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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이란 지역의 이단아 쿠르드족 이야기 - 4편 : 제1차 세계대전과 팔레비 시기에 자치를 약속받은 쿠르드족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4 23:26:21

제1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면서 이란은 중립을 선언했지만 전쟁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아시아 지역, 특히 중동에서도 페르시아 지역에는 기존의 영국-러시아의 협상대로 러시아는 남부 카프카스 지역의 영토를 더울 확보하기 위해 적극 움직였고 영국은 인도와 가까운 이란 남부 지역을 점령하는 것을 원했다. 러시아는 이전부터 이란의 입헌혁명 당시 이란 북부를 점거하고 있었으며 영국은 1914년 남부를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동맹국인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이란의 석유가 러시아로 가는 것을 차단하기를 원했으며 독일 제국은 러시아-영국 협상을 분열시키고 협상국이 가지고 있는 이란에서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적극 노력했다. 그 중에서 오스만투르크 전쟁부 장관인 이스마일 엔베르 파샤(Ismail Enver Pasha)는 범투란주의를 통해 아제르바이잔, 중앙아시아와 연결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겨 아시아 내륙 식민지 확보는 매우 늦다고 판단해 유럽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이는 이란 북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쿠르드족과 아제리족도 마찬가지였다. 

Kurds celebrating Newroz in Iranian Kurdistan, 2024, 출처 : Kurds in Iran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동방정보국(The Intelligence Bureau for the East)을 설립하여 러시아-영국 협상을 해체하기 위해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정보 습득 및 파괴하는 테러 임무를 실시했다. 작전은 빌헬름 바스무스가 이끌었다. 독일군은 이란을 영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해방하고 러시아와 영국 사이에 갈등을 더욱 심화시켜 결국 현지 군대가 영국령 인도를 침공하기를 바랐다. 협상국인 이란 내 주둔 중이었던 러시아와 영국, 동맹국인 오스만투르크와 독일이 이란-오스만투르크 국경에 집결하게 되면서 이 국경지대는 전쟁터가 되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접경하고 있던 이란령 아제르바이잔 북부 지역과 이란령 쿠르디스탄에서 주요 전투가 일어났으며 이란이 협상국에 합류하여 전투를 진행했고 여기에 쿠르드족들이 다수 활약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생하면서 1918년에 이란에서 완전히 철수했고 영국은 1921년까지 남아 있으면서 이란과 쿠르드족을 지원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이란 땅까지 확전되면서 농토가 황폐화되었고 결국 대기근이 발생했다. 이 때 약 200만 명의 이란인들이 기아로 사망했다.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가 스스로 물러나자 이란의 혼자 남은 세력인 영국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이란을 보호국으로 삼고 식민지화 하려했다. 1919년 영국-페르시아 협정이 맺어지면서 영국은 이란 카자르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어 불평등 협정을 맺었고, 영국 군대에 탄약과 장비 보급, 철도 건설, 관세 철폐 등 영국의 보호국이 되는 조약을 체결하게 되자, 친왕실 보수파들과 급진적인 개혁파까지 대규모로 시위가 발생했다. 이들의 목적은 영국에 맞서 독립하겠다는 것이었다. 영국은 이란 내 석유 산업이 사라질위기에 놓일까 불안해 했고, 이란 북부의 쿠르드족까지 반영시위에 참여하면 큰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소극적으로 레자 샤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이에 비용을 지원하고 사실상의 용인하게 되면서 팔레비 왕가로 하여금 서방에 의존하게 했다. 입헌 혁명 이후부터 시작된 권력 공백과 혼란이 심해지면서 1921년 레자 칸 장군은 페르시아 코사크 여단과 쿠르드족의 도움을 받아 2,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테헤란을 점령하는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잡았다. 


쿠르드족에게 실권을 잡는데 많은 정치세력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쿠르드족의 독립과 이란의 민주화를 약속하며 레자 칸 장군은 입헌군주제를 수립하였다. 1925년에 카자르 왕조의 마지막 샤인 아흐마드 샤를 폐위하고 의회에 의해 정식 군주로 팔레비 왕조의 초대 왕인 레자 샤가 되었다. 그러나 레자 샤, 팔레비 1세는 1930년대 전제 군주제의 면모를 조금씩 보이게 되면서 이란 민주화의 약속 또한 지키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쿠르드족을 관료에 상당수 등용했지만 쿠르드족을 독립시키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팔레비 1세의 사망 이후, 즉위한 팔라비 2세는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추방된 1953년 이란 쿠데타 이후부터 독재적 성격을 띄는 군주제로 변모하게 된다. 이 같은 과정에서 시위와 비판을 가했던 세력 중 이후 자신의 기반 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은 보수파를 숙청했고, 팔레비 2세 때 쿠데타를 도운 쿠르드족에게 자치를 약속했다. 팔레비 왕가의 통치기간 동안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개혁을 단행했는데 상당수의 개혁이 국민들의 불만을 야기시켰다. 그리고 이는 이란 혁명의 배경이 되었다. 


