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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쿠르디스탄의 쿠르드족 무장 조직인 페쉬메르가가 이란에 지상군을 내보내는 것이 가능할까?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5 21:00:39

현재 이라크 북동부와 이란 북서부, 터키 남동부에 걸쳐 있는 지역에 최근 경계령이 떨어지고 있다. 이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라크 쿠르드족 페쉬메르가 집단이 PKK와 접선 및 연동의 가능성과 더불어 이란으로 진격할 가능성 때문이다. 페쉬메르가와 PKK는 같은 쿠르드족의 무장단체다. 그런데 PKK는 사회주의성 이념의 목적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페쉬메르가는 오로지 이념이 아닌 순수한? 무장투쟁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 때는 ISIS 격멸을 위해 함께 했었지만 그 이념적인 차이 때문에 서로 결별했다.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 두 단체의 접선이 이루어졌고 이란 신정 정권을 상대로 연합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터키가 슬슬 움직일 공산이 클듯 싶다. 게다가 최근 아제르바이잔에 이란에서 출발한 미사일이 날아왔는데 아제르바이잔과 어떻게 호응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제의 용사’들도 IS와 전투 자원 이슬람 국가(IS)와의 전투에 자원한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군대 페쉬메르가의 예비역들이 북부 대도시 모술 부근의 카제르 마을에서 총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 EPA


최근 에르도안은 이란 전쟁을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전군에 경계령을 내렸으며 현재 터키군은 긴장 속에 집결되어 있는 상태다. 터키와 이라크의 국경은 남쿠르디스탄,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국경이다. 이 지역의 쿠르드족 인구는 약 150만 정도로 추산된다. 이 지역의 면적은 면적은 46,861㎢, 한국으로 보면 경상도와 강원도를 합친 크기다.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중심지는 아르빌(Erbil)로 과거 한국군이 이라크 파병 당시에 주둔했던 도시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원래 이 지역은 쿠르드족이 정착한 지역으로 터키와 이라크가 국경을 두고 갈라지기 전에 모두 쿠르디스탄으로 칭해지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영국군이 들어오면서 오늘날 터키와 이라크가 양분되는 관할 구역들이 재편되었다. 영국은 이라크를 식민지로 삼으며 당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이라크 쿠르디스탄을 떼어 내 이라크 영토에 합병해버렸다. 오늘날 터키와 이라크의 국경은 영국이 강제로 만들어 버린 인공적 국경이었기 때문에 터키 정부는 현재까지도 이라크 쿠르디스탄을 자국 영토로 인식하여 이라크 정부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터키-이라크 간의 해결되지 않은 영토분쟁이 있는 곳이 양국의 국경 지대이다. 이라크 쿠르디스탄에는 쿠르드족만 있는 곳이 아니라 터키인도 약 30% 이상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영국이 오스만투르크에게서 이라크와 터키를 강제로 분할해 버렸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이들은 PKK나 페쉬메르가가 나타나기 전까지 터키에 귀속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라크 쿠르드족들과 터키계 이라크인들은 영국이 후원하고 있었던 당시 이라크 왕국과 사담 후세인 정부에 수없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1960년에 제1차 이라크-쿠르드 전쟁이 발생하자 터키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외면하기 시작하면서 이라크 쿠르디스탄과 북쿠르디스탄은 터키 정부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들은 쿠르드 민족주의를 결성, 터키와 이라크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하게 되었다. 1970년에는 시리아 바트당 정부와 쿠르드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알레포 협정이 이루어져 쿠르드족 자치권이 이루어지게 합의했으나 1974년 제2차 이라크-쿠르드 전쟁으로 인해 이라크 정부에 크게 탄압을 받게 된다. 


