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38185&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빨치산의 태평소 소리 좋아했던 미군, 국악의 전도사가 되다[이희용의 월드코리안 12] 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민족·국제 이희용(hoprave)▲가야금 타는 해의만만년의 해...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에 공식적인 항복 선언을 하고 정권을 탈레반에 이양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전쟁은 정확히 20년 만에 미국의 완전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이 목표 달성에 완전히 실패한 전쟁이 바로 이 전쟁이다. 지난 베트남 전쟁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미국이 이 전쟁을 모병 위주로 전환한 뒤, 전사자가 3,800명, 베트남전의 58,000명과 비교해 볼 때 17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미국 사회에 직접적으로 준 악영향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베트남 전쟁보다 그 피해가 줄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그러한 악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미국의 납세자들은 참전용사들이 모두 사망할 때까지 보훈 복지를 하기 위해 상당한 양의 세금을 앞으로 수십년간 추가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분에서 이전 전쟁들과 동일하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알카에다를 비롯한 저항세력을 제거한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미국에 우호적인 정부를 수립시키는 정치적 목표가 들어 있었으며 전쟁 후반에는 중국의 확대를 견제하는 경제, 외교적인 목표가 들어있었다.

탈출하기 위해 날아오르는 미국 공군 수송기에 매달렸다가 지상으로 추락사하는 모습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의 혼란스러운 모습. 국내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 탈출러시와 비교되기도 했다. 출처 : 한려투데이(http://www.hanryeotoday.com)
전쟁 초기 미국은 군사적으로는 성공했으나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으로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그런 결과로 인해 군사적인 승리까지 허사가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 전쟁은 시작 자체부터 베트남 전쟁과는 달리 9.11 테러 직후 미국의 분노와 복수로부터 시작되었던 준비성과 전후 플렌을 갖추지 못했었고 테러의 중심인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전쟁 선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거부하자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으로 승화되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미국이 가지고 있던 계획은 북부동맹을 비롯한 무장 세력들에게 무기를 주고 탈레반과 전투를 벌이게 하여 내전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이 전부였고 사상 초유의 공격을 받아 보복 공격을 하는 상황에서 한달만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킨 후 어떤 국가를 세울 것인가에 대해 계획을 세우기에는 매우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후일 벌어진 이라크 전쟁조차 몇 년의 준비 시간을 갖추고 전쟁을 벌였지만 계획과 실제가 맞지 않아 여러 혼란을 겪고 승패와 상관없이 실패한 전쟁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는데 한 달도 채 안 되는 준비기간 동안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후 아프가니스탄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에 대해 계획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는 것 자체는 성공하긴 했으나, 오사마 빈 라덴조차 없어진 상황에서 정부가 없어진 아프가니스탄에 새로운 정부를 세워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이러한 와중에 부시 정권은 아프가니스탄 전체가 제대로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라크 전쟁을 벌이는 우를 저지르게 된다. 결과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시작부터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레반을 축출하고 새로운 정부의 수립을 지켜보기도 전에 미국은 이라크에 전쟁을 선포하여 사담 후세인을 공격하는 등, 아프가니스탄 국내 문제에 대헤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부정부패와 내부분열 등으로 파멸되어가는 것을 보게 되자 그때서야 아프가니스탄의 치안과 정부 재건에 큰 돈을 투자하였으나 사태는 그런 막대한 돈으로만 해결하기엔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전쟁 막바지에 아프가니스탄을 미국에 우호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단 한번도 서유럽식 민주주의 경험한 적이 없었고 왕정과 권위주의, 그리고 공산주의와 무자헤딘 정권 하의 대혼란이 있었으며 탈레반 독재 정권으로 점철되어진 지도자들의 독재에 익숙한 국가이자 민족이었다.
