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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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르 대공을 살해하고 키예프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전진했으나 드레블리예 부족에 합세했던 일부 슬라브 부족들은 올가에 의한 대병을 거느리고 공격할까 두려워했다. 이들은 키예프를 공격하는 것에 대하여 상당히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급기야 드레블리예 부족을 배신하고 살 길을 찾을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드레블리예 부족들은 키예프 진군을 포기하고 키예프의 섭정이 된 올가에게 자신들의 공후인 마르(Мал)와 결혼한다면 그들이 관할하는 영토는 더욱 강대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마네쥐 광장의 러시아인들,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묘수를 찾았다고 생각한 드레블리예 부족들은 올가에게 사신을 보내 마르 공후와 결혼할 것을 제안했다. 드레블리예 부족들이 보낸 사신의 제안을 듣는 척하던 올가는 그들에게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올가는 다음 날 아침에 사신을 보낼 것이니 그들과 함께 자신에게 오라고 말하면서 사신들을 안심시킨 이후 병사들에게 궁전 앞마당에 아주 크고 깊은 구덩이를 파라고 지시했다.
하루가 지난 후 올가는 사람을 보내 드레블리예 사신들을 불러냈다. 올가의 부하들은 걸어서 올지 배를 타고 드레블리예 사신들에게 묻자 드레블리예 사신들은 배를 탄 상태로 궁전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올가의 부하들은 사신들이 탄 배를 들고 키예프로 들어왔고 사신들이 키예프의 궁전으로 들어오자 올가의 부하들은 구덩이에 배를 던져버렸다. 배 안에 있던 드레블리예 사신들은 구덩이에 빠지게 되었고 올가는 그들을 산 채로 매장하라고 지시했다.
첫 번째 복수를 끝낸 이후 올가는 드레블리예 부족들에게 사신을 보냈다. 올가는 사신을 통해 마르 공후와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대신 드레블리예 부족들 가운데 연로하고 존경받는 인물들을 키예프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드레블리예 부족들이 사는 곳으로 갈 때 미리 그들의 풍습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사신들의 운명을 모르는 드레블리예 부족들은 마르 공후와 결혼한다는 올가의 말을 믿고 마을의 수장들을 키예프로 보냈다. 올가는 키예프에 도착한 드레블리예 부족들에게 피로를 풀라며 목욕할 것을 권했고 그들이 목욕탕에 들어가자 올가는 문을 폐쇄하고 목욕탕을 불태워 수장들을 모두 화형에 처했다.
두 번째 복수를 마친 직후 올가는 다시 사신을 보내 자신은 벌써 드레블리예 부족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며 자신을 마중 나오기를 요청했다. 러시아 연대기에 의하면 약 5천 명의 드레블리예 부족들이 올가를 만나기 위해 나왔다고 한다. 드레블리예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올가는 남편 이고르의 추모식을 거행했다. 추모식이 끝나고 그들에게 술을 먹이고 취해 잠이 들었을 때 올가는 그들 모두를 참수했다.
세 번째 복수를 마친 올가는 드레블리예 부족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본거지인 코로스텐(Korosten)으로 갔다. 이 때 올가의 복수를 알고 드레블리예 부족들은 사력을 다해 성을 방어했다. 드레블리예 부족민들이 사력을 다해 성을 방어하자 여름 내내 코로스텐 성을 포위하고도 점령하지 못한 올가는 다른 전략으로 선회하게 된다.올가는 성을 지키는 드레블리예 부족들에게 항복한 사람들은 세금을 내면서 농사짓고 있다며 성을 지키다 굶어죽느니 차라리 세금을 내고 농사짓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세금을 내고 싶었지만 올가의 복수가 두려웠던 드레블리예 부족들은 복수가 끝났다는 올가의 확답을 듣기를 원했다. 그녀는 복수는 끝났다며 화해를 요청했고 화해의 상징으로 드레블리예 부족들도 각 가정마다 비둘기 세 마리와 참새 세 마리를 가져오라고 요청했다. 진정으로 복수가 끝났다고 생각한 드레블리예 부족들은 올가의 요구를 들어줬고 올가는 드레블리예 부족들이 보낸 새들의 다리에 유황을 묻힌 끈을 묶고 끈에 불을 붙여 새들을 성으로 돌려보냈다.
성으로 돌아간 새들 때문에 코로스텐 성은 내부에서 화재로 인하여 대혼란으로 이어졌다. 화재를 피해 성 밖으로 나온 부족민들은 올가의 병사들에게 살해당했고 나머지 부족민들은 모두 불에 타 죽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부족민들은 모두 올가의 노예가 되었다. 올가의 복수는 이렇게 하여 끝나고 드레블리예 부족은 이후로도 키예프 공국에서 가장 하층 계급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몽골 제국에 의해 키예프 공국이 멸망할 때까지 이와 같은 노예 생활을 지속되었다.
이와 같은 사태를 두고 러시아 인들은 오랫동안 그녀의 이러한 복수를 칭송하면서 그녀를 ‘지혜로운 러시아 여성’ 의 상징처럼 여겼다. 이처럼 일단 복수전을 성공시킨 뒤 올가는 드레블리예에 협력한 슬라브 부족들을 여러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에 징세 관을 보내서 세금을 걷게 했는데 각 지역 공통의 세율과 세법을 정해서 징세 관들의 자의적인 징세를 막았으며 징세의 횟수를 한 해에 한 번으로 한정해 드리블리예 부족에 협력했던 기타 슬라브 부족들의 원성을 낮추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들은 슬라브 부족들의 성공적인 재통합으로 이어졌다.
키예프 공국의 역사에 있어 올가의 이름을 특별히 기록하게 만든 것은 이러한 성취들이 아니었다. 올가의 기독교의 수용은 그동안 다신교를 믿었던 슬라브 인들의 종교적 통합을 위한 정치적인 방편이었다. 올가는 957년에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하고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환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정교회의 세례를 받았다. 올가는 자신의 기독교 수용을 계기로 자신의 백성들도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