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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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문화공간 길담>에서 2025년 7월 2일 타계한 청퇴 강희복 선생의 추도식에 다녀왔다. 이 자리는 연세철학연구회의에서 주관한 것이고, 이 모임의 회장인 김옥경 선생과 연세대 철학과 명예 교수인 박정순 선생을 위시한 몇 분들이 특별히 마음을 써서 준비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선후배 15인이 참석해서 선생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세대 철학과 1980 학번인 강희복 선생은 대학원 시절부터 거진 40년이 넘도록 학문적 우애를 쌓아온 친구이자 선후배 동료였다. 선생은 철학과 선후배 동료들에게 신망이 높아 주변의 사람들 마음을 늘 따뜻하게 해줬다. 선생은 학부 시절부터 동양철학, 그 중에서도 퇴계 철학의 성리학과 심학, 그리고 퇴계의 시적 감수성에 심취했다. 그의 석사 논문은 유인희 지도 교수 아래에서 쓴 <강희복, 퇴계(退溪)의 심학(心學) 연구-논사단칠정서(論四端七情書)와 성학십도(聖學十圖> (서울: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1992.8.)>였고, 박사 논문은 <退溪의 ‘심여리일(心與理一)’에 관한 硏究> (서울: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2003>였다.
학위를 마치고 강 선생은 울산대학교, 성공회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상명대학교, 수원/인천 가톨릭대학교(학부 대학원) 등 여러 대학에 강사로 출강하였다. 이후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 철학과의 학부 및 대학원,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철학과의 학부, 경인교육대학교 인천캠퍼스 윤리교육과,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의 학부 및 대학원에서 몸은 고단하지만 열심히 강의를 해서 학생들의 인기도 좋았다.
그는 대학 바깥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 강의도 많이 했다. 2011년부터 거주 지역의 문화센터, 문화재단, 박물관, 도서관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철학과 문학, 시, 동양의 고전과 지혜를 강의하여 호평을 받았다. 시인적 철학자를 추구한 강 선생은 경기도 화성시 문화재단, 동탄 신도시 동탄복합문화센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문학을 강의했고, 특히 2019년 3월부터 12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했던 “연구강좌(사상사):문학으로 읽는 동서의 사상(16회)”은 큰 성황을 이루었다. 또한 말년에는 “동서의 죽음학”에 대해서도 강의했는데 자신 에게 곧 닥쳐올 죽음을 예견했었는지 모를 일이다. 박정순 교수가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파주: 엘도라도, 2012)를 언급했더니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박정순, <고 강희복 선생의 이력과 학문적 시적 유작>에서 인용).
이날 추도식은 선후배 동료들이 강 선생에 대한 추모담과 함께 경향 각지에서 보내온 선후배들의 추모사를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나같이 그이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생전의 추억을 되새겼다. 나 역시 살아 생전에 강 선생과 맺은 여러 인연들이 주마등처럼 떠 올랐다. 2003년 내가 사회 생활에서 실패한 후 여러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대학원으로 돌아오기 위해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오래 전 죽은 문종두 후배와 강 선생이 반갑다고 나를 신촌 시장으로 데리고 가서 술을 한 잔 받아준 적이 있었다. 상당히 의기소침해 있었던 나에게 그날의 술자리는 큰 격려가 되었다. 내가 오래 동안 키우던 개가 있었는데 이 개가 사교성이 떨어져 낯선 사람들을 보면 경계를 무지했다. 그런데 강 선생과는 만나자 마자 몇 마디에 바로 꼬리를 치는 것이었다. 아마도 강 선생의 시적 감수성이 우리 집 개에게도 바로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 이후 나를 볼 때 마다 강 선생은 ‘깜보’ 잘 있냐고 안부를 묻곤 했다. 이제 나의 개도 하늘 나라로 갔고, 강 선생도 갔으니 그저 마음의 빈 공간이 더 커진 느낌이다.