게다가 카불에서 벗어나면 부족 중심의 사회였고 이런 아프가니스탄이 단기간에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애초에 민주주의 정권은 국민 스스로 쟁취하여 그들의 뜻에 따라 세워지는 것이지 외세가 대신 세워준다고 하여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오랜 기간동안 내전이 존재했으며 1996년부터 탈레반이 집권하여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정책을 시행하였기 때문에 모든 국민들이 제대로 된 공교육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카불 외곽부터는 아프가니스탄의 부족 체제가 존재했기 때문에 혈연, 지연을 기반으로 한 연고주의 문화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어 카불 정권과의 통합이 매우 어려웠다. 거기에다 지역, 민족마다 언어가 달라서 표준어인 파슈툰어가 아프가니스탄 국토 전반에 자리잡지 못했으며 근대적 교육의 부재로 문맹률이 매우 높았다. 교육받지 못한 국민들은 일부 유력자의 부정부패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리 없었다. 따라서 이전부터 이어오는 악습이 계속 되풀이 되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행정부를 도와 서유럽식 현대 국가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는데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부패 문제로 인해 경제 개발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됨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를 타파하려 헸던 아슈라프 가니의 정권의 노력으로 아프가니스탄의 경제력이 약간 올라갔지만 지속적인 민심의 이반과 더불어 내부의 부정부패, 그리고 탈레반을 격파하고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구성한 북부동맹 군벌 상당수 역시 실질적으로 또 다른 이슬람 원리주의자 집단이었고 그 역시 부패가 일상화되어 있었고 대다수가 부도덕한 인물들 집단이었다. 북부동맹을 형성한 무자헤딘 군벌들은 처음부터 세속주의자들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 시절 공산정부의 탈 종교화와 세속화 기조에 맞서 봉기했던 이슬람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 또한 탈레반과 별반 다를게 없었던 것이다.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이슬람 극단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파키스탄, 아랍에미리트, 터키 등으로 난민이 되어 흩어지게 되었다.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계속 해외로 이탈하는 반면 탈레반의 구성원들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 충원되는 상황이 이어지게 되었으며 IS나 알카에다 등의 테러단체의 일원들도 속속 탈레반에 합류하여 충성을 맹세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의 경제발전을 위해 미국이 전달한 엄청난 지원금은 고위 관료들의 해외 계좌로 나가버리고 지원금 횡령 및 이슬람 근본주의 문화로 근대적 교육을 위한 예산은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고, 문맹률은 여전히 높았으며 국민의식은 형성되지 못했다. 그리고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들에게 폭격으로 인해 민간인 학살 범죄 등을 자행해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민간인 여론이 소멸하여 미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변하게 되었다. 미군은 이라크에 많은 병력을 투입했기 때문에 치안 안정과 더불어 험준한 아프가니스탄 지형, 그리고 미국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비협조적인 카불 외곽 부족들 등으로 인해 탈레반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했다. 병력 부족으로 인해 증원도 못하고 있다가 이라크 철군 결정을 내리는 오바마 행정부 때에 와서야 이라크에 주둔된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증원되면서 변화가 생기긴 했다. 물론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주둔하면서 이루어졌지만 상황 반전은 매우 어려웠다.
더 문제인 것은 이라크 전에는 40만 정도의 병력 투자가 요구되었던 것에 비해 아프가니스탄 주둔 총병력은 2009년도부터 1차 1만 7천 명, 2차 3만 명 증원이 이뤄진 후에도 최대 12만 명 내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력 부족은 여전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현지인의 문화에 대한 몰이해, 갑작스럽게 결성된 공격과 더불어 탈레반 정권 이후 정부의 후속 조치 부재, 그리고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관심이 이라크에 쏠리면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관심이 식었다는 점, 그리고 주둔 병력 부족으로 인해 탈레반 완전 소탕 실패와 카불 외곽 아프가니스탄 부족들간의 연계 실패, 수많은 물자를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지원했음에도 부정부패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실패했다는 점, 민간인 지역에도 폭격을 감행해 민간인들의 민심이 미국에게서 완전히 이반되었다는 부분 등을 들 수 있다. 결국 미국은 철수했고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탈레반의 통치 체제 하에서 일부 반군들과의 내전을 남겨두었지만 지금은 모두 정리되고 탈레반의 통치 체제에 접어들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
미국 육군이 최정예 공수부대 지휘부의 대규모 훈련을 최근 갑작스럽게 취소하면서, 이들의 대 이란 지상전 투입설이 확산되고 있다. 지상 전투와 특수 임무를 전문으로 하는 제82 공수사단에서 작전의 계획과 실행을 조정하는 핵심 본부 부대의 훈련이 이번에 취소되었고, 사단 소속 다른 병사들은 루이지애나 주에서 훈련 중인데, 해당 본부 요원들은 훈련에 참여하는 대신 본거지인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잔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이들에 대한 공식 파병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다만 육군이 조만간 제82공수사단 소속 헬기 부대의 중동 배치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 하며 실제 배치는 늦은 봄에 이루어잘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늦은 봄이라는 것은 늦어도 5월을 말하는건데 그 사이에도 전쟁이 지속될 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2020년 이란의 군부 실권자였던 솔레이마니를 참수하는 작전을 벌였을 때, 이 부대가 이용된 바 있는데 이 부대의 역할이 테헤란의 국가 주요 건물들을 장악하고 혁명 수비대의 고위직 장교들을 제거한 다음, 최고 지도자인 모즈타바마저 제거하고 끝을 낸다는 전략이 유력하다. 지난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포 작전 때와 유사한 전략인데 이란은 베네수엘라가 아니다. 베네수엘라보다 몇 십배 강한 지상군을 갖고 있으며 테헤란을 수성하는 수도 경비 부대 또한 매우 강력한 부대로 알려져 있다.
지상군 투입이라는 것이 고작 공수부대 같은 형식이라니 이란 입장에서는 언제든 기다리고 있겠다는 입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투입이 가능해질까? 다 모여야 5월 쯤에 배치된다는데 전쟁은 그 안에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