그 중에 특히 이슬람법을 서양의 법전으로 대체했는데 그 기반을 바이마르 헌법으로 했고, 전통 이슬람 의복을 금지했으며 성별 격리와 니캅으로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 것들을 금지시켰다. 당시 보수적인 무슬림 여성들은 이에 대해 저항했다. 그 이유는 자유로움보다는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측면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은 공공 히잡 금지에 저항하는 여성들에게서 차도르를 강제로 벗기고 찢었다. 이는 이웃인 터키 공화국의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가 했던 것과 정책은 유사했지만 강제성이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 서구화와 세속주의에 대한 반발로 1935년 고하르샤드 모스크 봉기(Goharshad Mosque rebellion)가 발생한다. 이 때 비무장 민간인들이 128명이나 죽고 200-30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800명 가량의 시민들이 체포되었다. 이 때 시위를 학대했던 경찰들 대부분이 쿠르드족이었고, 이들은 이란 시민을 학대했다. 그 영향으로 인해 현 이란 시민들의 쿠르드족에 대한 인상에 매우 좋지 않다. 


한편 정치적인 선거 및 투표는 팔라비 1세, 2세 가릴 것 없이 1943~1944년의 제2차 세계대전 페르시아 침공 시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부정선거로 의회가 구성되었다. 투표를 조작하거나, 정당을 마음대로 해산시켰고, 자신들이 만든 정당만 남기거나, 무소속 후보만 당선되게 만드는 온갖 부정행위에 선거 사기와 정당 탄압까지 판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란 의회의 권한이 축소되었고 동시에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게 만들었으며, 이러한 팔레비 왕가의 전제 정권은 아들이자 후임자인 팔라비 2세 때에 절정에 이르게 되었고 여러 폐단을 낳게 되었다. 이란은 팔레비 왕조 때도 자유 민주주의 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런 판국에 무슨 팔레비 시대가 자유 민주주의였다드니,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들에게 자유를 주었을 뿐, 정치는 독재였고, 인권과 언론탄압, 의회탄압은 오히려 호메이니와 하메네이 신정 정권보다 더욱 심했다. 게다가 팔레비 시절의 선거는 단 한 번도 정상적인 선거가 없었을 정도 부정선거의 끝판왕이라 불릴 정도였다. 한편 쿠르드족은 팔레비 정권에 부역하여 이란 시민들을 학대했기에 이들은 이란 시민들로부터 끊임없이 미움을 받고 있다. 


쿠르드족이 현 신정체제를 혐오하고 팔레비 왕가의 귀환을 반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현재 이란-미국 & 이스라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이라크와 이란의 쿠르드 지도자들과 전화 통화를 했고 이란과의 전쟁 및 향후 전개 방향에 대해 논의하면서 이들을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이란과 이라크 국경 부근에 수천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후제스탄 일대를 근거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이란에는 약 500만명의 쿠르드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쿠르드 병력이 테헤란을 향해 진격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중 지원을 펼치는 것으로 한다면 미국은 지상군을 굳이 파견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쿠르드족이 움직이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국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튀르키예, 터키이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가 에르도안과도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하는데 여태까지 미국의 말을 듣지 않았던 에르도안이 이번에도 말을 들을지는 알 수 없으며 쿠르드족이 움직이면 터키는 반드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이란은 쿠르드의 군사조직인 PKK를 터키와 연합작전으로 응징해왔다. 쿠르드족이 움직인다면 이란 또한 터키와 연락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전쟁이 길어진다면 터키가 아주 중대한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 전쟁을 매우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미국과 이란, 어느쪽으로 기울일 것인가? 참고로 터키는 나토에서 두번째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 필자가 이번 전쟁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터키 에르도안이 언제까지 중립을 지킬 수 있는지의 여부다. 터키가 미국에게 제재를 해제시켜주고 원만한 관계로 복원해준다는 것과 F-35를 추가로 준다고 하면 미국에게 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쿠르드족 때문에 골치를 썩여 온 터키인지라, 함께 쿠르드족을 소탕하던 이란과의 관계 등을 볼 때, 이란에게 기울 가능성도 높다. 에르도안의 최종 선택이 어쩌면 이 전쟁의 분수령이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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