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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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중상(Blood libel)은 중세 유럽, 반유태주의적 소문으로 유태인들이 카톨릭 신도의 어린아이를 유태교 예식을 위해 살해한다는 소문을 말한다. 근현대 시대에 포그롬으로 인해 유태인들을 대량 학살한 러시아에서도 유태인에 대한 피이 중상의 루머가 있었고 독일의 나치도 유태인들을 척결하기 위해 피의 중상을 선전했을 정도였다. 11세기까지 유럽에서 유태인에 대한 박해는 제도적이거나 공식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발적인 사건들이 대부분이었고 이 때만 해도 유태인들을 향한 정부 차원의 박해는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2세기부터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는 종교적 동기를 갖고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사건의 발단 중 하나가 '유태인들은 영아를 납치하여 살해한다'는 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1144년 잉글랜드 왕국의 노리치에서 한 소년이 실종되었는데 기독교로 개종한 한 유태인이 유태인들의 유월절 의식에 쓸 무교병을 만들 때 기독교도의 피를 넣어야 해서 기독교도 아이를 납치, 살해했다고 증언한 것이 발단이다.

This photograph, taken in Le-Perreux-sur-Marne, outside Paris, on February 9, 2026, shows undated pictures provided by the U.S. Department of Justice on January 30, 2026, as part of the Jeffrey Epstein files. / VCG
그런데 해당 사건이 유태인에 대한 폭력으로 확대되기 이전에 소년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소년의 몸에 상처나 피를 빼낸 흔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한 번 생겨난 소문은 사라지진 않았다. 그 때부터 유태인은 유태교 의식에 그리스도교 영아를 인신공양한다는 루머가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고 이는 세기를 더할수록 여러 버전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파리에서는 유태인이 경영하는 양장점의 탈의실에 여성 혼자 들어가면 납치, 살해된다며 구전되기도 하였다. 특히 오를레앙 괴담이 대표적인데 1969년 5월, 한 여자가 오를레앙의 어느 부티크 지하에 있는 탈의실에 들어가면 최면성 약품을 주사당한 뒤, 외국 매춘업자에게 팔려간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느 부티크였지만 점차 오를레앙의 모든 부티크로 설정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범행의 주체가 유태인이라며 확대 재생산되니 단순한 도시 전설이 반유태주의로 번지면서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식되어 급속히 퍼졌다. 물론 유태인을 박해하려는 헛소문이라 밝혀지면서 가라앉았지만 그 후에도 장소만 오를레앙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바뀌었을 뿐, 유태인에 대한 포그롬은 계속되었다.
12~13세기의 카톨릭 교회에서는 유태인들이 인신공양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는 소문과 그 전파 속도가 워낙 빨라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를 금지하는 칙령들을 교황이 여러 차례 내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는 민중들에 있어 여전히 믿고 있는 상태였고 교회도 그 흐름을 거부할 순 없었기 때문에 트렌토(Trent)의 성 시모네(Simone)라는 성인은 유태인들에게 살해된 아기 순교자라고 시성되기도 했다. 이후 1903년 앞서 포스팅했던 키시네프 포그롬에 이어 카를 케슬러(Karl Keßler) 사건이 발생한다. 1929년 3월 17일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이 지배하던 독일 남부에서는 카를 케슬러(Karl Keßler)라는 이름의 4세 아이 시신이 숲에서 발견되었는데 시신은 목이 잘리고 피가 뽑힌 상태였다. 이를 두고 율리우스 슈트라이허(Julius Streicher, 1885~1946)의 나치 선전지 돌격대(Der Stürmer)는 이를 유태인들이 살인 의식(Ritualmord)을 치뤘고 그에 대한 희생자라 주장했다. 또한 나치는 카를 케슬러를 추모하는 비석도 남겼고 반유태주의 시위를 일으켰는데 이에 주동적 역할을 한 인물은 오토 헬무트(Otto Hellmuth, 1896~1968)라는 인물이었다.
당시 카를 케슬러가 살해된 날은 하필이면 유월절과 가까운 날이었고 검시관은 여기서 제의(祭儀)적인 살인(Ritual murder)이 일어났고 이에 대하 사건을 검시하고 있다며 말했다고 한다. 카를 케슬러 사건은 사법 기관이 결론을 내리지 못했으며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반유태주의는 더욱 확산되었으며 살인 다음날 호펜하임(Hoffenheim)에서 온 유태인의 정육점이 없어진 것이 큰 의심을 불러왔다. 이 외에도 나치가 유태인의 살인 의식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면서 반유태주의 선동의 소재가 된 인물은 한스 페이제(Hans Fehse)와 에리카 페이제(Erika Fehse), 헬무트 다우베(Helmut Daube), 마르타 카스파르(Martha Kaspar) 등이 있다. 한스 페이제(Hans Fehse)와 에리카 페이제(Erika Fehse)의 시신은 1926년에 브레슬라프(Breslav) 광장에서 발견되었는데 시체에는 피와 성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한다.
이에 범인은 유대인 정육업자가 의심되었으며 그 역시 없어졌다고 한다. 헬무트 다우베(Helmut Daube)의 시신은 1928년에 발견되었다. 마르타 카스파르(Martha Kaspar)의 시신은 1932년 발견되었으며 유태인 모리츠 마이어(Moritz Meyer)가 당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피의 중상은 21세기에도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2020년 이탈리아의 화가 조반니 자스파로(Giovanni Gasparro)는 트렌트의 시몬을 묘사한 그림을 그렸는데 해당 그림에서 유태인은 반유태주의적인 이미지인 매부리코에 웃으면서 잔혹한 의식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엄청난 유태인들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현대의 아랍권에서도 피의 중상 신화가 방송, 서적 등을 통해 전파된 바 있기에 이는 유태인에 대한 증오 범죄로 연결되었다. 이는 다소 폐쇄적인 유태교 예배와 의식, 유태인들의 선민사상에 대한 배격 등에서 이어진 또 다른 형태의 포그롬이라 볼 수 있는데 그로 인해 수많은 음모론들이 만들어지고 확대, 재생산 되었다. 그러나 엡스타인 파일 등으로 나타난 내용들로 볼 때, 피의 중상(Blood libel)과 같은 인신공양적인 행위들이 사실일 가능성도 염두해 두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