이후 이라크 정부는 쿠르드 지역에 대해 강한 아랍화를 실시하면서 쿠르드 민족주의를 억누르고자 했다. 그러자 이에 대한 반발한 쿠르드족들은 저항하여 수십년 동안 또 다른 분쟁이 이어졌으며 이 분쟁에 페쉬메르가 세력이 주도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내전이 격발되었다. 이들은 PKK 조직과 연계하여 이라크 북부와 터키 동남부를 중심으로 테러와 게릴라 전을 감행했다. 특히 터키-이라크 국경 지대인 치즈레(Cizre) 인근 알 추디(Al-Cudi) 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본래 공산주의 성격의 PKK와는 달리 페쉬메르가는 이곳에 이슬람 근본주의까지 추가하여 알 추디 산을 무슬림의 성산(聖山)으로 만들고 성역화 하는데 성공했다. 알 추디(Al-Cudi) 산은 아라랏 산과 더불어 무슬림들에 의해 노아의 방주가 한 차례 정착한 산으로 여겨져 왔는데 이 산에 대한 무슬림들의 성역화는 페쉬메르가 세력이 알 추디 산을 장악하면서부터 이루어져 왔다. 알 추디 산을 중심으로 이란-이라크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와중에 1983년 또 다시 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더불어 이 일대에서 상당량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여기에 눈독을 들인 영국이 페쉬메르가를 지원하면서 이들의 무력은 급격히 강화되었다. 비록 1983년 봉기는 교착상태에서 끝났지만 이를 기억하고 있던 사담 후세인은 1988년 쿠르디스탄 토벌에 나섰다. 이 때 활약한 자가 이라크 대외정보국장이며 후일 "쿠르드족의 도살자"로 알려진 알리 하산 알 마지드(Ali Hassan Al-Majid, 1941~2010)다. 그는 화학 공격의 대가로 알려졌기에 그의 별칭이 케미컬 알리(Chemical Ali)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할라브자 지역에 화학 공격을 가해 4,000명 이상의 쿠르드족을 학살했다. 알 마지드의 주도로 이라크 군은 1983년~1988년 시기에 안팔(Anphal) 작전을 개시해 50,000~180,000명 이상의 쿠르드족을 학살했다. 그리고 1991년 걸프전쟁이 발발하자 페쉬메르가는 미군의 지원을 받았고 사담 후세인에 대한 봉기를 일으키면서 그를 압박해 후세인으로 하여금 다국적군에 항복을 앞당기게 했다. 당시 한 달 간의 분쟁으로 인해 이라크 쿠르드족은 수만 명이 사망하고 그 중에서 180만 명은 난민이 되어 각지를 떠돌았으며 대부분 이란-이라크 국경 지대인 후제스탄 일대에 정착해 살았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은 쿠르드 지역 남부의 봉기를 상당수 진압했으나 이라크 쿠르디스탄 대부분 지역에서 쿠르드족의 저항이 거세게 나타났으며, 걸프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이라크 쿠르드족들을 제압할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후세인은 쿠르드족과 합의하여 쿠르드 자치구를 세우는데 합의하면서 이라크 쿠르디스탄 자치공화국이 설립된다.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자 완전한 독립을 노리고 미국 편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쿠르디스탄이 완전 독립하는 것을 반대하는 터키와 이란의 반발로 인해 미국은 끝내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이라크 쿠르디스탄 자치 정부는 반발했지만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2005년 이라크 신(新) 헌법이 제정되자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더 많은 자치권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이는 전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덕이긴 하다. 페쉬메르가는 2014년에 ISIS와 맞서 싸워 어느 정도 전과를 올리기도 했으며, 2017년에는 쿠르드 지역에서 독립투표를 강행했으나 이라크의 강력한 경고에 이어 시위 중 작은 충돌이 일어났다. 그러나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를 허용하지 않아 결국 독립은 철회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도 다시 독립투표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 이란-미국 & 이스라엘 전쟁으로 인해 그 꿈도 무산되게 생겼다. 이전에 터키가 PKK에 대해 감시를 강화하고 이라크도 여기에 협력하게 되면서 작년 이라크 쿠르디스탄에 대한 합동 공격까지 논의가 오고가게 되자 급해진 페쉬메르가는 PKK와 공조를 요청하게 되었다. 그러나 에르도안과 압둘라 외잘란의 사형 중단을 두고 협상을 벌인 PKK가 상당수 무장을 해지한터라 여기에 응하지 않게 된 상태에서 현 이란-미국 & 이스라엘 전쟁 때 트럼프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과연 이라크 영내에 존제한 페쉬메르가가 이란으로 진격할 수 있을까? 미국-이스라엘과 페쉬메르가의 합동 공격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페쉬메르가는 다시 PKK와 접선 및 연동할 수 있을까? 사실 페쉬메르가의 전력은 고작 2,000~3,000명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군대가 단독으로 이란을 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따라서 PKK가 재무장하거나 아니면 후제스탄의 쿠르드족이 호응하게 된다면 적어도 역 15,000명 정도의 지상군은 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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