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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때 미군을 돕다가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몽족의 사례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5 21:26:11

- 쿠르드족이나 발루치족은 베트남 전쟁 당시 몽족의 사례를 참고해야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베트남 공산정부에 반감을 가진 소수민족들을 찾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몽족이었다. 몽족들은 대부분 베트남과 국경지대였던 라오스 산간지대에 거주했는데, 식민지가 되기 전에는 동남아시아의 강력한 국가였던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기 전, 이 지역을 자주 침략했고 당연히 몽족은 베트남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미군은 북베트남의 후방인 라오스 산간 지역이라는 전략적인 장점과 베트콩들 못지 않게 현지 지형에 익숙하고 이들이 가진 반 베트남 감정에 주목했다. 그래서 이들 몽족에게 승전 후의 보상을 약속하며 미군을 위한 전투기 비행장 건설과 북베트남에 대한 첩보 활동 등을 지시했고 지시 사항을 이루었을 때 많은 경제적인 보상을 해주었다. 

Three Hmong child soldiers in service with the American-backed Secret Army, Laotian Civil war, 1953-1975  

그래서 몽족들은 전쟁 내내 다양한 게릴라 작전을 수행해 북베트남을 교란시켰다, 본격적인 게릴라들을 처리하는 게릴라들인 몽족들은 자신들의 국가 건설을 기대하며 베트남 전쟁에 매우 열성적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미군들은 이들이 남베트남 정규군보다 사기도 높고 역량도 더 우수하다고 판단하여 이들과 작전하기를 선호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은 시종일관 미군이 밀리는 양상으로 계속되었고, 북부에서 작전보다는 남베트남을 방어하는데 총력을 기울인 미군이 몽족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전쟁이 미군의 패배로 끝나면서 1973년 완전히 철수하던 미군들은 몽족을 적극적으로 구하려 들지 않았고, 미군의 지원이 완전히 끊어진 몽족은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공산 베트남은 몽족 세력을 완전히 소탕하게 된다. 이후 몽족은 국외로 탈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몽족을 난민으로 인정하거나 망명을 받아주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베트남이 멸망한 1975년에 미국이 인정한 몽족 망명은 3,000명 정도였다. 이들은 미국과 연결되어 반베트남 전쟁을 벌이던 방 파오를 포함, 주요 몽족 지도자들만 망명이 허용되었으며 대부분의 몽족은 방치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10,000명, 그 다음 해는 다시 30,000명이 난민으로 들어왔는데, 이것도 미국과 연결되어 직접적인 게릴라전을 실시한 적이 있는 남성 병사들로, 가족 단위 망명은 난민법이 성립된 1980년까지 미루어졌다. 그나마 받아들여진 것은, 실제로 몽족과 같이 전쟁에 참여했던 그린베레들을 포함한 미군 참전 병사들을 통한 동정론이 퍼졌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오히려 태국 난민수용소에 있던 몽족들을 UN의 이름으로 라오스에 송환하려는 시도까지 있었고, 이는 미국의 배신이라는 설까지 나왔기에 난민을 받아들이는 일들이 멈추게 되는 사건도 있었다. 당시 라오스 내부에서 몽족들은 독립하겠다며  내전을 벌이고, 공산 라오스 정부는 그러한 몽족을 학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오스와 몽족 저항군의 전쟁이 끝난 것은 1990년대의 일이다. 결국 이들의 미국 이민은 2004년까지 금지되어 있었다. 30년 넘게 지속된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여러 집단들은 동남아시아 내, 외곽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그러나 가장 대규모의 인구 이동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 사이에 발생했는데, 이는 1975년 4월 남베트남 정부가 붕괴 되고 사이공이 공산정권의 통제 하에 들어간 이후였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출신의 정치 난민들이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 대거 유입되었다. 

남베트남에서 마지막 몇 년을 보내던 정치 관료, 교육자, 변호사, 의사, 그리고 이전 사이공 정부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위협 받는다고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 속에서 비밀리에 나라를 떠났다. 몽족은 중앙정보국(CIA)의 모집, 훈련, 자금 지원을 받아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를 위해 정찰병, 정보 수집가, 구조 임무 등을 수행했다. 또한 미군이 호치민 루트를 차단하려 할 때, 몽족은 라오스 국경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하는 역할도 했다. 1970년대 후반, 약 100,000명의 몽족이 베트남을 탈출하여 태국에서 임시 피난처를 찾았다.  급증하는 난민 유입에 압도된 태국 정부는 국경 지역에 수용소를 설치했다. 그러나 수용소 환경이 악화되면서 20세기 말까지 미국으로 향하는 난민 신청자 수는 250,000명에 달했다. 대부분의 몽족은 캘리포니아, 미네소타, 위스콘신에 정착했다. 

쿠르드족이든, 어디든, 이번 이란-미국 전쟁의 전형적인 모범 사례는 베트남 전쟁이다. 이란은 베트남 전쟁을 모델로 참고하여 싸우고 있다. 어차피 미사일 소나기가 쏟아지면 땅굴이나 동굴에 숨어 맞아준다. 그리고 미사일 소나기가 그치면 그 때부터 반격이 시작된다. 미군 전투기가 출격하면 그걸 노려 대공미사일을 작동한다.그리고 극초음속 미사일은 최대한 아낀다. 더 크고,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할 때 써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 함부로 나선다면 베트남 전쟁 당시 몽족 꼴이 된다. 동맹국들을 대상으로 한 설득이 안 되면 다시 쿠르드족이나 발루치족 같은 소수민족들에게 구애를 청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은 몽족의 사례를 보고 잘 생각해야 한다. 미국은 소수민족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며, 베트남 전쟁 때처럼 이용하기 쉬운 일부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이 높은 트럼프의 성격상, 지미 카터 같이 "인도주의적"으로 200,000명 이상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보면 된다. 이번에 미국의 편을 들어 참전하여 이란에 적대했다가는 이번에야말로 종족의 씨가 말릴 가능성이 높다. 쿠르드족들은 천성이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아주 순수한 사람들이다. 필자는 이 좋은 사람들이 멸족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의 어떤 요청이 들어오더래도, 철저히 중립을 지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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