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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최고 지도자(라흐바르) 등극과 의미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5 21:13:30

1. 라흐바르와 선출방식

오늘 이란에서는 제3대 최고 지도자인 라흐바르(Rahbar)가 선출되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초기에는 시아파 성직자 중 최고위 지위인 마르자에 타글리드(مرجع تقلید)만이 라흐바르로 선출될 수 있었다. 마르자에 타글리드의 다른 말인 대(大) 아야톨라(Ayatollah al-Uzma)로 대 아야톨라는 아야톨라 중의 수장으로 이슬람 시아파에서 최고위 성직자에게 부여되는 칭호다. 그러나 1989년부터는 시아파 신학자라면 누구나 라흐바르로 선출될 수 있도록 선출 자격이 완화되었으며 이는 1대 라흐바르인 루홀라 호메이니가 알리 하메네이에게 합법적으로 라흐바르를 이양하기 위해 법을 개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제3대 최고 지도자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선출되었다. 출처 : SBS

라흐바르의 임기에 대해 이란 헌법에 의하면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절대적 통치권은 시아파에서 믿는 예언 중 하나인 마흐디(Mahdi)가 현세에 재림하기 이전까지로 명시되어 있다. 마흐디(Mahdi)는 알라 신의 대리인으로 12이맘 중, 사라진 12번째 이맘을 지칭하는 칭호다. 마흐디는 시아파의 메시아격 인물로 여겨지며 불교에서는 미륵과 유사하고,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이자 구세주를 의미한다. 즉, 라흐바르는 구세주의 대리인으로서 통치하는 셈이며 마흐디가 재림하기 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통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라흐바르의 임기는 종신직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할 수 있다.

이란은 표면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 정치 체제이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법학자 체제로 나타난 신정국가다. 이와 같은 체제에서 종교 지도자는 신의 대리인으로 나타나며 무려 대통령보다 지위가 높다. 라흐바르는 국민의 정신적 지주인 종교 지도자를 넘어 국가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통치자다. 라흐바르는 실질적으로 군주와 비슷한 권한과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란은 명목상으론 공화국이기 때문에 라흐바르는 군주가 아니다. 다만 전제군주에 가까운 권한과 위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화제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라흐바르는 우선 세습직이 아니며 다른 이란 국민들과 동일하게 법 앞에 평등하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전임 라흐바르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라흐바르는 전문가 의회를 통한 간선제 형식이지만 선거로 선출된 이들의 투표로 다음 라흐바르를 선출하게 되어 있다. 이들 전문가 집단은 8년 임기를 가진 이맘들이고, 이들은 각 지방 대표들로써 총 8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88명의 근거는 정통칼리프 시대 마지막 칼리프인 5대 칼리프 무함마드 알리가 비참하게 사망하자, 그의 후손인 후세인을, 시아파 대표 88명이 모여 칼리프에 선출한 전통에서 기인한다. 게다가 이들 대표들은 국민들이 직접 선거로 선출한 이맘들이다.

이들 88명의 이맘들은 '전문가회의(Assembly of Experts)'에서 투표를 통해 아야톨라(Ayatollah) 칭호를 갖춘 성직자 중에서 임명되는데 이란 헌법 제107조 및 108조에 의거하여 다수결로 이루어진다. 

2.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라흐바르 당선 

이번에 제3대 라흐바르 전문가 회의 투표에서 알리 하메네이의 아들은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88표, 만장일치로 당선되었는데 이번 만장일치 당선은 호메이니와 알리 하메네이 때도 없었던, 최초의 사례였다. 아마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국난의 위기로 인해 모든 리더십을 모즈타바에게 몰아준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라흐바르는 무제한의 임기에다가 사실상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모두 지닌 절대권력자다. 다만 실제 실무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나누어 행사한다. 

이란은 그래서 유일하게 국무총리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따라서 라흐바르가 절대 권력자여도 모든 권한을 맡아 행사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와 권력 분립은 현재 같은 전쟁의 위기 속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는 하메네이 참수 작전 당시, 하메네이를 참수하는데 성공했어도 이란 체제가 곧바로 대체제를 가동하여 오히려 체제를 굳건히 유지했는데 이같은 권력 분립이 큰 원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결국 알리 하메네이를 세습한게 아니냐고 하는데 본래 이란 헌법으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습이 금지되어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하메네이 생전에 후계자로 예측되었던 인물들이 대부분 미국의 폭격이나 헬기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행해진 조치였다. 게다가 아버지가 알리 하메네이였을 뿐, 모든 라흐바르의 적법한 승계 요건은 모두 갖추고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게다가 56세로 나이도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고 적당하다. 

3.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생애

모즈타바는 1969년에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이맘으로 교육받으며 자랐다. 그는 테헤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87년에 혁명수비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 이 때부터 그는 군에서 실력자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이란 정계에서 알려지게 된 것은 강경파였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Mahmoud Ahmadinejad)의 2005년 대통령 당선을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라흐바르인 아버지 알리 하메네이의 아들이 지원한 아마디네자드 큰 득표차로 대통령 당선에 성공했다. 이같은 사건을 계기로 하여 모즈타바는 정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추천으로 그는 바시즈(Basij)의 고위 직책을 차지했다. 

바시즈는 혁명수비대 사설 민병대로 관제 시위를 포함한 이란 국내 여론 조작과 세속주의 집단에 대한 강압적인 행위로 악명을 떨쳤던 조직이다. 그는 사업적인 수완도 대단했는데 막대한 돈을 벌어 들여 자산가가 되었다. 이와 같은 막대한 자금으로 인해 부친인 알리 하메네이가 늙어 가면서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게 되었고, 이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Ebrahim Raisi)가 2024년 5월 헬기 추락 사고로 인해 사망하자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모즈타바에 대한 국민들과 의회의 인식은 그가 부패한 사업가로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가 한 각종 사업들로 인해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악명 높은 바시즈에서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부분으로 인해 이란 일반인들에게 있어 모즈타바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다. 따라서 모즈타바는 대통령 후보를 포기하고 이는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미국-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인한 지도부 공백 문제로 인해 강경파를 대두시켜야한다는 여론이 크게 작용했고 이런 상황에서 모즈타바가 등판했다. 모즈타바의 성향 또한 강경파로써 나름 유화적인 면이 있었던 알리 하메네이와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모즈타바에게 가족 대부분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당했다는 점에서 라흐바르 투표 당시 상당한 동정표를 얻은 것으로 보여진다. 

새로운 차기 지도자가 뽑혔고, 이란은 장기전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기 위한 모든 행정적 절차를 마무리했다. 앞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은 모즈타바를 노리고 수많은 사보타지를 감행할 것이다. 물론 모즈타바가 잘 살아 남아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가 표적이 되어 죽는다 해도 또 다른 대체자가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표적 제거를 한다해도 결국 전쟁의 마무리는 지상군이 깃발을 꽂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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