다음으로 동료이자 선배인 손흥철 안양대 교수가 강 선생의 철학과 관련해 “청퇴 강희복의 퇴계 심학에 관한 일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나는 강 선생의 철학을 주제로 한 이 논문 발표가 살아 있을 때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해도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허구헌 날 남의 철학자들, 오래 전의 철학자들만 다룬 것이 아니라 우리 동료의 철학을 주제로 삼아 글을 쓴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런 작업이 더욱 자주 이루어져서 우리들 자신의 철학을 주제로 철학을 한다고 하면 그만큼 살아 있는 철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논문을 통해 특별히 배운 것이 있었다. 퇴계 선생이 무려 2,000수나 되는 한시(漢詩)를 쓰셨는데, 이 부분이 주목을 받아 연구된 적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강 선생은 오래전부터 퇴계의 심학이나 경세론에 관해서도 썼지만 그의 수많은 시들에 대해서도 주목했었다. <퇴계의 시와 심학>과 <퇴계의 심미적 이성과 시적 표현>이라는 논문이 대표적이다. 손교수의 논문 발표 후 토론에서도 나왔지만 시를 통해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진리를 표현하는 일, 철학과 문학의 상호 교섭과 소통은 현대 철학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강 선생이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이 주제와 관련해 개척자적인 연구를 기대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강 선생 역시 철학자이자 시인의 역할을 적지 않게 보여주었다. 그는 생전에 정식으로 시인 등단도 했고, 그 사이 70 여편의 시작(詩作)도 했다. 술자리에서 그는 늘 이런 시들을 암송하면서 좌중을 즐겁게 해주었다. 나는 이런 모습이 다소 삐에로 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시와 철학, 그리고 예술이 혼융일체가 된 모습이 바로 강 선생 자신이었다. 다음 순서에서 박정순 선생이 강 선생의 이력과 유작들을 아주 꼼꼼히 조사해서 발표를 할 때 강 선생이 2004년에 작시 “한국의 개구리”라는 시를 가지고 노래까지 불러주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이름자 희복(熙復)의 복(復)자가 이 자리에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이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키에르케고르 키에르케고르
한국의 개구리는 아마도 실존주의자인가 보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키에르케고르 키에르케고르”
박정순 선생은 이 시에 화답을 해서 “한국의 맹꽁이” -맹꽁 맹꽁 마법 대소동-
“맹꽁맹꽁 맹꽁맹꽁
꽁맹꽁맹 꽁맹꽁맹
공맹공맹 공맹공맹
한국의 맹꽁이는 아마도 공맹(孔孟) 사상을
숭상(崇尙)하는 유학자인가 보다
오호라! 유생들이 유학을 공부하며
낭독하는 공자 왈, 맹자 왈 소리가
낭랑하게 끊임이 없구나”이란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런 모습들은 그저 술 한잔하고 객기 부리듯 퍼포먼스를 한 것이 아니라 철학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지극한 경지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한 가지 특별히 덧붙일 말이 있다. 한 참 선배인 박 정순 선생이 강 선생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모아 다듬고 해설까지 한 다음 그 자료들을 USB에 담아 와서 이날 참석자들에게 나눠 준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후배 철학자를 사랑하는 박 정순 선생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마음에 깊은 존경을 이 글에서 표현하고 싶다.
우리들은 추도식이 끝나고 전체 사진들을 찍은 다음 경복궁 전철역 부근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거진 9시가 되도록 3-40년 전의 기억들을 되살리면서 술과 이야기를 나눴다. 연세철학의 동료들이 보여준 아주 따뜻한 모습이었다. 마침 강 선생의 석박사 지도교수였던 유인희 선생님이 함께 자리를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면서 금일봉을 보내주신 것이 있어 푸짐한 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G.W.F. Hegel)이 『정신현상학』 말미에서 “이 정신의 나라의 잔(Kelch)으로부터 그(절대자)에게 그의 무한함이 거품 지어 넘쳐흐른다.” (aus dem Kelche dieses Geisterreiches / schäumt ihm seine Unendlichkeit)라고 한 표현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고, 앞으로 이 자리의 선후배 동료들도 강 선생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겠지만, 가는 날까지 우리들 모두 뜨거운 우정을 나누면서 철학과 진리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여보게, 강 선생. 참으로 고맙네. 선생 덕분에 우리가 다시 이 자리에 모여 옛 생각을 하며 술 한잔 할 수 있었네. 당신은 가셨지만, 앞으로도 우리의 기억 속에, 그리고 우리의 철학 속에 끊임없이 살아 있을 것이네. 마음은 아프지만, 이승에서 편히 쉬시게." (삼가, 이 종철 씀)




