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38185&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빨치산의 태평소 소리 좋아했던 미군, 국악의 전도사가 되다[이희용의 월드코리안 12] 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민족·국제 이희용(hoprave)▲가야금 타는 해의만만년의 해...
아랍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토후국들인 아랍에미리트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쿠라이시 가문과 카와심족이 세기적인 내전의 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내전 이전과 내전 이후의 아라비아 반도의 역사가 다르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물론 내전에서 카와심족과 팔라사족, 연합 종족이 페르시아의 세력을 끌어들여 승리로 이끌게 되었지만 쿠라이시 가문을 멸족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러한 쿠라이시 가문도 여러 씨족 가문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역사의 전면에 부각되었던 하심 가문은 쿠라이시 가문 중 가장 씨족의 세력이 떨어지는 가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멸족의 위기에서 벗어났는지도 모른다. 이후 하심 가문은 이슬람의 지도자 무함마드를 배출했고 무함마드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하심 가문을 쿠라이시 가문에서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를 배출한 가장 명망 있는 씨족으로 변모시켰다. 이후 무함마드는 메카에 입성하고 아라비아 반도 통일 전쟁에 나서게 된다.

7개의 토후국으로 구성된 국가, 아랍에미리트,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여기에서 가장 강력했던 종족은 이전까지 아라비아 반도 전체를 관리했던 카와심 부족이었다. 당시 카와심 부족도 7개의 토후 씨족이 구성되고 있었다. 이들 토후 씨족들은 바니야스와 팔라사 같은 동부 아라비아 해안 지대에 거주하던 부족들과 이미 자유롭게 통혼하고 있었고 카와심의 7개 토후 씨족들은 동부 아라비아 해안 부족들의 맹주가 되어 있었다. 이들 토후족들은 공격해 오는 무함마드와 신흥 무슬림 세력과 대결을 벌였지만 대부분 자연 지형을 이용한 무함마드의 전략에 의해 항복하고 무슬림으로 개종했다. 이후 이들은 정통칼리프 시대 이후로 카리지트 소속의 이바드 파가 남하함으로 인하여 이들에 의해 세워진 오만 이맘 왕국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오만 이맘 왕국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이들 토후 족들은 페르시아 만의 상권을 장악하고 해상 교역을 했으며 각 종족 위치에 맞는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했다. 특히 이들 7개의 토후 족들 중 3개가 해상 무역에 관여했으며 나머지 2개 부족들은 육상에서 대상 무역과 자체 수공업 및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한 농경에 의지했다.
그리고 남은 다른 2개의 토후족들은 아라비아해와 오만만, 페르시아만, 홍해, 인도양 일대를 장악하는 해적들이 되었다. 해적들은 약탈 경제를 통해 영위했으며 국적을 가리지 않았고 특히 서방 국가 함선 약탈을 주도했다. 그리고 동아프리카 일대에 거주지를 만들고 동아프리카 일대를 기준으로 해적질을 하면서 동아프리카 일대에 아랍 문화를 이식했다. 이러한 아랍 문화의 이식은 그 동안 문맹과 야만으로 치부되던 동아프리카의 현실을 변화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 대부분 문맹인 동아프리카 토착민들은 알라라는 절대적 신을 통하여 아랍어를 배우고 익히며 문맹을 탈출하게 되었다. 그러한 선진 문화의 이식은 지난 수백여 년 간 동아프리카를 문명과 전혀 이어질 것 같지 않았던 부족민들에게 문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이들은 동아프리카가 현재의 국가적 기틀을 다지게 하는데 공로가 있었다. 영국은 동아프리카 해안 뿐 아니라 아라비아 해, 페르시아 만까지 영향력을 확대하자 토후족들 중 가장 큰 두바이와 아부다비 지도자들과 마침내 1928년 7월 영국과 동맹을 위한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무려 1,000년 이상 지속되었던 오만 왕국의 지배도 종결되었다.
이어 나머지 토후 족들도 참여해 1931년 12월, 바이 지역의 주권은 모두 영국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이에 영국에 대한 반감을 가진 아부다비의 일부 토후 씨족 중 가장 강하게 반발한 가문은 알 사이드(Al-Saidh)로 이들은 기존의 오만에게서 독립하고 단독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었다. 결국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이 불리해지자 영국 정부는 이들 토후 족들에게 독립을 조건으로 참전을 요구했다. 따라서 이들은 영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오만, 인도 의용군에 소속되어 제2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참전하게 된다. 그러나 종전 후, 1946년 영국 정부가 약속을 철회하자, 대규모 반영집회 등 반발이 발생했다. 그들 중 지도자인 셰이크 라시드(Sheikh Rassid)는 그의 네 아들들과 함께 토후국들의 단합과 독립을 추진했고 당시에도 횡행하고 있던 해적 토벌에 대해 영국을 군사적으로 도움으로써 영국 정부에게서 조금씩 그 권리들을 인양 받아 국가 건설의 기초를 놓기 시작한다.
결국 영국 정부는 1960년 7개 토후 족들은 왕국으로 승인했고 이 때부터 7개의 토후국으로 불리게 된다. 이후 1970년 영국이 아라비아 해와 인도양에서 완전히 철수함에 따라 1971년 7개 토후국들을 중심으로 회의를 거듭한 끝에 연합을 결성하고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이 성립되었다. 셰이크 라시드는 즉위 시대부터 정치적으로 경제적 성장을 위해 두바이 지역에 대한 개발을 서둘렀다. 그리고 아들인 셰이크 막툼은 두바이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이를 개발하여 국가 경제를 급속도로 성장시켰고 이슬람 전제주의에서 다수의 외국인과 현지인들을 융합한 국제적인 국가로 성장하기 위하여 여러 정책들을 펼쳐 상당한 실효를 거둔다. 그는 1990년 뇌졸중으로 사망했지만 아랍 토후국들은 셰이크 라시드를 국부(國父)로 추앙했다. 뒤를 이어 즉위한 셰이크 막툼은 공공 도서관, 현대식 공원, 각종 스포츠 시설 등 사회 간접시설을 더욱 확충함으로써 아랍에미리트를 국제 경제의 중심으로 일구었다.
셰이크 막툼은 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여 수많은 서민주택을 건설하고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것에 일조함으로써 오늘날의 부유한 아랍에미리트로 만들게 되었다. 이러한 아랍에미리트에 미군이 기지에 주둔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였지만, 미 공군은 2017년 8월에야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2002년 1월 알다프라 기지가 창설되었고, 미 공군 제 380항공원정비행단이 주둔하게 되었다.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는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 지역에 주둔한 미군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처음에는 아부다비 상공에서 이란의 미사일이 요격되었지만 이후 전황이 심화됨에 따라 두바이 국제공항 착발편의 운행이 모두 중지되었다. 두바이 알 막툼 국제공항이 추가로 폭격당한 여파로 인해 결국 공항은 폐쇄되었다. 아랍에미리트 국방부는 1일 기준 공습으로 인해 자국민과 외국인을 합쳐 사망자 3명과 부상자 58명이 발생했다고 밝혔고 현재도 계속 공습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