차크 군은 패배하여 사라이로 퇴각했고 하츠 게레이는 자포리제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군의 호위를 받으며 칸으로 등극했다. 


이렇게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승인을 받아 칸이 된 하츠 게레이는 모스크바에 사신을 보내 자신의 즉위를 알리고 함께 킵차크 칸국을 공격할 것을 요청했다. 모스크바는 당연히 이 요청을 받아들여 군사들을 보내왔고 돈 강 평원 전투에서 모스크바-폴란드-크림의 연합군은 킵차크의 군대를 격파하면서 돈 강에서 완전히 축출했다. 이후 1450년 킵차크 칸국은 크림 지역에 약 10만 대군을 파견했지만 하츠 게레이는 배후의 카프카스 아르메니아 왕국, 오스만투르크와 동맹을 맺고 킵차크 칸국을 고립시켰다. 킵차크 칸국의 10만 군대는 오늘날 크림 서쪽 케르치(Керчь)에서 하츠 게레이의 크림 칸국의 7만 군대에 의해 케르치 해협을 도하하는 도중 상당수 수장되는 패배를 당했다. 당시 이들 중 2만의 몽골-타타르 군이 포로로 잡혀 세바스토폴로 압송되기도 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크림 지역에 거주하던 투르크계 귀족들의 노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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